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鳶
바람과 鳶(연)
신 화 자
소나무 숲이 울창한 산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은 파도가 되어 '솨아'솨아' 나무를 흔들고 숲을 흔든다.
가벼운 것을 흔들어 놓고 사라지는 바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은 다만 흔들리는 나뭇잎으로 보이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바람은 늘 다니는 길이 있어서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홀연히 왔다가 사라지는
나그네다.
봄바람은 꽃 소식과 함께 와서 새 싹을 돋아나게 한다.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준다.
청량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사나운 짐승이 울부짖듯 나무를 흔들고 계곡을 흔들고
구름을 몰고 와서 큰물을 퍼 부어 두려움에 떨게 한다.
바람은 귓전을 자나가면서 속삭이듯 노래하고 꽃을 피우고 낙엽을 떨어뜨린다.
때로는 매서운 칼바람이 되어 텅 빈 들판에서 윙윙 서러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가벼운 것을 흔들고 지나가는 작은 바람이라도 잡고 있는 끈을 노치면 아주 멀리 날아
가 버린다.
바람을 안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鳶)을 잘 날리려면 바람이 알맞게 불어야 한다.
힘차게 바람을 가르면서 높이 올라가는 연을 보고 있으면 새가 된 듯 마음까지도 하늘로
날아오른다 . 연이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면서 하늘을 헤엄쳐 다닐 때는 연과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다. 연 날리기는 더 넓은 세상으로 꿈과 희망을 함께
싣고 떠나는 여행이다. 바람은 연을 띄워 올리기도 하지만 연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한다. 바람의 변덕스러움과 심술궂음을 연을 날려 본이들은 안다.
바람을 타고 바람을 잘 이용하는 것이 연을 잘 날리는 요령이다.
알맞게 줄을 풀어주고 알맞게 당겨 주는 것은 바람과의 타협이고 대결이다.
바람은 열정이다. 鳶은 내 안에 이루고 싶은 자기 열망의 희망과 꿈이다.
연을 날리듯 꿈을 담아 하늘로 띄우는 일은 바람의 열정이 있어서 가능하리라.
자식들은 부모에게 있어서 鳶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누구나 부모 된 이들은
가슴에 연을 날린다. 꿈과 희망을 찾아서 높이 올라가는 연을 바라보는 일은 얼
마나 신명이 나는 일인가.
누군가 바람이 되어 내게로 다가오는 사랑은 설레는 영혼의 흔들림이다.
중년의 바람이 아름다운 로맨스로 미화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중년여인의 불륜이고 바람인가?
아름다운 사랑이고 로맨스인가? 나는 그 영화를 중간에서 보기 시작 했을 때 불륜과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여행을 떠난 며칠 사이에 외간 남자를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 사랑을 나누다니! 방향과 궤도를 이탈한 마음의 흔들림은 걷잡을 수 없는 바람
이기에 불륜이고 바람이다. 그러나 두 번째 그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았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중년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이고 로맨스다.
위태로운 중년의 갈등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대로 저 남자를 따라 갈 것인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내 자리를 지킬 것인가.
남편이 운전하는 옆자리에서 자동차 문의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 뛰쳐나갈까 말
까. 그녀의 갈등이 착잡하다. 주인공이 흔들림에 따라서 행동하고 가정을 떠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중심에 얼레를 가지고 있어서 실을 감았다 풀어주고 다
시 감는다. 크거나 작거나 바람과의 한 판 승부를 벌인다. 긴장과 이완으로 자기
절제의 균형과 질서를 지켜내면 바람도 로맨스가 된다.
밤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하룻밤 잠을 청한다.
바다에서는 소나무 숲을 지나가던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밤바다는 밤새도록 잠 한 숨 안자고 "솨아, 솨아"
소나무 숲을 흔들던 바람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밤바다에 부서지는 파도소리는 솔숲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꼭 닮았다.
바람은 변화다. 우리는 늘 변함으로 새로움을 갈망한다.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가면 계절이 바뀌고 유행도 바뀌고 자리도 바뀌고
사람도 바뀐다. 모든 것은 바람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성숙하고 철이 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여.
웬만한 바람이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아서 슬픈 이여.
바람이 부는 날은 鳶을 날리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