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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없는 고백과 이미지가 된 병리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의 가장 정교한 위장

by CloudNine



요즘은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고백한다.
ADHD, 경계성, 회피형 애착, 소시오패스.
그 고백은 점점 더 유창해지고,
놀랍도록 설득력 있게 포장된다.

한때는 그걸 용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 시대구나.
그렇게 마음의 병을 꺼내놓는 사람들이
세상의 이해를 얻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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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한 장면들이 생겼다.

말은 슬픈데 표정은 흔들리지 않고,
고백은 있는데 감정은 없다.
“나는 공감이 안 돼요.”
“나는 소시오패스입니다.”
그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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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보며 느낀 건,
‘이건 자기소개 같아.’
‘브랜드 슬로건 같다.’

어쩌면 그 고백은
이해받고 싶은 말이 아니라,
관심받고 싶은 기획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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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라는 정체성을 말하는 한 유튜버가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진단받은 사람이라 말하며,
세상이 소시오패스를 오해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공감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다르게 처리할 뿐이에요.”

그리고 그 말들 위로
광고가 붙고, 조회수가 오르고,
‘용기 있는 자기고백’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그 고백 안에는
어떤 정서도,
흔들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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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감정 없는 고백’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건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의 가장 그림자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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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유형은 성공을 원한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완벽한 설계다.
감정이 방해가 되면 차단하고,
고백이 필요하다면 기능적으로 꺼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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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3번은
슬픔도, 상처도, 병리조차
자신의 서사 안에 배치한다.
"나는 이런 진단을 받았지만
여전히 유능하고 멋진 사람이야."

그 말은 진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진심이
‘정서적 진심’인지,
‘전략적 진심’인지는
가끔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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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해받고 싶은 고백’보다
‘멋있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를 만든다.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그 감정을 복제하는 능력이 있다.
그게 3번의 생존법이고,
동시에 누군가에겐
가장 큰 혼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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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종종 허무함을 느낀다.

> "분명 다정했는데,
왠지 나는 그 사람에게 닿지 못했던 것 같아."



그 허무함은 진짜다.
그건 당신이 둔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감정이 아니라 연출로 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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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런 고백들 사이에서
의문을 느낀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슬픈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슴은 움직이지 않았던 날.
누군가에게 위로받은 줄 알았는데
나중엔 이용당한 느낌만 남았던 관계.

> 당신이 느낀 건 틀리지 않았다.
그건 ‘감정’이 아니라
브랜딩된 자기 이미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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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3번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연기력이 너무 완벽할 때,
우리는 종종
그게 진짜라고 믿어버린다.

이건
그 ‘믿음이 흔들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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