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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오후의 영화관

미디어와 메시지

by 김신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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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비어있는 오후의 영화관

제작 시기: 한창 관람객으로 북적여야 할 오후

재료: 한산한 영화관, 범람하는 넷플릭스, 미디어와 메시지

설명: 비어있는 영화관의 좌석들과 한 명의 관람객, 그리고 영화가 끝났다는 'THE END'를 통해 사라져 가는 영화관의 쓸쓸함을 표현했다


여러분은 ‘영화관’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폭력적(?)일 정도로 고소한 팝콘 냄새, 입장 전의 적당히 시끌시끌한 담소, 그리고 조명이 꺼지기 직전의 설렘과 기대감이 있죠.

영화관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영화라는 매체를 보기 위해 모이는 도시의 대표 문화공간입니다. 대개 도시의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어, 영화 관람은 쇼핑이나 외식 같은 소비 활동과 궁합이 좋습니다. 그래서 영화관은 중심 상권에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 두는 ‘앵커 시설’로 불리기도 합니다. 심야 영화 상영이 주변 야간 경제에 기여한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요새 영화관은 ‘앵커’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비어있는 오후의 영화관>처럼 영화관이 점점 비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실 영화관에 안 간 지 꽤 됐습니다. 영화를 안 보냐고요? 아니요, 영화는 어제도 봤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러 번화가까지 나갈 필요 없이, 집, 지하철, 버스 안을 비롯해 인터넷만 되면 저만의 영화관이 열리거든요.

이렇게 점점 한산해지는 영화관과 언제 어디서든지 보고 싶은 영화를 재생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은 변화된 우리 삶을 또렷이 비추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영화관의 추억


아마 많은 분들이 영화관에 추억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물론 혼자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보통 영화는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보곤 했으니까요.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포켓몬스터 극장판 ‘뮤츠의 역습(2000)’을 함께 봤습니다. 어린 제가 애니메이션 영화가 보고 싶다고 하니 영화관에 데려오긴 하셨는데, 피카츄가 뭔지도 모르는 분이 내용 이해가 되겠습니까? 제 옆 자리에서 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계시던 모습이 몽글몽글하게 기억납니다.

성인이 돼서는 전 여자친구(현 와이프)와 처음으로 함께 영화관에 갔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영화보다는 사실 ‘영화를 보고 있는 서로’를 보고 있었죠. 이렇게 영화관은 스크린만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추억을 쌓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관이 점점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폐관한 영화관은 16개나 됩니다. 그중에는 대한극장처럼 영화산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영화관도 있고, CGV 인천논현점, 롯데시네마 서면점, 메가박스 강남대로점처럼 한 도시를 대표하는 번화가에 자리 잡았던 영화관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관객 수도 줄어드는 추세인데요. 코로나 직격탄을 맞기 전인 2019년 관객 수가 2억 2667만 명이었던 것에 비해, 2024년에는 거의 반토막이 나서 1억 2312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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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점점 사라지고, 비어 가는 영화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선 관람료가 비싸다고 느껴집니다. 하다못해 최민식 배우도 “극장 영화 티켓값이 많이 올랐다. 좀 내려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물가가 상승하면서 영화관람료도 비싸지는 건 당연하긴 하지만, 평일 기준 2016년에 1만 원이었던 관람료가 지금 1만 4000원 정도까지 올랐으니 꽤 부담이 되죠.

또 다른 원인으로는 극장 영화의 다양성 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이 세 기업이 국내 대부분의 영화관을 점유하고 있고, 각 산하에 배급사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관 주인과 배급사가 같으니까 아무래도 소형 배급사가 살아남기는 어렵겠죠. 그러다 보니 자본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영화관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독과점 환경에서는 영화관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영화관의 부진에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the-top) 서비스의 등장입니다. OTT 서비스는 방송사나 유선 통신망을 거치지 않고 시청자에게 인터넷으로 직접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1997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겨우 온라인 DVD 대여점으로 시작했던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급성장했습니다. 현재는 디즈니,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거대 기업과 우리나라에서는 티빙, 웨이브 같은 OTT 서비스가 등장했죠. 점점 비어 가는 영화관과 달리,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OTT 이용률은 89.3%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니까 국민 10명 중 9명은 정도는 OTT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관에 가는 것보다 확실히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 비싸지 않은 구독료만 내면 다양한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또 인터넷만 되면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받을 일이 없죠. OTT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영화관이라는 전통적인 미디어를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디어와 메시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삶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캐나다의 미디어이론가 마셜 맥루한(Marchall McLuhan, 1911~1980)입니다.

여러분은 미디어의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아마 ‘내용’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무슨 메시지가 전달되는지가 중요하지, 그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은 주목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같은 뉴스라도 신문으로 볼 때와 라디오로 들을 때,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들을 때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 말입니다.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하며, 단순히 메시지를 배달하는 수단으로 치부되던 미디어 그 자체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 육성, 편지, 카카오톡이 같은 효과를 낼까요? 아마 카카오톡으로 프러포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같은 메시지라도 육성이나 편지에 비해 무게감이 다르거든요. 결국, 맥루한의 주장처럼 미디어의 형식이 달라지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전달받는 사람의 인식도 달라집니다!


20240205093007609denp.png 물론 될 때도 있다...


이런 미디어의 형식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옛날 사람들이 대화로만 소통할 수 있었을 때는 말이 통하는 부족사회가 중요했겠죠? 그런데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각자 글을 읽으면 그만이니 개인화되고,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더 넓은 국가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전자 기술의 발달로 온 지구의 사람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맥루한은 이런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마치 지구가 작은 마을 같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지구촌(global village)’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서비스도 맥루한의 관점에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형식의 등장입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낯선 사람들과 같은 화면에 동시에 몰입해야 한다는 집단적인 동시성이 필요하죠.

반면에 넷플릭스는 어떤가요?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든 영화 재생이 가능합니다. 또 만약 화장실 급하면 일시 정지 했다가 다시 보면 됩니다. 보기 싫은 장면은 아예 스킵할 수도 있죠. 더 나아가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보는 영화의 경험은 개인화된 경험으로 전환됩니다. 맥루한식으로 이야기하면, OTT 서비스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시간과 장소, 관계를 재배치하고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죠!



도시에서 영화관은 사라질까?


최근 세계 최대 OTT 기업 넷플릭스가 100년이 넘은 미국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워너 브라더스는 해리포터 시리즈, DC 코믹스를 비롯한 수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로 잘 알려져 있는 할리우드 대표 스튜디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몰락’이다, ‘영화관 문 다 닫게 될 것이다’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부터 배급, 온라인 스트리밍까지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이루어지고, 영화 개봉도 영화관이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죠. 아직 미국 정부의 최종 승인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만약 이 인수가 확정되면 세계 최대의 콘텐츠 공룡이 탄생하여 영화산업 생태계가 상전벽해할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집에서 편하게 영화 볼 수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계가 OTT 서비스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에도 분명 문제는 있습니다. 여러분 넷플릭스 보다가 자주 잠든 경험 많지 않으신가요? 다수의 사람들과 공동 몰입을 요구하는 영화관 환경과 달리, 넷플릭스를 볼 때는 배속, 스킵, 되감기, 정지 등의 편리한 기능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끝까지 몰입해서 보기가 어렵습니다.

또 “넷플릭스 영화 보는 시간보다 영화 고르는 시간이 더 길다”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콘텐츠의 범람으로 인해 볼 게 너무 많은 나머지 뭘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알고리즘 추천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데요. 그러다 보면 특정 콘텐츠 편중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모두가 보는 것에 편승하게 되니, 진정으로 다양성을 누린다고 보기가 어렵죠. 아마 넷플릭스의 영화 제작-배급-스트리밍 전 단계의 독점이 시작되면 전 세계적인 문화 획일성이 더 심화될 것입니다.

3db8e5f75c421552fdd46d1977fb30bc.jpg 영화나 드라마보다 넷플릭스 메뉴를 더 많이 보게 된다


게다가 가족 모임이나 데이트처럼 ‘이벤트’로서 경험하던 영화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그저 그런 킬링타임용 소비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잘 차려입고 영화관 앞에서 연인을 기다리던 우리의 설렘과 아이 손을 잡고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일상 속 소중한 이벤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죠.

맥루한은 마치 책처럼 영화를 휴대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TV처럼 작고 값싼 8밀리 영사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의 예상이 오늘날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딱 들어맞은 것 같습니다. 과연 영화관의 몰락과 OTT 서비스의 부흥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문화공간을 어떻게 바꿀까요? 그리고 연인들은 이제 어디서 썸을 타고 데이트를 하게 될까요?

<비어있는 오후의 영화관>에서 비어 있는 좌석은 단지 영화산업의 침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추억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 'THE END'를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관람객은 어쩌면 '영화의 끝'이 아니라 한 시대 미디어가 함께 공유하던 시간, 장소, 그리고 관계의 끝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12: 미디어와 메시지


“많은 사람들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를 가지고 한 일이 기계의 의미나 메시지라고 말하곤 한다.”

- 마셜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1964 -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를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느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근본 조건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흔히 뉴스의 보도나 영화의 줄거리처럼 전달되는 내용에 주목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것을 전달하는 형식(책, 라디오, 텔레비전, 스마트폰)이 우리의 감각과 주의력, 인간관계, 더 나아가 사회의 구조까지 재편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메시지란 화면 속 문장이나 음성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미디어가 우리 삶에 만들어내는 새로운 습관과 질서, 즉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다. 이는 우리의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핵심은 미디어의 내용이 아니라 미디어의 형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맥루한의 관점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등장시키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방식으로 함께 존재할지를 결정하는 문화적 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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