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마는 건 상당히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다. 재료가 무엇이 들어가냐, 조합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당근을 얇게 채를 썰어서 볶은 다음 소금으로 간을 하고 김밥에 넣어 돌돌 말면 고소한 당근 김밥이 된다.
오이 김밥은 또 다른 맛이다. 오이 하나를 껍질을 벗겨서 통으로 흰 쌀밥 위에 놓고 말아버린다. 한입 크기로 서걱서걱 썰어서 김밥 위에 집 된장과 시중에 판매하는 쌈장을 1대 1의 비율로 넣고 섞은 쌈장을 한 숟가락 올려 먹으면 정말 입 안에 여름이 찾아온다.
봄엔 미나리가 제철이다. 식초에 담가 세척 한 미나리를 현미밥 위에 올린다. 이때 오이 한 줄이나 단무지 한 줄을 넣으면 아삭함이 배가 된다. 김밥을 돌돌 말아 한입 크기로 썬 다음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다. 아삭아삭한 미나리가 봄바람을 몰고 입에서 춤을 춘다.
고기가 아쉬울 땐 두부를 잘 익혀 두부김밥을 만든다. 고소한 들기름에 튀긴 두부만 재료로 넣어 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 간을 맞추기 위해 볶음김치를 김밥 위에 올려 먹어도 맛있다. 짭쪼롬한 우엉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김밥을 만드는 건 레고를 쌓는 것과 같다.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서 새로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 그렇다. 나는 욕심이 많은 편이라 김밥에 때려 넣을 수 있는 모든 채소를 때려 넣는다. 단무지, 우엉, 볶은 당근, 시금치는 물론이고 잘게 썬 파프리카까지 왕창 때려 넣으면 엄청 뚱뚱한 김밥이 된다. 김밥을 말다가 옆구리가 터지는 건 예사라 김밥 옆구리를 납땜할 수 있는 여분의 김밥 김을 항상 옆에 둔다. 이리저리 터져서 흰 밥이 보이는 옆구리를 김밥 김으로 납땜해주고 나면 아기 팔뚝만큼 굵은 채소 김밥이 완성된다. 작은 크기로 잘라서 먹어도 되고 통째로 들고 뜯어먹어도 되는데, 역시 김밥의 매력은 한입 가득 넣고 볼이 미어터지도록 먹는 거라 굵게 김밥을 썰어서 한입에 넣는다. 물결치는 아삭아삭함에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재료를 따로 챙기기 귀찮을 때는 집에 있는 나물을 넣어 나물 김밥을 만든다. 시장에서 사온 시금치와 도라지 그리고 취나물을 넣고 꾹꾹 말아주면 건강한 나물 김밥이 된다. 시간이 많이 지나 푹 익은 파김치를 넣고 김밥을 말아도 좋다. 파김치만 넣은 김밥이 도대체 무슨 맛이냐 싶을 수 있지만 흰 밥에 파김치를 넣고 돌돌 말아서 작은 크기로 총총총 썬 다음 그 위에 체다치즈 한조각을 올려 먹으면 맛있다. 라면과도 찰떡궁합이다. 이건 꿀팁인데, 먹다 남은 파김치 김밥이 있다면 계란물에 적셔서 후라이팬에 부쳐보자. 파김치가 익어서 새로운 맛이 된다.
채소김밥의 마력은 실로 위대한 점이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채소김밥은 먹는다. 채소라면 질색을 하는 호적메이트도 파김치 김밥은 라면과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한다. 대충 다 때려 넣은 옆구리 터진 채소 김밥도 우적우적 잘 먹는다. ‘파프리카가 김밥에 들어가나?’ 뭐 이런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내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조금 덜 생소하게 느껴질 나물 김밥은 물론이다. 오늘 저녁, 아직 정해진 메뉴가 없다면 채소김밥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