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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상품들

스펙타클

by 김신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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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백화점의 상품들

제작 시기: 10시 30분 ~ 8시 (백화점 운영 시간)

재료: 고급 브랜드 상품, 반짝 반짝이는 쇼윈도, 스펙타클

설명: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금박 조명, 천장 패턴, 디스플레이로 고급스럽게 표현했다.


여러분은 쇼핑을 어디서 하시나요? 아마 품목에 따라 다를 텐데요. 식료품이나 일상적인 생필품을 살 때는 마트에 가고, 아예 온라인으로 필요한 걸 주문하기도 하죠. 그런데 고급스러운 제품을 살 때나 선물을 고를 때는 아무래도 백화점을 많이 갑니다.

백화점 문이 열리면 뭔가 공기부터 다릅니다. 바깥이 춥던 덥든 간에 백화점의 온도는 늘 알맞게 맞춰져 있고, 1층 부티크의 화장품과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나면서 참 쾌적한 느낌을 줍니다. 살 물건이 없어도 백화점은 따분히 긴커녕 재밌는데요.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는 패션 브랜드들, 거대한 TV 화면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가전제품 매장, 지나가다 괜히 누워보고 싶은 침구들, 그리고 지하 식품관의 유명한 맛집들까지 볼거리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한번 백화점에 들어오면 물건 하나만 보고 가는 경우가 없습니다. 늘 예상된 시간을 넘겨서야 백화점 밖으로 나서죠. 그리고 평소에 갖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던 것이 갑자기 갖고 싶어 집니다. 물론 가격표에 붙은 0의 개수에 놀라 좌절하지만요.

백화점은 이렇듯 우리의 소비 욕망을 일깨우는 도시의 대표 상업시설입니다. 함께 <백화점의 물건들>을 감상하면서 눈 둘 곳이 너무 많은 백화점의 숨겨진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눈을 사로잡는 백화점의 공간 문법


백화점은 다양한 상점과 브랜드가 한 건물에 입점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상업공간입니다. 1852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개장한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가 최초의 백화점이라고 여겨지는데요. 도시 중심가의 거대한 백화점은 시장과 달리 화려하게 꾸며졌고, 판매하는 물건 역시 고급스러웠습니다. 당시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던 도시 중상류층에게 백화점은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과시’를 위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었죠.

우리나라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자본에 의해 처음 백화점이 들어왔고, 광복 후 경제 성장기를 거쳐 지금의 메이저 백화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5대 백화점(롯데, 신세계, 갤러리아, AK) 개수는 2024년 기준 전국에 68개였는데요, 이들 백화점 매출액은 총 39조 7904억 원이었습니다. 물론 최근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지면서 백화점의 점유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긴 합니다. 쿠팡 한 곳의 매출액이 국내 백화점 전체 매출액보다 많거든요. 웬만한 신선식품까지도 온라인으로 터치 몇 번이면 쉽게 살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백화점에 갑니다. 온라인에서는 할 수 없는 ‘구경’을 위해서요!

백화점은 구경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요즘 같은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백화점을 화려하게 꾸며놓기 때문에 들어가기 전부터 눈을 뗄 수 없는 구경거리를 선사합니다. 내부로 들어가면, 백화점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1층은 고급스러운 부티크, 2층은 명품과 프리미엄 브랜드, 중층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패션, 고층은 가전, 가구와 같은 목적이 분명한 제품. 이런 식으로 고객의 동선에 맞춰 백화점은 전략적으로 매장을 배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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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상품들>에 표현된 것처럼 백화점의 공간은 요즘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살펴볼 수 있는 옷, 알록달록한 그릇, 계절마다 바뀌는 침구, 이 모든 것들은 진열 높이, 조명, 색감까지 구경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쯤 되면 백화점의 물건들은 ‘내가 보고 싶어서 본다’라기보다 ‘보지 않을 수 없다’가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평소 관심 없던 상품들에도 저절로 눈이 가니까요.

백화점에서 걸을 때마다 쇼윈도는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어느 순간 우리의 눈은 목적을 잊은 채 이 상품에서 저 상품으로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이런 점에서 백화점은 극장 같기도 합니다. 고객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어느새 수동적으로 백화점을 바라보며 상품들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습니다.



스펙타클


이런 백화점의 공간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의 스펙타클(spectacle) 개념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경기가 스펙타클하다’ 혹은 ‘영화가 스펙타클하다’처럼 뭔가 볼거리가 많다는 느낌으로 스펙타클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드보르가 이야기하는 스펙타클은 단순히 이런 ‘이미지’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스펙타클은 이미지가 우리의 삶을 대체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던 직접적인 경험은 점점 의미를 잃고, 그 자리를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옛날 옛적 사람들은 옷을 고를 때 자기에게 편안한지를 제일 먼저 고려했고, 식사를 할 때도 자기 입맛에 맞는지가 식당을 찾는 기준이었습니다. 즉, 자신의 체험과 경험이 중요했죠. 하지만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경험의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내 취향보다 남들에게 멋져 보이는 옷을 사고, 내 입맛에 맞는 식당보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식당을 찾습니다. 여러분 평소에는 후드티 입고 순대국밥 한 그릇 든든하게 때리는 걸 좋아해도, 소개팅할 때는 입지도 않던 셔츠를 꺼내 입고, 분위기 좋은 파스타집 가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이미지가 우리의 선택을 좌지우지하듯이, 스펙타클은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운영합니다. 인간관계, 욕망, 행동은 모두 우리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이미지에 의해 조정되죠. 이렇듯 스펙타클 사회에서 이미지는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재편합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우리가 수동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지가 중요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촉각이나 청각, 후각보다 시각이죠. 예를 들어, 여행이라는 것은 원래 새롭고 낯선 것을 체험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스펙타클 사회에서 여행은 그저 모두가 가는 관광지를 둘러보는 이미지화된 관광 프로그램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결국 남는 건 눈에 보이는 ‘인증샷’뿐이죠. 다시 말해, 우리는 스펙타클이 제공하는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느 순간 우리의 삶조차 관람의 대상처럼 다루게 됩니다.

이런 스펙타클 사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상품입니다. 가끔 명품 패션 브랜드에서 누가 봐도 좀 애매한 디자인의 상품이 나오잖아요. 솔직히 그런 상품이 진짜 ‘필요’해서 살까요? 아마 브랜드 로고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명품’이라는 이미지입니다. 같은 기능을 하는 쇼핑백이라도 굳이 필요가 없다면 다이소 쇼핑백을 사지는 않지만, 에르메스 쇼핑백은 당근마켓을 뒤져서 삽니다. 스펙타클은 이미지를 통해 상품에 환상을 입히고, 필요를 가장해서 사람들을 소비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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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상품의 기능 그 자체보다 상품에 덧씌워진 브랜드, 스토리, 분위기 등을 소비하는 합니다. 그리고 그 소비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속하는 사람인지 드러내려고 하죠. 그래서 드보르는 스펙타클을 “이미지가 된 자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상품이 제시하는 이미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르게 되고, 주체적인 삶의 영역은 점점 축소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 ‘구경거리’가 되고, 이미지화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부터 소비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지고 설계되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데 혈안이 된 백화점은 이런 스펙타클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경하다 구경거리가 되는 쇼핑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이 보여주는 건 단지 기능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능보다도 부각되는 것은 상품의 이미지죠. 소품과 조명을 비롯한 고도의 디스플레이 기술로 테이블은 그냥 가구가 아니라 ‘집의 분위기’가 되고, 향수는 체취를 가리는 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상’이 되며, 로봇청소기는 그저 무생물일 뿐인 가전제품이 아니라 ‘청소 이모’라고 불리며 ‘또 하나의 가족(?)’이 됩니다.

이런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상품 앞에 서성이며 저 상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나를 상상하며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상상하는 우리의 모습을 구경하죠. 백화점에서는 사람들이 무슨 상품을 보고 있는지, 또 어떤 상품을 사는지, 어떤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 가는지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갑니다. 결국, 백화점에 모인 쇼핑객들은 상품을 구경하면서 스스로가 구경거리가 되고, 서로서로를 구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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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왜 샀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 상품을 들고, 우리를 압도하는 스펙타클을 제공하는 백화점에서 나왔을 때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험이요. 백화점에서 이미지의 환상에 사로잡혀 소비하는 동안 우리는 진정한 부유함이 아니라 ‘허망한 부유함’ 속에 갇히게 됩니다. 이것은 스펙타클로 인해 우리의 진정한 삶이 현실과 분리된 결과로써 우리가 느끼는 소외감이죠.

하지만 이런 어딘가 찝찝한 기분으로 백화점을 나섰어도, 또다시 백화점에 방문할 때 우리는 여지없이 스펙타클에 사로잡힙니다. 소비를 위한 공간으로서 전략적으로 연출된 백화점이라는 극장에서 현실감각을 단단히 붙잡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더 나아가 고객의 시선과 이동경로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시선 추적 기술이 등장하면서 앞으로 "빌레로이 앤 보흐 그릇 앞에서 시선 20초. 르크루제 진열대로 이동하는 데 1분" 이런 식으로 분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백화점의 공간 디자인은 소비에 더 적합하게 정교화되겠죠.

그렇다면 백화점이라는 스펙타클 공간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요? “안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소비를 끊을 수 없습니다. 드보르는 우리에게 ‘직접 경험(vivre)’이라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즉,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백화점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환상에 맞서 ‘직접 경험’을 되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백화점의 동선에 따르지 않고, 상품을 고를 때도 보여지는 것보다 내 몸의 감각을 우선하는 것이죠. 쇼윈도가 아니라 쇼윈도에 비친 내 삶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현실과 분리된 나의 삶을 시각이 아닌 촉각, 후각, 청각으로 다시 연결하는 연습인 셈이죠. 이런 실천들은 스펙타클을 당장 파괴할 수는 없겠지만, 스펙타클이 설계한 분리의 장치를 느슨하게 만듭니다.

그 시작은 드보르가 이야기한 것처럼 적당한 온도와 향, 음악으로 눈앞의 상품들을 빛나게 하는 백화점 안에서 내 삶의 온도, 내 삶의 감각, 내 삶의 리듬을 되찾는 것일 겁니다. 지금까지 <백화점의 상품들>이었습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11: 스펙타클(sepctacle)


"현대적 생산 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삶은 스펙타클의 거대한 축적물로 나타난다. 매개 없이 직접 경험했던 모든 것이 표상 속으로 멀어진다."

-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 1967 -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은 단순히 TV나 광고 같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볼거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현실 경험이 이미지(재현)와 상품을 통해 매개되는 사회의 작동 방식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삶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의미를 만들기보다 뉴스, 광고, SNS, 브랜드, 이벤트처럼 이미 편집되고 연출된 장면으로 현실을 접하게 되는데, 그 결과 삶은 이미지와 상품이 주가 되는 형태로 바뀌고 ‘진짜인가’보다 ‘그럴듯해 보이는가’가 힘을 갖는다. 스펙타클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욕망을 설계해 현실에 대한 참여와 판단을 실천이 아니라 소비와 관람으로 전환시킨다. 이때 정치는 공동의 실천이 아니라 중계되는 쇼로, 도시는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진 찍히는 배경으로, 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보이고 인정받는가로 재편되게 된다. 결국 스펙타클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힘과 그 결과물로부터 점점 분리·소외되고, 변화와 역사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 화면 너머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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