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오래 쓰는 건 구질구질하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기왕 쓰는 거 새 것 혹은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우리 나이에는 가방은 명품은 들어줘야지', '취직을 했으면 대학생 때 입던 옷은 못 입어', '여행 가서 예쁘게 사진 찍어야 하니까 새 옷을 사서 가야지' 라는 말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마이웨이를 할 것 같지만 은근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주변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렸다.
고작 사회초년생이었을 때 100만원이 웃도는 백팩을 산 적도 있고, 직장에 똑같은 옷을 자주 입고 갈 수 없다는 이유로 매주 주말마다 쇼핑을 가서 옷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지름신에 빙의 된 것처럼 한 번 쇼핑을 할 때 50만원은 기본이었다. 여행을 갈때는 더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었기 때문에 여행 트렁크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옷들은 무조건 새로운 옷이어야했다. 여행 가기 며칠 전 새 옷을 사느라 여행 계획을 제대로 못 세운 적도 있었다.
그렇게해서 결국 나에게 남는 건 소비로 인해 얇아진 지갑, 분수에 맞지 않는 가방, 옷으로 미어터지는 옷장 뿐이었다. 더 이상 안 입는 옷들을 기부하면서 그래도 옷을 버리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에 취해있는데,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우리가 기부하는 옷들이 재활용 되는 비율은 굉장히 낮으며, 대다수는 제 3의 국가로 건너가 쓰레기 산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들을 기부하는 게 사실 무책임하게 옷을 버리는 것이었다니. 소들이 풀 대신 옷을 뜯어먹는 광경은 굉장한 충격적이고 역겨웠다.
그때 허용치를 넘어서 옷을 토해낼 것 같은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꼭 가방과 옷이 여러개여야 하는 걸까? 옷이 있어도 여행을 갈때 입을 옷은 달라야 하는 걸까? 대학생 때 입던 옷이 멀쩡해도 직장에서는 입지 못하는 걸까?
의문들이 내 심장을 강타한 후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장을 정리하자 옷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장이 아니더라도 얌전하고 차분한 옷은 직장에도 충분히 입고 갈 수 있는 옷들이 많았다. 검은 슬랙스, 흰 티셔츠, 너무 달라붙지 않는 청바지 등은 기본으로 장착할 수 있는 옷이었다. 가방도 너무 많았다.
고민 끝에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옷을 사지 않는 것이다. 꼭 옷을 사야한다면 이미 있는 옷이 떨어지거나 너무 낡아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 사기로 결심을 했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행색이 너무 초라해보이지 않을지, 화려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과 비교되지는 않을지, 나이대에 안맞는 차림새를 하고 다닌다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는 않을지, 많은 고민을 하며 전전긍긍했다.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 지금 나는 무척 잘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바지가 너무 헤져서, 옷 소매가 뜯겨나가서 옷을 몇 벌 구입한 적은 있지만 지난 2년간 구입한 옷이 4벌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이미 있는 옷을 돌려입고, 들었던 가방을 또 들고, 매일 똑같은 운동화를 신어도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년 동안 거의 365일 신었던 뉴발란스 운동화의 새끼 발가락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검색해보니 소재가 매시라 다른 부분이 멀쩡해도 유난히 그 부분이 잘 떨어져나간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운동화를 버리고 새 운동화를 사겠지만 이번에는 수선을 했다. 촘촘하게 꼬맨 부분은 외관상 티가 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감추고 싶지도 않다.
내가 요즘 자주 드는 애착 가방은 4만원짜리다. 비닐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모서리 부분이 마모되었지만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예전이라면 벌써 가방을 새 것으로 바꿨겠지만 애정이 생겨서인지 이젠 가방을 새 것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가방 손잡이가 너덜너덜 떨어질 때까지 함께 하고 싶다.
내가 고생한만큼 가방도 고생하고, 내가 나이든 만큼 가방도 나이가 든다. 가방이 갖고 있는 낡은 흔적들이 내 나이테가 되는 것이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