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레몬 Apr 16. 2023

11. 채식의 매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라면에 양상추를 넣어 먹으면 맛있어?”     


“어, 맛있어. 아삭아삭해.”     


“엄마, 취향 진짜 독특하다.”     


“아냐, 진짜 맛있어. 한 번 먹어봐!”     


“어, 뭐야? 진짜 맛있네?”     


엄마는 라면에 양상추를 넣어 먹는 걸 좋아하신다. 보글보글 끓여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에 양상추를 잘게 찢어서 젓가락으로 두어 번 저으면 양상추는 적당히 숨이 죽는다. 꼬들꼬들한 라면 면발과 숨이 적당히 죽은 양상추를 같이 먹으면 아삭아삭한 양상추의 식감이 약간은 느글거릴 수 있는 라면 기름을 잡아준다. 양상추가 들어간 라면은 국물도 개운하다. 뒷맛이 깔끔한 양상추 라면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거라곤 반년 전만 해도 알지 못했다.     


라면에는 무조건 파송송, 계란 탁, 만두 왕창 그 위에 치즈가 진리라 여겼는데 야채가 듬뿍 들어간 라면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채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모든 식사가 정말 맛이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무 맛이 없는 걸 먹고 살아가다니!’라고 감탄하며 이 세상 모든 채식주의자에게 마음속 깊은 경의를 표했었다. 처음 채식 위주의 식단을 시작했을 때 채식은 그야말로 무맛이었다. 먹는 무맛이라는 게 아니라 ‘없을 무 無’였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채식이란 해야 하니까 하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이거 선생님이 일주일에 네 번은 하래. 아 그래? 그럼 해야지. 열심히 해라.’ 뭐 이런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단을 지속하다 보니 어느새 입맛이 길이 들여졌다. 처음에는 아무 맛이 없다고 생각했던 야채들은 꼭꼭 씹어 먹다 보니 단맛이 느껴졌다. 채소 특유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재미있기도 했다. 외식을 할 때 식사를 마친 후에도 입 안에서 맴돌던 달고 짜고 기름진 맛 대신 깔끔한 뒷맛이 좋았다.     


채식위주의 식단에서 가장 쉬웠던 건 샤브샤브였다. 팽이버섯, 배추, 파프리카와 당근을 무조건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는 날 안타깝게 보던 엄마가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셨다. 바로 샤브샤브였다. 우선 뜨거운 물을 팔팔 끓인 후 장국을 약간 타서 샤브샤브 국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국물에 온갖 야채를 다 넣는다. 야채의 숨이 약간 죽었을 때 칠리소스에 약간 익힌 야채들을 푹 찍어서 먹는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매콤함을 느끼고 싶을 땐 간장에 와사비를 마구 풀어서 야채를 찍어 먹는다. 코끝이 알싸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매움을 느낄 수 있다.     


샤브샤브로 채식에 입문한 다음 제일 쉬웠던 건 쌈이었다. 뜨거운 물에 적당히 찐 양배추에 현미밥을 한 숟가락 넣는다. 매운 고추도 넣고 잘 찐 두부도 넣는다. 마무리 단계로 시중에 파는 쌈장에 집 된장을 섞고, 마늘을 듬뿍 넣어 변조한 쌈장을 한 숟가락 넣으면 완성이다. 한입 가득 들어간 양배추 쌈이 입에서 아삭아삭 씹힌다. 두부와 현미밥은 포만감을 준다. 양배추는 위에도 좋으므로 양배추쌈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해짐을 느낀다. 위도 쉬어가는 타이밍을 아는 것이다.     


“있잖아, 그렇게 채소를 많이 먹으면 안 지겨워?”     


끼니마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동생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동생은 20대에는 고기를 아무리 먹어도 괜찮았는데, 30대가 되니 속이 조금씩 부대끼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같이 어설픈 채식을 시작하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한 끼를 먹을 거면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도무지 채소로는 배가 안 찬다는 이유에서였다.     


“매일 다른 채소를 다른 방식으로 조합해 먹으면 안 지겹지.”     


“그냥 풀 맛 아니야?”     


“풀 맛도 엄청 다양해.”     


“그래봤자 풀 맛이 풀 맛이지.”     


“아니야, 라면에 들어간 양상추 한 번 먹어봐. 진짜 맛있어.”     


도무지 채소는 싫다던 동생도 양상추가 들어간 라면은 그럭저럭 잘 먹었다. 물론 동생만을 위한 사이드 메뉴로 돈까스와 불고기 김밥이 있었다.      


다양한 채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합해 보는건 재미가 있다. 팽이버섯을 카레에 넣어 먹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팽이버섯 카레를 만들어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꼬들꼬들한 식감이 마치 고기를 씹는 것 같았다. 잘 익은 파김치와 으깬 두부에 부침가루를 넣어 만든 두부전도 맛있다. 잘 익은 파김치가 두부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짭짤한 전과 막걸리는 금상첨화다.     


채식의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어렵다. 일단 신선한 채소를 먹으면 속이 개운해진다. 속이 부대끼지 않고(특히 익혀 먹었을 때) 머리가 조금 더 잘 돌아가는 느낌이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머리가 무거운데, 위는 가벼우니 몸이 가벼워진 느낌도 있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드니 더 많이 움직이게 된다. 가벼워진 체중은 덤이다. 


채식의 매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요약할 수 없는 게 채식의 매력이다.

이전 10화 10. 이토록 어설픈 채식주의자라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