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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Mar 17. 2022

글 쓰는 할머니의 이야기 57

비대면의 시대는 TV 전성시대

  비대면의 시대는 TV전성시대       


  크기와 성능의 차이는 있지만 집집마다 TV가 있다. 라디오와 TV는 이제 귀중품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TV는 물론이고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에는 신문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읽었다. 나는 혼자가 되면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듣는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는 라디오가 친구다. 길을 가다가 익숙한 아나운서나 방송인들의 음성이 들리면 가족이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귀를 기울이고 듣게 된다. 라디오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가 있어서 좋다. 옛날 성우들은 목소리만 가지고 배우들보다 더 흥미롭고 실감 나게 연기를 하는 바람에 라디오 연속극은 인기가 많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면서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음악을 들으면 공부가 더 잘 된다고 한다.  

 -라테는 말이야- 꼰대들의 옛날이야기란다. 6.25 전쟁 중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한 상황이었고 라디오는 귀중품이었다. 어려웠던 시기를 지나오면서 배고픔이 무엇인지 거친 음식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집안 형편이 과히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쟁 직후에 뉴스 전용의 제니스 라디오는 지금의 소형 TV만큼 커다란 라디오였고 아버지 방에서 아버지 전용이었다. 1953년쯤부터 10대를 보낸 우리 세대들은 대부분 음악을 모르고 성장을 했다. 한창 감수성이 좋을 때 음악을 모르고 자랐으니까 불행한 세대들이다. 배 고픈 사람들이 많아서 끼니 걱정을 했는데 무슨 음악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이었다. 사범학교는 입학시험에서 낙방하는 친구들이 절반이나 되었으므로 긴장을 하고 겁을 먹었다. 문제집에 실린 음악 문제는 그때까지 들어 본 적도 없는 ‘호두까기 인형’ 이이라던가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무엇이며 ‘백조의 호수’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호수인가? 그야말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감수성의 전성 시기인 10대에 음악을 모르고 살았으니 어떻게 하나? 긴장을 많이 했는데 합격을 했다. 그때 우리 또래들의 형편은 모두 비슷했던 모양이다. 얼마 후 금성 라디오가 나왔고 국산 라디오와 오디오의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들 방에도 라디오가 생겼다. 아침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과 구령에 맞춰서 전 국민이 국민체조를 했었다. 뉴스와 일기예보를 알려주던 라디오는 대 국민 소통의 도구 역할을 했다. 

  라디오를 통해서 잃어버린 구슬 백을 찾은 일도 있다. 어느 날 네 살과 여섯 살, 아들 둘을 데리고 성당 병원에 갔다. 주사를 맞던 아들 하나가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손에 들었던 구슬 백을 의자에 내려놓고 잠깐 등을 돌린 사이에 구슬 백이 사라졌다. 그 방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특별히 께름칙한 것은 행색이 남루하고 험상궂게 보이는 중년의 남자 세 사람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과 함께 구슬 백이 사라진 것이었다. 난감했다. 약값은 사정을 말하고 외상을 허락받았으나 5월의 뜨거운 뙤약볕에서 아이를 업었다가 걸렸다가 진땀을 흘리면서 기진맥진 집으로 왔던 것인데, 어느 날 아침에 옆집 아줌마가 말했다.

“ 아무개 엄마! 방송국에서 구슬 백 찾아가라 했어요!” 

“내~ 에?. ” 

  그 시절, 오전 10시쯤에는 라디오에서 음악과 함께 시민들의 사연이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는 지방 방송국 프로가 있었다. 구슬 백을 주워서 방송국에 맡겼으니 찾아가라 했단다. 남편의 빈 월급봉투가 단서가 되었으니 하마터면 남편의 월급명세가 방송을 탈 뻔하지 않았는가. 현금과 고급 만년필은 없어진 채 빈 구슬 백을 찾아왔다. 구슬 백은 병원 입구에서 주웠다고 하더란다. 라디오 방송은 별난 사연도 많았고 청취자들은 서로 가까운 이웃이던 시절이다. 한 때는 휴대용 소형 라디오가 유행을 하다가 이제는 누구나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휴대폰에는 라디오와 TV는 물론이고 금융과 통신과 일상의 모든 생활정보와 소통의 열쇠가 들어 있다.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비대면의 시대기 이어가면서 사람들과 만남의 기회가 사라졌다. 혼자 놀기를 즐겨야 한다. 사람들은 갑갑하다. 외출할 때는 마스크가 기본이다. 입과 코를 마스크로 가리고 안경을 쓴다. 머리에는 모자를 깊숙하게 눌러쓰면 복면 괴한이 따로 없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들도 노인들도 서로 알아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거리를 다닌다. 평소에 말이 없어서 갑갑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혼자도 잘 놀고 있다.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나 혼자 놀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TV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TV를 켜면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하고 운동을 하고 쇼핑을 하고 다양한 정보를 전해준다. 심지어 집안에서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세계여행을 할 수도 있다. 간접경험도 소중하니까 TV를 보면서 여행을 한다. TV의 여행객들은 현지에서 여행을 안내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더 자세하게 여행 경험을 보여주면서 해설을 곁들여 안내를 한다. 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트로트 열풍이 불었다. 미스 트롯에 이어 미스터 트롯이 인기를 끌더니 방송사마다 비슷한 프로를 만들고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 시청률 대박이 났다. 총천연색 컬러풀한 화면에서는 미스, 미스터 트롯 가수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건강하고 패기가 넘치는 젊은 사람들을 화면으로 보는 일은 정신과 의사들의 처방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아서 그들의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에너지가 전파를 타고 내게 전해오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할머니 팬들은 미스 트롯보다 미스터 트롯을 더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순수하고 신선하면서 강하고 멋진 사나이들이 등장하는 강철부대도 좋아한다. 흉내 낼 수는 없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젊었던 시절의 꿈과 추억을 회상하거나 잠깐이지만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한다.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하면서 열광하는 것 같다. 

  TV는 사람들을 앞에다 불러서 앉혀놓고 눈과 귀를 동시에 집중하게 한다. TV를 보면서 새롭고 다양한 정보를 만나고 삶에 지친 영혼들은 트롯 부대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강철부대를 보면서 강철처럼 강하고 멋진 사나이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음이 든든하다. 

  비대면의 지루함은 끝나지 않고 있다. 수그러드는 듯하더니 다시 새로운 변종과 변이의 바이러스가 창궐(猖獗)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고 경고한다. 비대면의 우울감과 갑갑함은 앞으로도 얼마쯤 더 TV를 보면서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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