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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Dec 23. 2019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  32

가벼운 게 좋다.

가벼운 게 좋다 

              신 화 자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있다. 단독주택에서 거의 사십년동안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서살았다. 오래 된 주택에는 오래 된 가구들과 잡동사니들이 쌓이고 모였다. 집수리 하느라 십 칠년 전에 한 번 정리를 하기는 했으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 탓에 그 동안 모이고 쌓은 게 생겨서 또 버릴 게 많아졌다. 

 책들이 많다. 오래된 옛날 책들은 빛이 바랬고 종이질도 나쁘다. 뿐만아니라 이미 지나간 정보들은 쓸모가 없단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식들이 가져가지 않는 전문서적과 교양서적들도 내게는 짐이다. 나는 살림을 가볍게 정리하기로 했다. 서적들을 정리하고 책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거나 신간을 사서 보는 게 좋겠다고 작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손자들이 보던 동화책은 어린이들 노는 곳으로 보냈다. 가벼운 읽을거리를 원하는 아들이 시집과 수필집을 가져갔다.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환자와 입원환자들은 읽을 거리가 필요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일부는 정류장 책방으로 보냈다. 필요한 대로 골라내고 나머지는 페지로 버릴 수 밖에....

 가벼운 것들 중에도 버릴 게 있다. 한 동안 가벼움과 편리함으로 흔해 빠진 비닐과 플리스틱이 공해의 주범으로 주목 받고 있다. 오래 된 것은 물론이고 가볍지만 새 것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가벼운 것도 버리고 있다.     

 이불이 너무 많다. 오래 된 옛날 이불은 두껍고 무겁다.  볕이 좋은 날 빨랫줄에 널어놓고 보니 오십년 세월이 무상하다.  아들 둘과 딸이 오줌 한 번 흘린적 없이 잘 커서 솜은 새 것처럼 뽀얗다. 그러나 이제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버겁다. 언제부턴가 장롱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그것들 중에서 우선 두껍고 무거운 솜요를 네 장 골라냈다. 옛날 온돌 방 바닥은 온도 변화가 심했다. 그 시절의 솜요는 얄팍하기 보다 두꺼워야 했다. 지나 온 세월처럼 무겁게 눌린 솜요를 비에 젖을까, 먼지와 때가 묻을세라 비닐포장을 해서 재활용품 수거함에 버리는데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그것들을 내다 버리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도망치듯 집으로 왔다. 장롱안은 가볍고 헐거워졌다. 한나절이 지나서 누군가 필요한 이가 가져 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꼭 필요한 이의 따뜻한 잠자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사진을 정리했다. 아들과 딸이 가져가고 남은 것들 중에서 몇 장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아차! 신중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아이들 자라는 모습은 추억이다. 옛날의 흑백 카메라 사진도 있고 칼라플한 사진 속 아이들 모습은 천사의 모습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없기에 소중한 기록들이다. 제대로 골라서 블로그에 올리고 나서 가져가라 할 껄 그랬다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내가 가방은 조금 큰 걸 좋아했었다. 언젠가 며느리가 공항 면세점에서 내 취향을 묻는 전화를 했기에 작은 것 보다는 조금 큰 게 좋겠다고 말했다. 명품가방은 조금 크고 무게도 제법 나가는 편이어서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리고시간이 지나서는 무게가 부담스러워서 명품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며느리에게 '선물하노라’ 면서 돌려주었다. 무거운 게 부담스러워서다. 요즘 나는 가벼운 헝겊 가방을 좋아한다.이불도 옷도 무거운 게 싫다고 하시던 옛날의 시 어머님 시대로 내가 돌아가 있다. 가벼운 게 좋다고, 좋다고 하시던 시어머님처럼 나도 어느새 가벼운 게 좋다고 좋다고 노래처럼 읊어댄다. 

 어느 집 젊은 며느리가 시 부모님 사후에 묵은 살림을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푸념을 하더란다. 그러고 보니 늙은이의 살림일수록 간단하게 가볍게 정리해야 한다. 남겨야 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탐낼 만큼 가치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늙어 갈수록 참신하고 새로운 것에 집착을 해야한다. 묵은 것과 낡은 것을 고집하면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나는 원래 소박한 취향인지라  살림도 그러하다. 그릇과 옷가지들도 가진 게 소박해서 많지 않은 건 다행이다. 가재도구도 그렇고 가진 것들 중에 값진 패물이나 골동품 따위 한점 지닌 게 없으니 이젠 몸뚱이만 남은 듯 홀가분하다. 대문을 열고 살아도 마음이 가볍다. 심심하면 이것 저것 솎아 내듯이 버리고 또 버릴 것을 찾는다. 언젠가는 이 몸뚱이 조차도버려야 할 날이 올 것이므로 나는 가볍게 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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