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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Aug 14. 2018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29

수필- 감자타령

감 자 타 령

                                                           신 화 자

  "감자가 크지도 않았고 잘 안지를 않았어요."

워낙 가뭄이 심했던 터라 감자농사가 잘 안 됐단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상자를 열어보니 웬걸씨알 굵은 감자알이 튼실하다. 경상도에서도 택배비 물어가며 감자를 사 간다고 농부가 자랑하듯 한 말은 거짓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분의 성실함을 잘 아는 터라서 감자 두 상자를 샀다. 중간크기 감자 한 보따리와 조림용 작은 감자 한 봉지를덤으로 얹어 준다.집안에 들어 와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붙잡는 걸 간신히 뿌리쳤다. 시골동네 인심은 아직도넉넉하다.

 옛날부터 '하일고구마'가 유명했다. 하일은 장학리 쪽 지명이었다. 지금은 넓은 길과 큰 다리가 생기고 교통이 좋아진 곳이다. '하일'하면 고구마를 연상 할 만큼 유명했던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장학리가많이 변했다.신도시처럼 변하고 부터는 고구마 얘기는 잊어버리게 됐다. 감자는 '신매리 감자'를 으뜸으로 친다. 신매리는 아직도 감자와 김장채소들을 잔뜩 키워내고 있다. 이른 봄에 감자 싹을 본 것 같은데 벌써 햇감자 철이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감자를 사다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감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서면의 신매리와 월송리는 이웃한 동네다. 월송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월송리 감자 맛에 푹 빠졌다.

 햇감자를 넉넉하게 사다 놓고흐뭇해한다. 6,7월은 습기 많고 무더운 계절이다. 더운 몸들은 서로 마주 닿으면 열을 받아서 감자들도 병이 난다. 땅 속에서 몸을 만든 감자는 햇볕에 노출되면 푸른색이 되고 파랗게 된 감자는 아린 맛이 나고 독성을 품기 때문에 서늘하고 어둡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햇볕을 가려준다. 팍신하고 반짝반짝 분이 나는 감자 맛이 좋아서 한 며칠은 계속 감자만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중간크기 감자를 북북 문질러 껍질째 소금을 살짝 뿌리고 압력솥에 찐다. 껍질이 툭툭 터지면서잘 익은 감자들이 뜨거운 김과 함께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뜨거운 감자와 시원한 오이냉국은 궁합이 잘 맞는다. 

  감자는 오염되지 않은 땅의 기운과 태양의 정열이 빚은 열매들이다. 소박하지만 건강한 먹거리다. 찐 감자를 먹으면 6.25피난 시절 생각이 난다. 1950년7월... 육십 몇 년 전이다. 햇감자나오고 햇 보리쌀 먹는무더운 여름 장마철이었다. 육십 여년이 지났건만 피난길에서찐 감자를 고추장과 함께 먹었던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불그레하고 보리 밥알이 덜 삭아서 몽글몽글 씹히던 고추장은 메주냄새가 많이 나는 낯설고 거친 음식이었음에도 꽤 맛나게 먹었던가 보다. 어렵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 일수록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6.25전쟁은 막바지에 이르고 휴전이 될 무렵이었다. 함경도 할머니 한 분이 더부살이로 살림을 도와주며 함께 살았었다. 그분의 함경도식 감자음식 메뉴는 다양했다. 감자를 갈아서 전을 부치고 떡을 만들고 범벅과 수제비도 만들었다. 전쟁 직후에 고향에 돌아와서 쌀이 귀했을 것이다. 옥수수밥을 질리도록 먹은 것도 그때였다. 감자와 옥수수는 그 한 해 여름 구황식품이었다. 

저녁밥상은감자범벅으로 차렸다.감자범벅은 여름에많이 먹는 음식이다. 감자와 밀가루와 강낭콩이나 완두콩을 넣은 감자범벅은 특히 강원도 사람들의 별식이다. 범벅은 아마 옛날부터 사시사철 우리민족과 친숙한 음식이었던 것 같다. 경기 민요 범벅타령을 들어보면 일 년 열두 달 범벅이 빠지지 않는다. 정월에는 달떡 범벅이요. 이월에는 시래기 범벅이요, 삼월에는 쑥 범벅이요, 사월에는 느티 범벅이요, 오월에는 수리취 범벅이요, 칠월에는 호박 범벅이요, 팔월에는 송편 범벅이요, 구월에는 꿀 범벅이요, 시월에는 무 시루 범벅이요, 동지에는 동지 범벅이요, 섣달에는 흰떡 범벅이라고 범벅타령을 한다. 계절에 맞춰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은 모두 범벅이 되었다. 야채거나 나물이거나 두루뭉수리로 곡물가루와 함께 버무려서 익히면 범벅이 되었던 것이다. 감자범벅은 껍질 벗긴 감자와 강낭콩에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소금 살짝 뿌려주고, 밀가루를 적당히 버무려서 감자위에 얹는다. 압력솥 뚜껑을 덮어 익히다가 약한 불로 10분쯤 뜸을 들이고 나서 잘 익은 감자를 푹푹 으깨고 강낭콩과 밀가루 반죽을 고루섞어서 그릇에 담으면 감자범벅은 요리 완성이다. 감자의 구수함과 밀가루 쫄깃함과 강낭콩의 담백함이 서로 어울린 맛이다. 간소하지만 포만감 가득한 감자로 밥상을 차려놓고 보니 유월에는 ‘감자범벅’이라고 범벅타령을 고쳐 부르고 싶어진다. 

 햇감자와 햇 강낭콩 범벅은 봄에 거둔 첫 곡식과 채소다. 하늘과 땅과 땀 흘린 농부에게 추수감사가 아닌 춘수감사라도 올리고 싶어진다. 

  포실 포실하고 반짝반짝 윤기 나는 햇감자로 만든 감자범벅에는 오이냉국이 제격이다. 감자는 따뜻하게오이는 시원하게 먹는 것이 포인트다. 만들기 쉽다. 보기보다 훨씬맛나다. 꾸밈은 전혀 없지만 입맛 당긴다. 투박한 모양에 소박한 맛은 고향처럼 순수하고 정겨운 맛이다.나이가 들어 갈수록 입맛은 단순해지고 소박해진다.  

 강원도를 감자바위라고하면 강원도 사람들을 비하한다고 발끈하기도 한다. 감자가 바위처럼 묵직하고 무던해서 든든하다. 투박해서 무딘 듯 바위처럼 표현은 없지만 속이 깊어서 믿음직하다는말일게다. 감자처럼 소박하지만 웅숭깊은 맛이 왜 푸대접 받아야 하는가. 감자는 속 깊은 인정으로 존중받고 사랑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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