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너무 믿었다.
사람을 너무 믿었다.
그 사람은 시간을 잘 지켰다. 약속한 시간보다 오분이나 십분 먼저 도착했다.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니까 우선 신뢰감이 갔다. 게다가 한 번 작은 일을 맡겼을 때 만족감을 얻은 것이다. 사소한 믿음은 큰 신뢰로 가고 있었다.
이십삼 년 된 건물의 지층 임차인이 전화하기를 누수. 즉 벽에서 물이 흘러내린다는 것이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수도 계량기는 네 개다. 수도 계량기를 보고 1층에서 누수를 확인했다. 누수탐지기를 싣고 온 그 사람은 새는 곳을 못 찾았다. 1층 상수도 배관 교체를 하겠다면서 계단 중간에 위아래 화장실을 함께 수리하기로 했다.
화장실 두 개와 지하 누수 차단 공사의 계약은 구두계약이었다. 시공자의 사무실은 이웃에 있었다. 화장실의 양변기 부속품을 바꾸는 작은 공사를 한 번 하면서 구면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연고를 소주 한잔으로 얼버무리면서 일을 맡기게 됐다. 공사비용은 요구하는 대로 육백만 원으로 결정했다. 성실하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은 참으로 순진했다.
수도, 설비, 배관, 목공, 전기등 일곱 개 자격증을 땄노라고 큰소리치더니 일의 진도는 지지 부진했다. 일을 못하는 건지 고의적으로 시간을 끄는 건지 분명치 않게 여러 날이 지나갔다. 자재비는 사흘째 되는 날 달라는 대로 보내줬다. 누수는 계속되는데 수도관을 바꾸는 작업은 이 핑계 저 핑계 미루고 있었다. 게다가 의심스러운 점은 공사 진척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 줄 것이니 현장에는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배관을 바꿨다고 사진 한 장을 폰으로 보냈는데 어설프고 이해할 수가 없는 사진이었다. 현장은 땅을 파 낸 흔적이 보일뿐 작업은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일을 맡겨놓고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고 저자세를 유지하면서 열흘이 지나갔다. 그동안 한 일은 화장실 두 개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을 뿐이다. 누수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배관을 바꿀 거라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수탐지팀을 다시 부른다면서 한 시다. 세 시다. 다섯 시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신뢰는 무너졌다. 저녁 7시쯤 집으로 불렀다. 남편과 그 사람이 소주를 한 병 비웠을 때 기분 좋게 말했다.
“더 기다리게 하지 말고 수도관 바꾸는 작업을 하세요.”
“앞으로 열흘 더 걸려야 끝납니다. ”
“당장 내일 배관 바꾸고 누수를 막으세요.”
“그러면 공사하고 나서 문제 생겨도 말하지 않겠다고 각서 쓰세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이십여 일을 지체하고 게다가 부실 공사하는데 동의하는 각서를 받겠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렇게 못하니 그만두시오! 내일 다른 사람 오기로 했어요!”
그렇게 구두계약은 12일 만에 구두로 취소된 줄 알았다.
다음날 아침에 비가 오는데 현장에서는 배관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날 좋은 날 미루고 미루다가 비 오는 날 골라서 부실 공사하는 겁니까?”
“화장실까지 이틀 안에 끝내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 불러 공사하기로 했는데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제가 술이 취해서……. 실수했어요.”
“배상받을 겁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일 만에 일단 공사는 끝을 냈다. 시작부터 십 오일 지났다. 삼사일 아니면 오일 정도, 아주 느긋하게 잡아도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을 보름 동안 끌고 온 것이다. 공사는 미흡한 점이 있었고 가장 중요한 누수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동안 턱 없이 사람을 믿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크거나 작거나 공사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 공사기일도 서류 안에 넣어서 작성해야 한다. 『공사 명세서를 작성해라. 공사 기간은 물론이고 자재의 명세도 밝혀라.』라는 깨달음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실수를 한 것이 부끄러웠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가 고의로 공사기일을 늘린 것은 서류가 없이 구두로 한 약속을 악용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누수 전문가가 아니었다. 건물의 누수는 까다롭고 치료가 어렵다. 그 사람은 누수공사에 자신이 없으면서 욕심을 낸 것이었다. 소비자 고발을 하든지 경찰서 민원실을 두드릴 것인지 그냥 넘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여러 날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살이 났다. 그 사람은 반죽이 좋은 건지 사람을 얕잡아 본 건지 죽을 사서 두고 갔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시공비 잔금을 받고 싶으면 재판을 해야 할 겁니다.’ 문 밖에 있던 죽은 가져갔는지 없어졌다. 그 뒤로 우체국에 다니면서 내용증명을 보냈다.
“누수가 멈추지 않아서 당신과 계약을 끝내고 다른 사람 불러서 공사 마쳤습니다.” 내용증명에는 그동안 공사일지와 지지부진했던 공사 진척상황을 첨부했다.
신용사회는 개인의 책임감으로 만들어진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부심을 가지려면 실력도 있고 신용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믿고 사는 신용사회는 언제쯤 가능할까. 전문가는 실력을 갖춰야 하고 신뢰는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