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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Apr 26. 2017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19

봄 나물-개두룹 필 때


                                                                                      
                                                               매원  신 화 자
  
 기다리는 봄은 느리고 더디기만 하다. 꽃이 필 만 하면 찬바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진다. 어둑한 하늘에서 눈발이 날린다. 그렇게 몇 차례 심술을 부리고 나서야 부드러운 훈풍에 꽃바람이 밀려온다. 갑자기 사방에서 꽃들이 한꺼번에 아우성치듯 피어난다.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에서는 겨우내 두툼한 솜털에 싸여 잠자고 있던 눈엽(嫩葉)들이 기지개를 하듯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여리고 부드러운 여린 잎들이 피어난다. 봄나물이 밥상에 오른다. 파릇한 새싹들이 상큼한 맛으로 입맛을 당긴다. 
 엄나무 새순은 활짝 피기 전에 나물이 더욱 향긋하다. 잎이 피면 너무 쓴 맛이 나고 억세기 때문에 때를 잘 맞춰서 따야 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린 것이 이제 막 잎을 펴려고 할 때, 초록빛이 광채를 내려고 할 때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어린잎이나 여린 것들을 좋아 하는 것인지... ’ 입맛을 다시면서 잠깐 미안해진다. 
 엄나무는 삐죽삐죽 험상궂게 가시가 돋아서 일까? 옛날에는 대문 밖에 엄나무를 놓아두어 잡귀가 집안에 들지 않도록 방비를 했다. 시골집에는 으레  대문간 기둥 옆에 엄나무를 매달아 두거나 바깥마당 한 옆에 심어서 귀신을 쫓는 방비나 액막이로 삼았다. 험상궂게 생긴 엄나무 가시가 귀신이나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었음직하다.  봄나물 중에 두릅을 제일로 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두릅보다 개두릅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산에 가면 엄나무가 귀해졌다. 엄나무 껍질 해동피가 약재라고 해서 마구 캐내기 때문이고  두릅나무와 엄나무 새순은 춘곤에 보약이라고, 누구나 좋아하는 봄나물이라서 이젠 아예 농가의 부수입거리로 재미가 쏠쏠하단다. 
 엄나무 새순은 갓 피기 시작한 새순일지라도 쓴맛과 함께 특이한 향기가 진하다. 그 맛을 즐기는 이들은 새봄, 이 나물 맛을 즐기면서 나른한 봄기운을 물리치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강릉지방 사람들은 엄나무 새순을 ‘개두릅’이라고 부른다. 향긋하고 쌉쌀해서 특별한 그 맛을 좋아한다. 영동지방이 고향인 동생의 남편은 ‘개두릅’ 이 피는 봄을 기다렸다. 위암이 깊어져서야 병원을 찾았던 터라, 병원생활을 하면서 암세포와 싸우던 가을이었다. 
 '형님이요오... 봄에 개두릅 필 때 올 거래이요!' 
 잠깐 병세가 호전되어서 춘천에 다녀가면서 던지고 간 약속이었다. 강릉이 고향인 동생의 남편은 개두릅을 유난히 좋아했다. 아버지의 강릉사위와 춘천토박이 사위인 남편은 친 형제보다 마음이 잘 통했다. 서로 닮은 데가 많아서인지 각별하게 가깝게 지냈었다. 취기가 오르면 유쾌하고 호방해지는 취미도 비슷해서 형님, 아우는 만날 때마다 쌓은 정이 깊었다.
 
 엄나무는 우리 집 마당 울타리 옆에 둘이나 나란히 서 있었다. 웬만한 기둥감으로 쓰여도 좋을 만큼 커 버린 나무는 어느 해 시름시름 잎이 시들다가 죽어 버렸다. 그리고는 씨앗을 남겨 어린 엄나무들이 또 다시 자라 제법 그늘을 드리운다. 해가 바뀌고 또 다시 봄이 오면 엄나무 가지마다 새 순이 돋는다. 어린 아이 손바닥처럼 새 잎이 피어날 때가 되면 남편은 세상 떠난 동서를 그리워한다.  개두룹이 필 때가 되면 남편은 버릇처럼  말한다. 해마다 같은 이야기를 올해도 또 되풀이 한다. ‘그 사람 참 너무 일찍 떠났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면서 남편은 혼잣말로 또 중얼거린다. 나는 엄나무 순을 바구니에 주워 담으면서 주말에는 내려오려나?  내 자식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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