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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Aug 11. 2018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
​-26 -

수필 - 얼 굴

얼 굴  

                                                                                  매원 신화자 

춘천박물관에 가면 꼭 둘러보는 것이 있다. 한참을 머물러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돌을 깎아서 만든 모습이 어떻게 저토록 부드럽고 온화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친근하고 다정한 각각의 표정과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한 없이 편안하게 한다. 오래전에 우리와 가깝게 지내던 얼굴들이다. 모자란 듯 시무룩하고 무표정한 듯 어수룩한 표정이 있는가 하면 바위 뒤에 숨어서 무언가를 엿보는 얼굴도 있고 등을 맞대고 경건하게 서있는 모습도 있다. 웃거나 찡그린 표정까지도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인간의 다양한 얼굴과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나한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마음이 평화롭고 한 없이 따뜻해진다. 한참을 머물러 바라보면서 말 없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춘천박물관에 전시된 30여점의 영월 창령사지 출토물 나한상들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30-45cm, 폭 25-30cm정도의 크기인데 동글납작한 얼굴 윤곽에 돌의 질감이 풍부하고 얼글에는 하나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포대기 싸고 두건 두르고 팔짱 낀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의 편안하고 후덕한 표정이다. 가사장삼을 쓴 조각상도 있고 민머리의 승려상등 다양하다. 깨달은 성자들의 모습이지만 장난끼 어린 얼굴들이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민초들의 얼굴이 아닌가. 5, 60 년 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던 시대에도 마음은 따뜻하게 간직했던 우리민족 고유의 얼굴들이다. 얼굴모양과 표정은 한결 같이 평범하고 소박하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돌에서 풍기는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보다는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해학과 유머를 느낄 수 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로 일체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대중을 구제하라는 임무를 위임 받은,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 한 자격을 지닌 불교의 성자들이다. 나한상은 중국에서 스님이 입적한 뒤 상을 만들어 공경한 것으로 서진의 승랑상을 시작으로 16나한상, 500나한상이 만들어 졌다. 실제의 인물이었던 조사들과는 달리 다분히 설화적인 인물로 각 존상의 특징을 지니게 되고 해학성이 높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에 원효가 입멸한 뒤 그 뼈를 바수어 진흙과 섞어 대사의 모습을 만들어 공양하였으며 흥륜사의 금당에 모셔 공양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나한신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한상은 대개 자세에 있어서 자유로이 바위에 앉거나 팔을 괴고 쉬는 자세, 선 자세로 표현되고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눈을 내리뜨고 참선하는 얼굴, 이를 드러내고 웃거나 미소 짓는 얼굴, 찡그린 얼굴등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모습은 우리민족 고유의 넉넉하고 여유있는 심성을 간직한 얼굴 표정들이다. 영월 창령사지에서 발견된 나한상은 2001년 토지 소유자가 경지정리를 하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나한상의 얼굴은 화강암으로 만들어 전체적으로 둥글고 부드럽다. 둥글납작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코는 두툼하고 낮다. 이들은 스스로 수명울 연장하고 날아다니며 신통력을 지녔다고 하는 나한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고 친근하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위안을 얻는다. 

사람들의 얼굴은 변하고 있다. 우리들의 본래 얼굴 모습이 바뀌고 있다. 순수한 한국인의 얼굴을 찾느라고 고심했다는 어느 사진작가는 순수한 우리네 얼굴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아쉬워했다. 아름다운 얼굴의 기준이 서구화하고 서양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간다. 우뚝한 코와 큰 눈, 머리와 이마의 모양까지 서양 사람들을 닮아간다. 높은 코와 큰 눈에 쌍꺼풀을 만들기도 한다. 여자들은 열심히 화장을 하고 얼굴윤곽을 바꿔서 서양인들의 얼굴 윤곽을 닮아간다. 화장으로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만족을 위한 꾸밈이다. 나이가 어린 여자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나이든 여자들은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원한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 이곳저곳에 색조를 입히고 수정작업을 한다. 화장품은 기초화장에 색조화장에다 기능성 화장품까지 다양하고 순서도 복잡하다. 제대로 화장을 하려면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 앉아서 얼굴을 매만져야 한다. 20대에는 화장, 30대에는 분장, 40대에는 변장이라는 농담도 있다. 

얼굴을 보면 첫인상이 결정 된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얼굴은 상대방에게 좋은 느낌을 주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좋은 관계를 맺음에 얻는 게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느낌과 다른 경우도 있다. 좋은 인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인상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다. 외모보다도 내면의 인품이 중요한 것이다. 화장으로 인품과 취향이 표현된다. 얼굴에서는 인품과 성격이 보인다. 얼굴은 인품과 성격을 나타내고 인품과 성격은 얼굴을 만든다. 어떤 일을 오래도록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특별한 인상은 그 사람의 직업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나이 사십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나 보다. 어린이의 얼굴에는 천진무구와 순수의 아름다움이 있다. 젊은이의 얼굴에는 용기와 자신감이 아름답다. 노인의 얼굴에서는 연륜과 함께 쌓인 지혜와 관용의 아름다움이 있다. 

인간미 넘치는 나한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실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성자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순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의 가치가 성자의 얼굴을 만드는 것이라고 깨우쳐 주는 듯하다. 다툼을 모르고 가진 것이 없어서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어린애 같은 천진스러움이 담겨 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야말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나한상은 오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으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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