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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May 01. 2021

글 쓰는 할머니의 이야기 35

신매리 오미산에서

< #신매리 오미산에서>

                                                                            신화자

 

 신매리 오미산에서 춘천을 바라본다.

오미산은 신매대교에서 좌회전으로 한 모퉁이를 돌아 금산리 쪽으로 가는 왼쪽에 나지막한 산이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높고 큰 산이었다. 길을 넓히고 새로 닦을 때마다 돋우고 높이면 주변에 논과 밭도 따라서 흙을 메우고 돋운다. 그렇게 헤서 산들은 낮아지고 작아졌다. 세월이 흐르니 살아생전에 가까웠던 집안의 어른들께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봉분이 여기저기 더 많이 늘어났고 산자리가 비좁아졌다. 오미산은 평산 신 씨 선관공파 종중산이다. 높고 큰 산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예쁜 산이다. 호수와 봉의 산을 바라보는 경관이 아름답다.

 

  오래간만에 아버지께 추석인사를 왔다. 오미산은 높지 않아도 앞이 탁 트여서 춘천시의 뒷동네가 아득하게 바라보인다. 전망이 좋다. 봉의산은 언제 보아도 늘 그림처럼 그대로다.  산 아래 우양이 마을은 양어장이 들어섰고 전기모타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거린다. 양어장에서 물고기에게 줄 신선한 물을 퍼 올리는 중인가 보다. 바위와 경치가 아름다워서 소금강이라 불리고 어느 해 큰물에 떠내려 왔다고 전해져서 부래산이라는 이름이 있는 고산도 호수에 잠기면서 높이가 많이 낮아졌다. 고산은 옛날에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댐이 생기지 않아서 소풍삼아 놀던 곳이다. 호수가 고산을 둘러싸 섬처럼 된 이후로는 그곳에 가 보지 않았다. 언제 놓았는지 사농동에서 고산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놓여있다. 저 다리는 언제 생겼을까.

     

   신매대교가 생기기 이전에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배를 타고 성묘를 다녔다. 사공이 노를 저어서 나룻배가 강을 건너 주다가 얼마 후 댐이 물을 가두자 호수에 물이 깊고 넓어졌다. 통통 배가 통통거리면서 물살을 가르고 사람과 짐을 실어 날랐다.  리어카와 자전거도 실리고 광주리에 배추며 무, 오이등 채소와 곡식을 팔러 나가는 서면의 마을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더울 때는 강바람이 시원해서 좋았지만 날씨가 추운 날은 강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것처럼 매웠다.

 

  신매리 쪽에 배를 대었던 그 자리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그 느티나무는 육십 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서 마을과 호수를 지켜보고 있다. 느티나무 뒤에 파출소는 진작 자리를 옮겨 앉았으나 느티나무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산을 향해 걷던 길옆에 까페가 생겼다. 사람들은 호수를 한 바퀴 돌아 드라이브를 즐기고는 이 카페에서 차를 마신다. 물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느긋해지고 편안해진다. 나도 얼마 전에 잔디가 잘 정돈된 그 카페에서 호수와 느티나무와 봉의 산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묘했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추억을 찾아 온 것 같기도 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봄에는 감자 꽃이 피고 가을에는 김장밭이 펼쳐지는 신매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기름진 땅과 함께 살아간다. 봄에는 감자밭에서 감자가 투실투실 자라고 가을에는 김장밭이 푸르다.

 

  아버지는 말년에 제주에 계시면서 고향을 그리워하셨다. 중풍으로 고생을 하시던 그 해 겨울, 생신에 아버지를 뵈러 딸들이 제주에 갔었다. "신매리에 다리가 생긴다지?" 라고 초점 흐린 시선으로 아버지는 내게 물으셨다. 그러나 이듬해 봄에 아버지는 영정(影幀) 앞세우고 진달래꽃 핀 오미산에 오셨다. 그리고 어느새 이십 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아들이 누군가에게 의뢰해서 벌초를 하고 간 뒤처리가 어수선하다. 예초기로 깎아 낸 마른풀이 봉분위에 수북하다. 그나마 이만하기도 아들의 책임감이리라. 흩어져 제각각 살고 있는 딸들이 다섯이건만 어느 날 한 자리에 모이자고 누군가 주선을 할 새도 없이 추석이 지나간다. 주과포, 간단히 진설하고 남편과 성묘를 한다. 딸자식의 이기심으로 난 내 자식과 내가 살아가는 일이 잘 풀려 편안하기를 아버지께 도움을 빌어본다.

     

  주변에 들꽃을 카메라에 주워 담고 산을 내려온다. 성묘도 아니 오고 벌초도 하지 않아 쓸쓸하고 황량한 무덤을 보면서 생각한다. 한 세상 부지런히 살다가 돌아 갈 때는 한 줌 재가 되어 자연으로 깨끗이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자식들의 짐을 덜어 주는 일이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봉의산과 고향을 에워싼 호수를 내려다보신다.

 신매대교를 궁금해 하시던 아버지께 새로 놓인 다리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린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신매대교를 지나가고 싶다.

승용차로 신매대교를 건널 때면 아버지 생각을 한다.

     #아버지   #신매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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