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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레몬 Apr 16. 2023

10. 이토록 어설픈 채식주의자라니

“레몬씨, 저녁으로 뭐 드셨어요?”     


“저는 양상추 쌈이요!”     


“지난번에는 양배추 볶음밥 드시더니... 레몬씨 다이어트해요?”     


“아, 아니요.”     


식사 메뉴로 채식 식단을 말하면 주로 돌아오는 대답은 ‘다이어트 중인가요?’다.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럼 혹시 어디 안 좋으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럼 나는 ‘건강을 챙기려는 것도 있고, 환경에도 채식이 더 좋다고 해서요!’라고 말한다.     


사실 ‘환경에도 더 좋다고 해서요!’라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제법 많은 고난이 있었다. ‘건강해지려구요’ 혹은 ‘건강에 좋다고 해서요’라는 말까지는 듣는 사람들이 수긍을 하지만 ‘환경에도 더 좋다고 해서요’라는 말을 덧붙이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채식에 둘러싼 많은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수많은 기후학자는 입을 모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 육식보다 채식을 추천한다. 많은 데이터에 근거해 기후학자들이 지나친 육식을 비판한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시작하고 복병을 여러 군데서 맞닥뜨렸다. 의외의 복병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채식 위주의 식단을 잘 지키다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친구와의 약속, 혹은 직장 생활로 인한 회식에서 육식을 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양심의 가책이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나는 고기가 된 동물들에게 죄책감과 측은지심을 느끼는 선량하고 고운 마음씨의 소유자는 아니다. 다만, 큰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워서 잘 지켜오던 것이 망가진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몇 번 그렇게 루틴이 무너지고 나면 ‘채식은 무슨 채식’ ‘이렇게 어설프게 하면 뭘 해, 그냥 하지 말지 뭐’라는 생각에 예전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예전처럼 마음껏 돼지고기와 오리고기를 굽고, 불타는 금요일엔 치킨과 맥주를 들이켜고, 특별한 날에 소고기를 써는 식단은 미각을 춤추게 했다. 그렇게 열심히 고기를 먹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가 다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전세계적으로 육류 소비가 증가한 이후, 축산업에 의해 열대우림이 불태워졌고, 가뭄과 사막화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날 놀라게 했던 건 이 사실보다 우리가 일주일에 몇 번만 채식해도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완벽한 채식주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단 두 번이라도 육식 대신 채식을 하면 어쨌든 일주일 내내 육식을 하는 것보다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어설픈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야채를 섭취할 수 있을 때는 고기 대신 야채를 섭취한다. 예를 들어 혼자 밥을 먹을 때는 고기보다 채소를 택한다. 치킨이냐 쌈밥이냐의 갈림길에서 쌈밥을 선택한다. 다만 사회생활을 할 때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간다. 회식 메뉴나 친구들 모임 자리에서 메뉴가 고기일 때는 고기를 섭취한다. 이런 규칙을 따르면 일주일에 4번 정도는 온전한 채식을 할 수 있다.     


단백질 부족이 염려될 때는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두부, 콩, 케일, 시금치, 브로콜리와 같은 것을 현미밥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일주일에 주 3일은 육식 위주의 식단을 하게 되기 때문에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채식을 강권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채식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하면 ‘건강을 위해서 채식하기도 하지만 환경에 더 좋다고 해서 채식을 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꺼려졌다. 내가 무슨 대단한 환경 운동가도 아니고, 환경을 위한다고 하지만 이때까지 환경에 안 좋은 행동들을 너무나 많이 해왔으며, 환경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마치 으스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환경에도 좋대요’라고 말하면 반발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친한 친구 A가 ‘레몬이는 주로 채식을 하네? 건강식을 먹으면 확실히 건강에 좋지?’라고 물어봤을 때는 숨김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가까운 친구여서 내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친구 A가 ‘그래? 그럼 나도 한번 해볼래. 다음에는 야채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나의 말이 이렇게 한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친구 A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채식이 환경에 더 낫다는 말에 식단을 고를 때 채식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그다음부터 누군가가 나에게 채식의 이유를 물을 때 ‘환경을 위해서도 더 낫다고 해서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할 때 여전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민망하지만, 누군가는 그 말 한마디로 인해 식사 메뉴를 고르기 전 한 번쯤 채식을 고려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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