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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Aug 20. 2021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 40

오래 전 농부의 일기 중에서

                   -쓰러진 옥수수 일어서다-


  어느 날 비바람이 심하게 지나가면서 옥수숫대가 모조리 쓰러졌다. 옥수수 대가 약해서 큰 바람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옥수수 포기도 거리두기가 필요한데 농부는 욕심을 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둘 거라는 생각으로 거리두기를 무시했다. 너무 다닥다닥 붙어서 햇빛과 영양부족으로 기둥이 약하고 가늘게 자랐다. 바람도 충분히 쐬어서 비바람에 미리 적응을 하고 뚝심을 키워야 하는데 옥수숫대의 기둥이 빈약하게 자랐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옥수수들이 거의 다 바람에 쓰러졌다. 기가 막힌 농부가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데. 지나가던 이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더란다.

'소용없어요.' 

'..............'

결국 옥수수 밭은 버림받은 듯 내 버려졌다. 쓰러진 옥수수 보기가 안타깝고 실패에 대한 자책을 인정하는 것도 즐겁지 않았으리라. 내 버려진 듯  모르는 척, 한 동안 밭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때가 되자 시장에는 찰옥수수들이 자루에 담겨 나왔다. 옥수수 철이 된 것이다. 오십 개 들어있는 옥수수를 한 자루 샀다. 만 육천 원, 싸기는 하다. 농부의 노력과 흘린 땀을 생각하면 그만큼 보다는 더 주고 사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따서 방금 가져 온 거라더니 정말 맛이 좋은 찰옥수수를 열 한 식구가 먹고도 남아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아이들에게 들려 보냈다. 

  얼마쯤 또 시간이 지나갔다. 등 돌려 내 버려 둔 옥수수, 우리 밭에 다 쓰러졌다는 옥수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동안 들여다보지도 않은 옥수수 밭이 궁금했다. 

 관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밭에서는 옥수수들이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생존과 회생의 전략을 세웠다. 옥수수 밑동의 마디마디에 버팀목의 구실을 하면서 물과 영양을 흡수하는 곁뿌리들을 만든 것이었다. 한 뼘이나 되는 곁 뿌리들은 비닐을 뚫고 들어가기도 했다. 쓰러졌으나 다시 일어서면서 옥수수들이 더러는 씩씩하게 잘 자랐고 삼분의 이 정도는 쓰러진 채 상체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쓰러진 채로 겹쳐 진 포기 사이사이에서 옥수수들은 놀랍게도  토생이들을 만들었고 씨앗이 여물고 있었다. 
  시련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까. 

옥수수 토생이들을 보니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안아주고 싶을 만큼 고맙고 감동적이다. 쓰러졌다고 본체도 아니하고 내버려 둔 게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바람에 쓰러졌던 옥수수는 튼실한 씨앗으로 여물고 있었다.

 “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찰옥수수를 좀 보세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다. 옥수수의 의지와 용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배우라고 외치고 싶었다. 

옥수수보다 연약한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어려운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의 탓을 하나요?

여건이 안 된다고, 이러저러한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주저앉은 채 일어서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여!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 선 옥수수를 보십시오!

당신들은 부끄럽지 않은가요?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알곡으로 성장한 찰옥수수는 윤기가 찰찰 넘친다. 보기만 해도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다.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발동을 한다. 밭에서 옥수숫대를 뚝 자르면 대궁에서 흐르던 단물의 추억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아이들은 겉껍질 벗긴 옥수숫대를 질겅질겅 씹었다. 설탕물처럼 단물이 넘치는 대궁은 옥수수 특유의 향기에다 단맛까지 있었다. -사탕수수가 그 보다 더 달콤할 수는 없으리라.―

강원도 찰옥수수는 냄새부터 기가 막히게 좋다. 옥수수 토생이 겉껍질을 벗기면 촉촉하게 젖은 듯 마른 옥수수 수염과 하얀 속껍질에서 풍기는 옥수수의 속살 냄새는 표현하기 어려운 향기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밭에서 부터 솥에 들어가기 까지 일사천리로 빠르게 직행한다. 압력솥에 추가 빠르게 흔들리고 딸랑거리기 시작하면 뜨거운 김과 함께 퍼지는 옥수수 냄새가 또 한 번 가슴을 설레게 한다. 찐 옥수수는 달착지근하고 쫄깃쫄깃하다.

“아니! 너희들은 왜 이렇게 못 생겼니?”

“고생을 많이 해서 이렇게 된 거죠 !”

“환경이 나빴어요. 생육조건이 나빴기 때문이랍니다. 간신히 살아서 이렇게라도 결실을 맺었답니다.”

“.............. 에구, 가엾어라! 그래, 장하다. 장해! “

“그런데 그 옆에 키 크고 잘 생긴 넘 !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생겼을까?”

“저는 요. 워낙 종자가 좋은 거죠. 물론 생육조건도 좋았고요. 뭐니 뭐니 해도 종자가 좋아야 해요.” 

종묘상에서 구입한 옥수수 종자는 완전 소독 ‘박사찰옥수수’ 라고 한다. 그들이 냉동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찰옥수수가 반가운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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