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1960)&미치광이 피에로(1965)

두 편의 속 시원한 영화

by 봄눈

”우리는 휴가 나온 죽은 자들이다.”


네 멋대로 해라(1960)&미치광이 피에로(1965),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아녜스 바르다 - 에릭 로메르 - 장뤽 고다르 순으로 이어지는 누벨바그 영화들에서, 고다르의 영화는 뉴웨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의 역사에서는 한 획을 긋는 영화라고 한다. 고다르는 당시 영화 잡지의 편집장으로 영화 평론을 하던 사람인데, 자신이 영화를 잘 찍어보겠다고 해서 찍은 영화가 '네 멋대로 해라'라고 한다. 제목 때문인지, 나는 이 영화가 통쾌했다. 평소에 나에게 외면당하고 인식되지 않았던, 무언가를 전복시키고 싶은 나의 욕망을,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주인공이 대신 해소해 주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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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의 여배우인 진 세버그가 여자 주인공인 미국인 유학생 파트리샤이다. '세버그'라는 영화도 있고, 세버그는 '미치광이 피에로'에 나오는 영화 속에도 나온다. 그만큼 세버그가 연기하는 쇼트커트의 파트리샤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파트리샤가 유명 영화감독을 인터뷰하면서, "배신하는 여자와 버리는 남자 중에 어느 것이 나으냐?"라는 질문을 하고, 감독은 '배신하는 여자가 더 낫다.'라고 말한다. 그 대답을 듣고 파트리샤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며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이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일 수 있다고 한다.

미셸 역의 남자 주인공 장폴 벨망도는 점잖지만 츤데레이고 마초이면서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인 험프리 보가트를 차용한 분위기를 많이 낸다. (험프리 보가트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 'Here's looking at you.'라는 유명한 말을 만들어낸 배우이다.) 영화를 보면서 미셸의 사회 규범에 대한 무시, 규범이기 때문에 더 깨고 싶은 마음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이렇게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은 자신의 존재가 불안함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남들을 모두 무시하는 적대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의 발현일까 궁금해졌다. 미셸이 집착하는 것은 단 하나, 파트리샤이다. 미셸 같은 영화 속 허무주의자들은 왜 연애에 집착할까? 허무를 받아들여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사람만이 비로소 연애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일까.


6bfcdf5ba41d6a4b87e8e2a9171768bb.jpeg 미셸과 파트리샤

파트리샤는 미셸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도주하는 척한다. 그러다가 미셸을 형사에게 넘기려고 형사가 가르쳐 준 번호로 전화를 한다. 형사에게 신고한 후 은신처로 돌아온 파트리샤는 미셸에게 경찰에 전화해 당신이 여기 있는 걸 말했다고 털어놓는다.


파트리샤: 미셸, 내가 경찰에 전화했어. 당신이 여기 있다고 말했어.

미셸: 미쳤어? 너 제정신이야?

파트리샤: 그럼, 아주 멀쩡하지. 아냐 멀쩡하지 않아. 당신과 떠나고 싶지 않아.

미셸: 그럴 줄 알았어.

파트리샤: 나도 모르겠어.

미셸: 나는 내 얘기만 했고 넌 네 얘기만 했지.

파트리샤: 내가 바보 같아.

미셸: 서로 상대 얘길 했어야 했는데.

파트리샤: 당신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경찰에 전화했어. 당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려고 같이 있었던 것뿐이야. 아니,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 확인하려고 한 거지. 내가 못되게 구는 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야.

미셸: 다시 말해봐.

파트리샤: 내가 못되게 구는 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미셸: 행복한 사랑은 없다고들 하지.

파트리샤: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면...

미셸: 그런 생각을 하긴 했군.

파트리샤: 너무 복잡해져.

미셸: 오히려 그건 반대야. 불행한 사랑은 없어.

파트리샤: 남들이 날 가만 놔두면 좋겠어.

미셸: 난 독립적인 사람이야.

파트리샤: 당신은 날 사랑할지도 몰라.

미셸: 넌 자신이 독립적인 줄 알지만 실은 아냐.

파트리샤: 그래서 당신을 신고한 거야.

미셸: 내가 너보다 우월해.

파트리샤: 이제 당신은 떠나야만 해.

미셸: 넌 미쳤어. 말이 안 돼.

파트리샤: 당신은 바보야.

미셸: 모든 남자와 자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는 안 자는 여자 같아. 다른 남자들과 많이 잤다는 핑계로 말이야.

파트리샤: 왜 도망치지 않지? 난 여러 남자와 잤고 믿을 만한 여자가 못 돼. 어서 떠나라고, 미셸. 왜 꾸물대는데?

미셸: 아냐, 그냥 있을래. 어차피 끝장이야. 차라리 감옥에 가고 싶어.

파트리샤: 미쳤군.

미셸: 맞아.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곳에서 난 벽을 바라보겠지.

(대화문 전문은 영화토론 모임의 회원님에게 빌려왔습니다.)


내 생각에 파트리샤는 미셸을 사랑하지 않았다. 파트리샤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녀는 인생의 허무를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미셸은 자신을 파트리샤가 밀고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자신이 도주할 차를 가지고 온 친구에게 '그 여자가 자꾸 생각난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대해서 친구는 너를 밀고한 여자이니 정신 차리라는 식의 말을 건네도 소용이 없다. 미셸은 여전히 파트리샤를 사랑하는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충실히 따른다. 미셸이 이전에 파트리샤의 방에서 파트리샤를 좋아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아, 에, 이, 오, 우'를 하는데,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 죽어가면서도 똑같은 입모양을 한다. 그런 입모양을 하면서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내려다보는 파트리샤에게 너를 좋아했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미셸은 "역겹다."라고 말하고 죽어가면서, 자기 눈을 자기 손으로 감긴다. 대단한 마지막 장면이다. 이 영화의 원제가 '마지막 숨결'이란 뜻이라는데, 자기 눈을 자기 손으로 감기는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라 생각했다. 제 멋대로 살았던 미셸에게 어울리는 가장 독립적인 죽음이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파트리샤의 마지막 말, "역겨운 게 무슨 뜻이죠?"

(미치광이 피에로에서 두 주인공이 차를 타고 가면서 '사랑은 역겨운 거야.'라고 말을 한다.)


ps. 영화 속 배우가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관객한테 말을 거는 순간은 객체(영화)와 주체(관객)가 바뀌는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같은 순간처럼 보인다. 박경리의 <토지(총 20권 중 15권-다산책방)>에서 강포수가 뒤에 다시 나올 때, '독자들은 강포수를 기억할 것이다.'라는 작가의 목소리를 담은 문장이 나온다. 천명관의 <고래>에서도 그런 작가의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미치광이 피에로


영화의 시작은 남자 주인공 페르디낭이 이탈리아 부자인 처가의 파티에 가는 장면이다. 파티에 흥겨움은 없고, 남자들이 차 얘기나 하고, 여자들은 데오드란트 얘기나 하고, 영화감독마저 틀에 박힌 대답이나 한다. 속옷 광고 속 말을 그대로 믿는 부인이나, 지루한 파티가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 주인공은 그 장면들을 스쳐 지나간다. 이 부분이 롤랑 바르트가 그토록 깨고 싶어 했던 자본주의의 틀에 박힌 기호들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의 지루한 기호들로 가득한 생기 없는 세상을 답답하게 여겼을지 모르는 페르디낭(피에로)은 그 파티에서 옛 애인인 마리안느를 만나서 같이 도주를 시작한다. 피에로는 숨 막히는 기호의 제국에서 벗어나서 살아 움직이는 진짜 세상으로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이후에 이 도주마저도 피에로가 도둑질을 해서 달아났다는 거짓말로 위장된다. 역겨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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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의 과정에서는 생생하고 아름다운 진짜 세상의 모습이 펼쳐진다. 들판, 바다, 멋진 차, 두 주인공은 생생한 세상 속을 신나게 휘젓고 다닌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일 때, 스토리라인은 아름다운 화면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그런지 스토리라곤 없다. 동시에 세상에는 '기호의 전복'이 등장한다. 남자는 빨강차, 여자는 파랑차를 타고 운전하는 장면 등이 사회의 기호를 반대로 보여준다.


마리안느는 페르디낭(고다르의 분신)의 분열된 자아를 나타낸다는 설이 있다. 마리안느는 춤추기 좋아하고 도시에서 살고 싶어 하는 자아이고, 페르디낭은 진지하게 영화를 하고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아이다. 그런데 마리안느가 페르디낭을 피에로라고 부르는 것은, '너는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피에로(광대) 일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페르디낭이 마리안느를 실수로 죽게 하지만, 의도치 않은 살인의 충격으로 얼굴에 파란 칠을 하는 것은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피에로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9fa29973-b42c-40ae-993a-13c4571e3f26.jpg 페르디낭과 마리안느

통쾌한 두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는 어떤 면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영화였다. 감독이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단편적이고 독특한 에피소드들을 그때그때 즐기면 된다. 사회, 영화에서 통용되는 질서를, 규칙을 다 파괴해버리고 싶다는 감독의 마음이 보인다. 이런 마음은 천편일률적인 기호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번 흔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이를 기호의 전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감독인 장 뤽 고다르가 남들이 하지 않는 것만 하려고 하는 감독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네 멋대로 해라>는 무엇을 전복했는지 궁금해진다. 그 당시의 주류 영화들 분위기를 알면 무엇이 전복되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나는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도 없는 주제에 괜히 추측해 본다면, 그 당시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상을 전복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영웅적인 주인공 대신에 나쁜 일을 아무렇게나 해대는 남자 주인공을, 남자 주인공을 순애보적으로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 대신에 자신의 알 수 없는 욕망을 위해서 남자 주인공을 희생시키고도 조금도 거리낌 없어하는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가 아닐까? 그리고 그 둘이 만들어내는 서로를 불쾌하게 하는 사랑의 모습을.

<내 멋대로 해라>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상이 있으며, 이런 인간상 모두 세상에 존재하는, 실제로 존재하는 많은 인간상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봐야 했다. 그럴 정도로 두 주인공이라는 인물은 생소하고 낯설었다. 즉, 나는 '나에게 낯설다고 해서 이 세상에 없는 종류의 인간들은 아니'라는 것을 계속 상기하면서 영화를 봐야 했다. 내가 사회가 나에게 늘 제시하는 인간상만 알고 있고, 그런 인간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영화는 내 내면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인간을 이래야 한다.'라는 '기호'를 뒤집어 준 영화라고 부르면 되겠다.


그런데, 미셸이 죽기 전에 말하던 '역겨운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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