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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Jun 28. 2019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 31

비누냄새

비누 냄새    

                                                              신 화 자    

  치과에 가면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입을 벌리게 한다. 입을 벌려서 불편한 자세로 치아를 긁어낸다거나 발치를 한다던가 하는 일은 가슴이 오그라는 듯 괴로운 일이다. 눈을 감고 통증을 참고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긴장과 고통의 시간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의사 선생님 손이 입과 코 근처를 살짝 살짝 스칠 때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났었다. 그건 은근하게  향이 좋은 비누 냄새였다. 청결한 비누 냄새는 기분을 좋게 한다. 좋은 냄새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통증과 불안함을 가라 앉혀주었다. 

 젊음과 신뢰와 호감이 충만했던 치과 의사선생님이 이제는 세월과 함께 늙어 버렸다. 일흔살은 더 되셨을 그분의 손에서는 옛날의 그 비누냄새가 안 난다. 병원 구석 구석 먼지가 보이고 물컵도 께름칙하다. 병원이 예전처럼 청결하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그렇더라도 향 좋은 비누냄새가 옛날처럼 여전했으면 나는 수 십년 단골칫과를 바꾸려고 갈등을 아니 할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 냄새가 좋아! ’라고 말하던 딸이, 어느새 그 시절의 자신보다 더 성숙한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내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엄마, 환기를 좀 시키세요!”라고 말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청결을 좋아하는 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냄새 관리까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 된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고 칙칙하게 빛이 바랜 거실의 벽과 천정을 칠하고 벽지도 바꾸기로 했다. 집 안의 오래 된 냄새를 바꾸는 작업을 한다. 섬유 유연제는 향이 좋은 걸로 조금 더 짙은 걸 고르고 청결과 청소와 청량함에 게으르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향기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꽃에서 풍기는 향기, 숲에서 나오는 상큼하고 풋풋한 냄새처럼 젊음에서는 저절로 향기가 풍긴다. 싱싱한 것에서는 싱그러러운 냄새가 나고 좋은 냄새는 좋은 추억으로 기억에 남는다. 연애 감정은 상대방의 냄새에 이끌림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든을 넘기고도 항상 유쾌하게 웃음과 유머가 넘치던 분이 생각난다. 그분은 노인이면서 고급향수를 쓰셨던 것 같다. 젊은 아들 며느리와 한 집에 사시던 시어머니께서는 향기를 각별히 신경쓰셨으리라. 밝고 건강한 웃음과 함께 향기를 풍기던 그 분에게서는 너그럽고 따뜻한 인품이 돋보였었다. 

  향기란 무엇인가. 좋은 냄새는 좋은 기운이다. 가슴을 흔들어 가벼운 울렁증을 일으키기도 하는 향기는 지나치게 강할 때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두통을 일으키기도 한다. 향기는 적당히 알 듯 모를 듯 은근하게 풍겨야 한다. 인공적이지 않으며 가식적이지 않아야 한다. 자연 친화적이라야 하며 너무 강렬한 향기는 쉬이 지쳐서 멀미를 하고 역겨움에 곧 싫증을 느끼게 한다. 향기는 강렬함보다 은근함에 매력이 있는 것이다.  좋은 냄새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기분을 좋게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향기요법이란 게 있다. 우울함. 어두움, 슬픔, 무기력함을 치료하는 도구로 향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향기로 좋은 기운을 돋구어서 슬픔을 극복하고 우울함을 걷어내고 어둡고 무기력한 성격을 밝음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깨끗하고 청량한 비누냄새를 맡으면 나는 기분이 좋아서 그 사람이 좋아진다. 내일은 예약이 돼 있는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을 만날 것이다. 상큼하게 향이 좋은 비누를 선물하리라. 나는 은근하게 향이 좋은 비누냄새를 풍기는 그런 사람이 좋더라.

 향기는 기분이 좋아지는 건강한 기운이다. 좋은 냄새는 좋은 관계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분명한 노인 축에 들어 선 나도 이제는 향이 좋은 비누 냄새 뿐만 아니라 고급향수도 가까이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그러운 노인의 인품에서 풍기는 그런 향내를 풍겨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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