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씹는 맛
매원 신화자
한 없이 순수하고 순진한 이것을 과일보다 더 만나게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가을무는 인삼보다 보약"이라고 시어머니께서 좋아하셨다.
첫 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불룩했던 오십 년 전이다.
오십 년 전에 변두리 농촌에서는 흔하게 널린 게 싱싱한 무였던 것이다.
겨우내 싱싱한 무를 많이 먹었다.
저녁에는 씻은 무를 밤참으로 주셨다.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시원하고 달큼하던 무들-
요즘도 생무를 잘 먹는 편이지만 그 시절 겨울 무 맛에 비교할 수가 없다.
겨우내 무를 많이 먹어서였는지 4월에 출산한 아들이 씻은 무처럼 희고 멀끔하게 잘 생겼다고 보는 사람마다 칭송?을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무를 안 먹는다. 뱃속에서 무를 너무 많이 먹어서 물렸나 보다.ㅋ
풍성한 겨울이었다. 마루 광에는 쌀 가마니가 가득 쌓였고 동네 쥐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날마다 잔치 굿을 벌였다. 연타 광에 구공 탄을 한 차 부려서 쌓아 놓고 김치 광에는 김장독에 김장을 해서 묻어놓았으니 겨울준비는 완벽하게 마친 셈이었다. 무 구덩이에 저장한 무는 무나물과 뭇국으로 자주 밥상에 올라왔다.
어느 날, 도시락에 무나물을 깔고 들기름 두른 점심을 싸 온 동료가 있었다. 난로 위에서 무 밥이 데워지면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사정없이 구미가 동하는데... 엄청나게 맛나게 보였는데...
새댁이었던 나는 그 걸 (무나물 도시락 밥) 못 먹어보고 출산을 했다.
얼마나 순진하고 쑥맥이었던지... 시집살이가 무에라고...ㅉㅉㅉ
앙~앙~ 울어 버릴까?
해마다 겨울에는 가끔 무밥을 해 먹는다. 양념간장에 쓱쓱 비비면 반찬이 없어도 좋다.
들기름! 올해는 들기름이 귀한 게 문제다. 지난 여름과 가을에 날씨가 나빠서 들깨 작황이 안 좋다고 한다.
농사할 때는 친구한테 들기름 선물도 하고 그랬는데...
시중에는 진짜가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수입산도 믿을 수가 없다. 들깨는 변질이 잘 되기 때문이다.
무밥도 무나물도 들기름 없으면 제 맛이 안 난다. 고가인 들깨를 조만간 수소문해서 직거래로 사다가
약처럼 귀하게라도 먹어봐야겠다.
무장아찌도 비법이 궁금했는데 드디어 알아냈다. 짜지 않고 오독오독 -
비결은 당연히 가을 무다. 절임에는 소금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것은 유튜브에 가면 고수들이 가르쳐준다.
그리고 무청 시래기, 이거야말로 가짜가 있을 수 없다. 엮어 말린 시래기도 겨울 양식이다.
구수한 된장과 함께 입맛이 돌아오게 하는 겨울 밥상의 단골 메뉴다.
오래되어 늙어지면 결혼생활이 무 씹는 맛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은 무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요즘 아이들은 김치를 안 먹는아이들이 많다. 달고 진한 맛에 익숙해서 순수하고 소박한 맛을 모른다.
흔하게 널려있는 순박하고 순수한 맛을 소홀하게 여긴다. 인공의 감미료와 조미료 향신료에 절어 있다. 상품으로 외식으로 길 들여 가고 있다.
"너희들이 무 맛을 알아?"
쭉쭉빵빵 싱싱하게 자란 가을무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