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론
작품명: 도시는 광고로 호흡한다
제작 시기: 매일매일
재료: 어디에서나 보이는 광고, 기호, 신화론
설명: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광고판을 통해 공기처럼 도시를 채우고 있는 광고를 수채화로 표현했다.
간판만큼이나 도시에서 우리가 늘 마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광고죠. 아침 일찍 출근길에 나서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입간판이 거리에 성벽처럼 서있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 안에도 “OO 시험 합격자 수 1위 OO윌!이라는 광고 문구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중년의 어머님이 새로 개업한 헬스장 전단지를 나눠주고 계시고, 직장이 있는 오피스 타운에는 지금 함께 보고 계시는 <도시는 광고로 호흡한다> 작품처럼 고층 빌딩 한 면이 거대한 광고로 메워져 있기도 합니다.
도시 곳곳에 광고가 없는 곳은 없고, 작품의 제목처럼 정말 도시가 광고로 호흡하는 것 같습니다. 찰나에 스쳐 지나가지만 이상하게도 우리가 봤던 광고의 문구와 이미지는 우리 뇌리에 박혀 일상 중에 아른아른 떠오르기도 하죠. 저 역시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해 볼까?’ 생각이 들자마자, 자연스럽게 ‘OO윌’이 머릿속에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어느새 공기처럼 도시에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보이게 된 광고, 그런데 그 익숙함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는 산소, 질소, 그리고 광고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광고인 로베르 궤링(Robert Gue'rin)이 한 말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 한 순간도 광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부터 잘 때 덮는 이불까지 광고와 무관한 건 없거든요.
광고는 사전적으로 ‘주로 기업이나 단체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판매 촉진, 이용 유도, 혹은 브랜드 인지도 향상 등의 목적으로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대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신문사, 방송사, 거대 SNS 기업도 수입의 대부분은 광고입니다. 그래서 가끔 신문을 보면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 밑에 그 기업의 광고가 실려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비단 신문, TV,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거대한 광고판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도시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외벽 광고, 디지털 광고판, 현수막, 입간판 같은 것을 통틀어 ‘옥외광고’라고 부르는데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집 밖에서 접하는 모든 광고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지방재정공제회의 <옥외광고통계>에 따르면 2020년에 3조 7백억 원 정도였던 옥외광고 산업 규모는 2024년에 4조 3천억 원의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이런 증가세의 배경으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꼽고 있습니다. DOOH(Digital Out-Of-Home)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옥외광고는 쇼핑몰,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LED나 LCD를 활용한 디스플레이 광고게시판(digital signage)에 탑재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날로그보다 디지털 방식의 광고가 관리하기도 쉽고, 대중 눈에 더 잘 들어오겠죠?
이렇듯 광고가 디지털화되면서 도시에서 광고는 바쁘게 지나치는 와중에도 낮이든 밤이든 더 또렷하게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광고는 자꾸 뭘 사라고 하고, 뭘 이용하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하면 불편함이 사라지고, 지혜롭게 살 수 있으며,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주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생각은 광고를 타고 흐릅니다. 멋지고 예쁜 코트를 입은 패션모델을 보고 ”음, 패딩만 입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겨울 코트 살까?"라던가 커피머신 광고를 보면 ”집에 저런 게 있으면 커피값 아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볼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이죠. 이때 겨울코트는 '더 나은 나'를 위한 수단이 되고, 커피머신은 '더 합리적인 나'를 위한 장비가 됩니다.
바로 앞서 감상한 <노랑 간판, 빨강 간판, 파랑 간판>에서 소쉬르의 기호학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었는데, 기억하시죠? 기호는 기표(기호 표현)와 기의(기호 내용)의 결합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라는 문자(기표)가 ‘땅에 뿌리박고 자라는 초록 이파리를 가진 길쭉한 식물’이라는 의미(기의)를 떠올리게 하여 하나의 기호가 만들어집니다. 광고도 마찬가지로 특정 이미지나 문구(기표)로 어떤 의미(기의)를 떠올리게 하는 거니까 광고는 본질적으로 기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보편적인 사회적 약속'으로 연결된다고 본 소쉬르의 설명만으로 광고를 이해하기에는 뭔가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광고라는 것은 ‘아직 살 마음이 없는 자’와 ‘어떻게든 팔아야 하는 자’의 대결이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광고를 통해 ”우리 것이 좋아요"가 아니라 더 정교하게 ‘우리 제품을 안 사면 뒤처진 사람이야’와 같이 대중의 가치관과 신념을 건드려야 합니다. 결국 광고를 제공하는 측의 특정한 메시지가 은밀하게 기호 체계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을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신화(myth)’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신화는 제우스가 번개 뿌리는 그 신화가 아닙니다. 바르트는 신화를 현대 사회가 어떤 가치관이나 신념을 ‘상식’으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아래 프랑스 잡지 표지 사진을 예로 듭니다. 이 사진이 가진 표면적인 의미는 단순하죠. ‘프랑스 군복을 입은 흑인 청년이 프랑스식 거수경례를 한다.’ 하지만 이 사진은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 은연중에 우리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인종의 구분 없이 하나로 결속된 나라고, 누구나 프랑스에 자발적으로 충성한다. 그러므로 프랑스는 모두에게 공정한 제국이다.’ 이걸 통해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고, 당시 프랑스와 알제리 전쟁의 참상은 가려집니다.
이렇듯 기호는 지니고 있는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 문화, 사회, 심리,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함축적인 의미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함축은 특정 가치와 신념을 마치 신화처럼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합니다.
조금 더 일상적인 예시를 들어볼까요? 표면적 의미는 말 그대로 보이는 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유모차를 끌고 있는 사진’이 있다고 합시다. 이때 사회적 맥락 속에서 표면적 의미는 한 번 더 포장되어 함축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유모차를 끄는 모습'을 ‘책임감 있고 가정적인 좋은 가장’으로 인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함축적 의미는 자연스럽다기보다 우리가 사회적 코드에 맞춰서 ‘해석’ 한 것인데, 우리는 이걸 해석이라고 느끼지 않고, 자명한 사실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해석이 상식으로 굳어지는 과정이 바로 신화입니다.
이런 바르트의 관점에서 광고는 단순히 상품을 소개하는 정도의 표면적 의미를 지닌 기호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를 그 상품에 은밀하게 덧입혀 ‘이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곧 좋은 삶’이라는 상식을 만드는 현대의 신화인 것이죠.
<도시는 광고로 호흡한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리 도시 곳곳에는 광고가 가득하고, 우리는 매일 그 광고를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르트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도시에서 일상을 보내는 중에 늘 ‘신화’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죠.
지하철 안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자주 보이는 신축 아파트 광고에는 아파트 조감도가 근사하게 서있고, 강남 접근성이 강조되며, 한쪽에는 아름다운 모델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광고가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뭘까요? 사실 아파트와 전혀 관계없는 아름다운 모델을 통해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매력적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강남과의 접근성은 ‘거주’를 삶의 등급처럼 나타냅니다. 즉, 이런 아파트 광고는 아파트에 사는 것과 나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신화를 만들어 내죠.
<도시는 광고로 호흡한다>에 묘사된 것 같이 패션 광고는 어떤가요? 패션 광고는 단순히 옷의 소재나 디자인을 부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옷을 입은 날씬하고 예쁜 모델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죠. 옷이라는 기호는 광고에서 모델의 매혹적인 몸매와 표정을 통해 한번 더 포장되어 ‘좋은 취향’과 ‘매력적인 삶’의 증거가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연스레 좋은 패션을 편안함이나 실용성보다 몸매와 성적 매력을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그리고 저는 결혼정보회사 광고도 참 많이 보이는데요. 누가 봐도 예쁘고 잘 생긴 남녀 모델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밑에는 '성혼율 1위'라는 문장이 쓰여 있죠. 여기에 숨는 이데올로기는 결혼을 다양한 삶의 형태 중 하나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해야 할 '숙제'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혼율을 강조하는 것은 사랑을 확률과 조건, 즉 거래 가능한 데이터로 치환하는 것이죠. 그렇게 결혼정보회사 광고는 결혼을 '정상적'인 삶의 방식이자, 계산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외에도 우리는 도시에서 수많은 광고와 마주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성공한 광고는 이목을 확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봤다는 사실조차 잊고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광고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이런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사람들이 광고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언제든지 기억을 건드려 구매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들 아시죠? 익숙한 맛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요.
바르트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우리 시대의 ‘일상적인 거짓들’을 구별하고, 기호가 숨기고 있는 메시지를 파악하여 신화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은 과연 광고에 보이는 상품일까요, 아니면 거기에 덧씌워진 신화일까요. 도시라는 거대한 광고판 앞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광고의 메시지를 낯설게 보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신화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말이죠.
"신화는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고백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굴절이다."
- 롤랑 바르트, ≪현대의 신화≫, 1957 -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에서 ‘신화’는 전설이나 옛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특정한 가치와 신념(이데올로기)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식처럼 보이게 만드는 의미 작동 방식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기호는 원래 기표(표현)와 기의(의미)의 결합인데, 신화는 여기서 한 번 더 나아가 완성된 표면적인 1차 기호를 다시 2차 기호의 기표로 사용해 새로운 함축적 의미를 덧씌운다. 이때 신화는 역사적·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해석을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화한다. 그래서 신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현실을 특정 방식으로 읽게 만드는 ‘언어’이자 ‘틀’로 작동하며, 광고·뉴스·이미지 같은 일상적 기호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 믿고 무엇을 욕망하며 무엇을 당연시하는지를 은밀하게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