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작품명: 고궁 앞에서
제작 시기: 파란 하늘과 햇살이 따뜻한 오후
재료: 고궁, 도시의 일상, 아우라
설명: 신선한 날씨에 고궁 앞을 걸어가는 사람을 통해 문화유산이 주는 일상 속의 장엄함을 표현했다.
도시는 개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입니다. 어딘가에서는 늘 공가가 진행 중이고, 도로가 깔리며, 새 건물이 올라가죠. 이렇게 늘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에서도 그 자리에 오래 버텨온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소중하게 보호하고 보존하는 문화유산입니다.
각 지역마다, 각 도시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있죠. 예를 들면, 조선왕조 500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울에는 경복궁이 있고,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는 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항기 근대화의 산실인 인천에는 제물포구락부 같은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죠. 이런 문화유산은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저는 봄이나 가을이면 경복궁 돌담길을 자주 걷는데요. 선선한 날씨에 지금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조선왕조의 고궁을 보면 감회가 새롭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아마 저처럼 여러분도 기회가 있으실 때 이런 문화유산을 보러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에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사진으로 쉽게 볼 수 있는데, 굳이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가 주는 감동은 아무래도 다르죠. 지금 함께 보실 <고궁 앞에서>는 이런 문화유산이 풍기는 일상 속 장엄한 분위기를 잘 담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문화재’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문화유산’으로 바뀌었습니다.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했죠. ‘재(財)’가 주는 소유의 뉘앙스 대신, 계승의 의미를 가진 ‘유산(heritage)’ 개념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문화유산은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와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 변화를 나타나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물려받아 지키고 다음 세대에 건네야 할 가치 있는 것들이죠.
수원화성 같은 건조물부터 훈민정음 같은 서적까지 형태는 달라도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는데요. 선조들의 삶 위에 만들어진 도시에서는 이런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또 여전히 발굴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도시의 삶에서 문화유산은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도시 곳곳에서 그리고 박물관에서 우리는 문화유산을 볼 수 있죠. 이런 문화유산이 있는 곳은 도시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 됩니다.
뜬금없지만 퀴즈 하나 내보겠습니다. 여러분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입장객이 가장 많은 관광지가 어딘지 아세요? 에버랜드요? 아니요, 바로 <고궁 앞에서>에도 그려진 '경복궁'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경복궁을 방문한 입장객은 644만 명을 넘습니다. 경복궁은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로, 임진왜란 때 불타 소실됐다가 고종 때에 중건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이후 1990년부터 복원 사업으로 조금씩 옛 모습을 회복해 왔죠.
이런 경복궁에 가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굴곡을 겪었지만,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궁은 여전히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한 국가 통치의 중심으로서 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하던 곳이자 왕조의 삶과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이 공간을 두 눈으로 보는 순간, 머릿속에는 수많은 장면과 이야기가 겹쳐 지나갑니다. 단순히 사진으로 봤을 때와 현장에서 직접 맞닥뜨렸을 때의 감동이 다르죠. 이런 느낌은 경복궁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유산도 그렇습니다. 그 맛에서 여행을 가서 각 도시와 지역의 문화유산을 눈에 담고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문화유산이 소실되면 어떨까요? 2008년에 숭례문 방화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1398년에 건립된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 전쟁도 버틴 숭례문이 방화로 거의 소실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보가 하루아침에 재가 된 상황에 온 국민이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소실된 숭례문 앞에 추모의 제사상이 차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숭례문의 상실이 단순한 건물 한 채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문화유산도 건조물인데 무너지면 그냥 다시 지으면 되지 뭐” 이런 생각하시는 분은 아마 없으실 것인데요. 그 이유는 숭례문 같은 문화유산이 ‘그저 그런 건조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화유산에는 일반적인 사물에서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기운이 감돌고 있거든요. 같은 재료로, 같은 형태를 흉내 내어 다시 지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그 앞에서 느끼는 기운까지 그대로 복원하기는 어렵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이런 기운을 ‘아우라(aura)’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우라라는 말은 일상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죠. ‘저 배우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진다’처럼 말이죠.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그 왜 중세 시대 성화에서 예수님 얼굴 뒤에 빛을 그리잖아요. 그런 후광과 같이 숭고하고 신비한 느낌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공간과 시간의 독특한 짜임으로 그토록 가까이 있다 해도 먼 것의 일회적 출현’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여기에 있지만 왠지 모르게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여기서 포인트는 이 이상한 ‘거리감’입니다. 이 가까이 있는데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게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눈앞에 있어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고, 쉽게 소유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을 통해 이런 거리감이 느껴지는 아우라를 설명합니다.
예술작품에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이 거리감의 근원은 바로 ‘원본성’, 즉 ‘지금, 여기에만’ 존재하는 유일성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을 볼 때 우리가 단지 색채나 화풍에 대해서만 논하지는 않죠? 그 그림을 '고흐가 언제 그렸는지',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처럼 그 작품의 고유한 역사까지 함께 생각합니다. 그 순간, 작품은 특별한 시간을 통과해 온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권위와 무게를 지니게 되며, 그것이 바로 거리감으로 체감되죠.
저는 실제로 이 그림을 뉴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본 적이 있는데요. 이 그림 앞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저도 이때 고흐의 그림을 찍어서 아직도 그 사진을 핸드폰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전시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려들까요? 절대 안 그럴 겁니다. 고흐의 그 그림은 특별한 시간을 거쳐 지금 미술관에 ‘단 하나’로 존재하는 반면, 제 사진은 제가 언제든 뽑아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으니까요. 복제된 사진에는 스토리도 없고, 역사성도 없고, 유일성도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작품의 원본을 볼 때 느끼는 아우라는 ‘지금, 여기에서만’이라는 조건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벤야민은 복제품이 아우라를 온전히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콘서트에 가서 듣는 것과 이어폰으로 듣는 게 다르고, 축구 경기를 경기장에서 실시간으로 보는 것과 나중에 중계방송을 다시 보는 것이 다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현장에서만 성립하는 ‘지금, 여기에서만’의 아우라가 경험의 결을 바꿔 놓기 때문입니다.
문화유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고 오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 지금까지 견뎌 온 세월 덕분에 우리가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그런 만큼 당연히 문화유산은 소중한 것이겠죠?
머리로는 그렇게 알고 있어도 몸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숭례문 방화 사건처럼 대형 사고는 아니더라도 우리 도시 속 문화유산은 일상적으로 많은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영수 왔다감’, ‘철수 ♥ 영희’ 같은 낙서는 수원화성부터 안동 하회마을에 이르기까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2023년에는 경복궁 담장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훼손된 사건도 있었죠. 문화유산을 직접 훼손하는 행위가 대단한 악의가 아니라 무심함과 장난의 형태로도 쉽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어이가 없는 일도 발생하는데요. KBS 드라마 촬영팀이 무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안동 병산서원에 소품을 설치한다고 못을 박은 사건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2015년부터 최근 10년간 소중한 문화유산이 훼손된 사건이 45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문화유산 훼손에 가담한 사람들은 아우라를 느끼지 못해서 그랬을까요? 아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문화유산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바로 서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단 문화유산이 훼손되면 복원 비용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도시가 가진 아우라가 손상되는 것입니다. 가로등, 보도블록, 아파트처럼 복제가 가능한 것들로 빽빽한 도시에서 아우라를 뿜어내는 문화유산이 이렇게 쉽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종묘 맞은편 세운정비촉진지구를 고층으로 재개발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에 종묘의 경관 훼손을 우려한 국가유산청이 제동을 건 것입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문화유산에서 500m 이상 떨어진 곳이라면 개발하는 것이 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쟁점은 단순히 ‘법적으로 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완충공간이 존재하더라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문화유산이 놓인 배경과 시선의 구도, 그리고 문화유산이 경험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쪽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도심 재생을 위해서 고층 재개발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또 재개발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는 가운데 낙후된 환경 속에서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 주민의 현실도 외면할 수 없죠. 한편, 종묘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일상화될 때 종묘가 지닌 권위와 가치가 훼손될 수 있고, 종묘를 찾는 시민들이 온전히 문화유산에 집중할 수 없을 것으로 보는 국가유산청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에서는 이런 충돌이 반복됩니다.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죠.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도시들은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비교적 잘 이루어 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고궁과 고층빌딩이 공존하는 풍경을 외국인 관광객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있는 도시가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종묘 역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낙후되는 환경을 정비하고 도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도시는 계속 개발되고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는 ‘박제’되어 있는 게 아니까요. 더 중요한 것은 ‘개발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개발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도시는 오랜 이야기를 품고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의 아우라를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동시에 문화유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변화되어 가는 도시에서도 우리는 세월이 남긴 문화유산의 아우라를 일상 속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겠죠. <고궁 앞에서>처럼 말입니다.
"아우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다."
-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5 -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아우라(aura)’는 예술작품이 지니는 고유한 ‘여기와 지금’의 분위기와 권위를 뜻한다. 아우라는 작품이 쌓아 온 역사적 가치와 함께 원본만이 가지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관람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독특한 거리감으로 체험된다. 전통 사회에서 많은 예술작품은 종교의식과 결합해 사용되었고, 이러한 제의적 성격이 예술작품이 지닌 아우라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 같은 기계적 복제 기술의 등장은 예술작품을 무한히 재생산하고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소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원본만이 지니던 특별한 거리감과 권위가 약화되면서 아우라도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복제품 자체에는 원본과 같은 아우라가 깃들어 있지 않지만, 그만큼 예술과 대중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 예술을 일상적인 감상의 대상으로 대중화하고, 나아가 예술을 둘러싼 소수 엘리트의 독점적 권력에 균열을 내며 정치적·비판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