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화자 May 10. 2016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14)

모과 열린 듯 꽃을 본다.

 모   과                                

                                                                                             매 원     신 화 자 

늦은 가을날 모과나무 가지 위에서 노랗게 익은 모과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 생긴 모과는 당당하고 빛깔 고운 자태로 갑자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과를 처음 발견한 아들은 오래간만에 집에 다니러 왔었다. 언제나 이것저것 관심과 애정이 많은 사람에게 자기 몸을 드러내 보인 모과는 한 여름을 성실하게 보냈노라고  말하는 듯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나무는 이사 오던 해 어린나무를 얻어다 심은 것이다. 봄에는 나뭇가지 가득 분홍색 꽃이 잔잔하게 피었다가 지기를 거듭하면서 기둥이 굵어지고 겉껍질이 벗겨져서 만들어 내는 무늬가 아름다웠다.  그러나 모과가 달려서 무르익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 본 적은 없었다. 어린 나무를 얻어다 심어 놓기만 하고 무관심한 채 나무는 성숙하고 꽃을 피우고 어느 사이에 열매를 키워서 가을을 맞이한 것이다.  몸집이 크고 당당한 호두나무와 밤나무 사이에서 햇볕을 받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멀쑥하게 키가 자라서 고개를 벌떡 치켜들고 나무 위를 쳐다보아야 할 만큼 모과나무는 키가 컸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모과는 과일가게에서 다른 잘 생긴 과일들 가운데 못 생긴 과일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고 울퉁불퉁 찌그러진 듯 균형을 잃은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먹을 수 없는 과일임에도 독특한 향기로 후각을 자극한다. 모과나무에 달린 모과를 본 적이 없었던 우리 식구들은  나무에서 한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깊어서 낙엽이 질 때까지 그가 키워 놓은 선물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아무도 눈높이 위로 시선을 두어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고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무에 달려있는 모과를 보는 순간 반갑기도 하고 한편 생각하니 미안했다. 그동안 모과나무는 열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기울였을 것인가. 비바람에 가지를 지탱하기도 힘겨웠으리라.  눈 여겨 봐 주는 이가 없었기에 많이 섭섭했으리라. 자기 눈높이 위로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향기로운 과일로 무르익어 늦은 가을이 될 때까지도 그의 수고로움에 관심을 보내지 않았던 일이 미안하고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 사랑을 받으며 치하를 받은 일도 없기에 모과는 오히려 겸손을 배웠을까,  수줍은 듯 부끄럽게 몸을 숨기고 있었던 모과의 성숙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대견하기만 하다. 


  분홍색의 잔잔한 꽃이 배꽃처럼 아름다운 모과의 고향은 중국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예천 모과가 유명하다. 전남 용주에는 둘레 35m나 되는 모과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모과는 따뜻한 남쪽 마을에서 잘 자라는 나무인 듯하다. 모과는 木瓜에서 나온 말이다. 나무에 달린 참외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모과는 열매가 못생겨서 한 번 놀라고 그 생김새에 향기가 좋아서 두 번 놀라고 그럼에도 먹을 수가 없어서 세 번을 놀란다고 한다. 게다가 봄에 피는 꽃은 예쁘고 아름다우니 또 놀라고  계란을 거꾸로 세운 듯 한 잎의 모양이 예쁘니 그 숲의 아름다움에 또 놀란다고 한다.  나무의 기둥은 껍질이 벗겨지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 흥부가의 한 대목 중에 등장하는 화초장이야말로 모과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할 만큼 모과나무는 고급가구의 목재가 된다. 모과의 떫은맛은 타닌이다. 꿀이나 설탕에 재웠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서 차로 마시거나 약용으로 쓴다. 살짝 쪄서 말렸다가 술을 부으면 모과주, 설탕과 함께 졸이면 모과정과, 모과병이다.


 예부터 이르기를 모과나무 없는 정자 있을 수 없다고 했다든가.  

어느 해 가을 진주에 갔다가 유명한 촉석루에 올랐다. 교교한 달빛에 어리는 남강 물빛도 아름답고 소곤거리듯 댓잎을 휩쓸며 대밭을 지나가는 바람도 좋았다. 촉석루 근처에는 여러 그루의 모과나무가 있었다. 크고 탐스러운 모과가 달빛을 받아 광채를 내는 것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모과는 나무 위에서 자태를 뽐내며 착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탐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올 가을에는 여덟 개의 모과가 익었다. 나무에는 수없이 많은 모과 꽃이 피었건만 단지 여덟 개의 모과를 탄생시켰을 뿐이다.  나무는 제법 키가 자랐기 때문에 푸른색 모과가 한 여름 푸른 잎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에는 몇 개나 열었는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신을 드러내기에는 아직 시간이 이르다고 몸을 감추고 있는 듯하였다. 첫 눈이 오고 난 뒤에 모과가 아직도 나무에 매 달려 있음을 생각해냈다.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듯 휘어진 가지에는 노랗게 익은 모과 여덟 개가 크고 작고 둥글고 길쭉하고 제각기 개성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하지만 모과는 과일 중에 잘 생긴 과일이다. 울퉁불퉁 이리저리 모양이 고르지 않기에 오히려 그런 생김새가 재미있고 아름답지 않은가. 개성 있는 생김새, 향기로운 냄새, 아름다운 빛깔, 모과야 말로 과일 중에 과일이다. 다만 시고 떫음에 그냥 입 속에 넣을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노랗게 익은 모과의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가을에 은행잎이 한꺼번에 물이 들 듯, 봄이면 개나리꽃이 따뜻한 마음을 담아서 우리에게 다가오듯 모과의 노란 빛깔이야말로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빛깔이다. 수줍은 듯 겸손하고 향기 가득 그가 놓인 자리가 더욱 아름답다. 나이 들어가면서 비록  겉모습이야 주름이 깊어질지언정 모과만큼 빛깔 고운 향기로 무르익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 것인가.  모과나무는 나이 든 사람이 심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 연륜이 생긴 뒤에야 비로소 모과를 알게 됨이리라.  

 모과와 명자는 비슷하게 닮은 열매다. 꽃도 닮았고 열매도 향기도 비슷하다. 다만 명자나무는 키가 작고 열매도 자그마하다. 그러나 모과와 명자의 냄새는 같다. 모과가 한약재로 쓰임에 모과 열매 대신 명자 열매를 쓰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을 다듬는 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