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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Nov 27. 2019

어린이집 보내고 집안일하지 맙시다  

[어차피 완벽한 루틴은 없어] 내 시간은 내가 지켜야 해  


*전업주부를 혐오하는 성차별적인 발언, 비하나 욕설이 담긴 악플은 삭제합니다. 




 


이거였다. 이래야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자마자
 집안일을 시작하는 건 실수였다.      



‘전업주부‘ 또는 소위 ‘전업맘‘으로 살던 시간이 꼬박 만 4년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자마자 바삐 집안일에 돌입하는 게 나의 일이라고 여겼다. 열심히 했다. 1-2시간 동안 저녁부터 쌓인 설거지 하고 세탁기에 빨래 넣고, 꺼내고, 널어두고, 이부자리 먼지 탈탈 털고 어질러진 장난감과 옷가지를 제자리에 두고 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물걸레로 닦았다.       


하고 나면 개운했다. 반질반질한 거실 바닥을 보며 믹스 커피 한 잔 마시면 보람찼다. 슬슬 글 좀 써볼까. 그런데 사람 몸이라는 게 모드 전환이 스위치 끄고 켜듯이 되지 않았다.      


청소하고 나면 허기 진다. 밥 한 끼 대충 먹으려고 해도 노동력이 들어간다. 전날 끓인 국과 찬밥을 데우고 밑반찬 덜고 하다 보면 설거지도 생긴다. 먹고 치우고 나면 기운 쭉 빠져서 머리 쓰기도 몸 쓰기도 싫다. 글쓰기는 한 문장에서 제자리이고 책 한 장 읽으려 하면 졸음 쏟아진다. 운동을 하자니 뱃살이 무겁다.      


만만한 게 육아 용품 인터넷 쇼핑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물건이니 이 시간도 업무의 일환이다. 나 노는 거 아니야. 보다 보면 쏜살 같이 아이 올 시간이 된다. 아이가 돌아오면 기껏 치운 집안은 다시 엉망이 되고, 남편이 집에 일찍 와서 가만히 있으면 또 열 받고. 하루 종일 일만 한다는 생각에, 대체 내 시간은 언제 있느냐는 마음에, 억울함이 끓어올랐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알차게 시간을 써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알차게 집안일을 하니까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여자이면서
전업주부가 있어야 할 곳은 집안이었다. 



아이가 기관에 입소하자 비로소 누구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토록 고대하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났다. 그런데 막상 쉬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남편이 회사일 하는 동안 나는 집안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도 될까. 


어린이집 무상보육이 시작된 2013년부터 전업주부 혐오는 심해졌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여자이면서 전업주부가 있어야 할 곳은 집안이었다. 온종일 집에 박혀 쓸고 닦고 가족을 위한 서비스를 대기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감히 밖을 싸돌아 다니려 한다며 질책했다. 남을 해치지도 물건을 훔지도 않았는데도 나는 죄인이 되어 있었다.    



전업주부나 전업맘에게 근무시간은
‘식구들이 있을 때 행하는 돌봄의 시간’이다



말하고 싶다. 전업주부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다면, 직업의식을 가지라고 하고 싶다면 의무만 가지라고 할 게 아니라 권리도 주어야 한다고. 주부도 하나의 직업이고 노동자라면 근로시간을 준수해 주라고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은 쉴 새 없다. 밤에 데리고 자면서 수유 한다거나 기저귀 갈아준다거나 이불 차는 거 봐주는 야간 근무까지 한다. 아침에 등원 준비, 오전에 집안일, 오후에 아이 돌봄, 저녁 준비, 밤샘 근무까지......직장인 근무시간 뺨치거나 넘는다. 


주부는 대체 언제 쉬어야할까?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쉬면 안 되는가.  


직장인이 9시부터 6시까지 근무라면 주부의 근무시간은 식구들이 집에 있는 아침과 저녁이 되어야 한다. 식구들이 밖으로 나가면 주부는 퇴근해야 한다.


직장인들도 퇴근하면 모임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갖는 것처럼 주부도 근무 시간 이외엔 재충전해야 한다. 직장인이 업무가 많아 야근을 하는 날이 있더라도 밤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듯이 주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주부가 자기 근무시간이 아닌 시간에 브런치라도 먹으면 비난할까매일 브런치 하는 주부가 대한민국에 몇 프로나 될까. 그런 사람을 보았다면 당신은 아주 상류층 동네에 살고 있는거다.



  

금쪽같은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쓰고 싶다    



나는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돈을 버젓이 벌지 못한다고 해도 주부나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난 활동을 하고 싶었다. 해야만 살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금쪽같은 시간을 해봤자 티 안 나고 돈도 안 되는, 빨래하기, 물걸레질하기, 먼지 닦기, 육아용품 주문하기, 가계부 쓰기에 투여하기 싫었다. 그런 일에 가뜩이나 부실한 체력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보살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해도 해도 처음처럼 돌아오는 일이 아니라 누적되고 기록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여자라서, 엄마라서,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나는 이 역할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언젠가 다시 사회에 나갈 것이고 지금은 유예 기간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생기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여섯 시간은 절호의 기회였다.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하기엔 어렵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찾아가기엔 충분했다.      


처음엔 학원을 등록해 영어를 배우기도 했고 요가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정착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야 따져보고 알았다. 집안일까지 잘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집 치우고 나가려다가 지각하고 헐레벌떡 뛰어 와서 미리 저녁 준비하려다 보니 다급했다.      


본격적인 글쓰기와 책모임을 시작하며 시간은 더욱 빠듯해졌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서서히 순서를 바꿔나갔다. 집안일에 허겁지겁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기로 했다.







식구들이 없을 땐 집안일을 멈추자.



식구들이 없거나 잠든 시간엔 주부 업무를 멈췄다. 먼저 일어나 밥을 차리지도 않았고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도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인터넷 뱅킹이나 쇼핑도, 맘카페 서핑도 하지 않았다. 집안일이란 식구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 깨어 있을 때만 하는 것.           


누군가는 미리 해야 쉽다고 했다. 그런데 경험컨대 아이가 서너 살까지는 미리 한들 아이 오면 어차피 개판이었다. 내 몸만 힘들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다섯 살쯤 되자 엄마가 청소하고 설거지할 때 기다려주었다. 반복해서 말해줬다.


 “엄마가 설거지하고 놀아줄게.” “다 했다! 이제 놀자!”      


아이가 방해가 되어 영상물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도 하지만, 좀 보면 안 되는가. 아이의 요구에 무조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이도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집안일을 한다는 걸 알고 기다려주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함께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집에 와서 낮에 왜 청소 안 했냐고 물어본다면 말하자. 


 “애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이 나는 퇴근 시간이야. 


퇴근 후 집에 오는 사람에게 집안일 시키기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


요리를 시킬 수도 (시간이 너무 늦어버리니까) 빨래를 시킬 수도 없고 (언제 돌리고 너는가) 잘해야 수저 좀 놓아달라, 애 좀 봐 달라, (이럴 경우 정말 눈으로만 본다), 그릇 좀 가져가라, 옷 좀 정리해라, 정도다. 아무리 남편이 ‘도.와.준.다’고 해도 주부가 하는 일이 많다.  


어차피 내가 더 많이 하는 거라면, 식구들이 있을 때 엄청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게, 식구들이 있는 자리에서만 집안일을 하는 편이 나았다. 그럼 생색이라도 낼 수 있다. 






집안일의 끝과 시작을 정해두니 신기하게도 집안일의 양이 맞춰졌다.




집안일의 끝과 시작을 정해두니 신기하게도 집안일의 양이 맞춰졌다. 마감의 마법이다. 직장에서도 마감이 없는 일은 무한정 늘어지기 쉬운데 일의 속성이 본래 그렇다. 끝을 정해두고 거기에 규모를 맞춰야 한다.     

 

마감은 일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 쓸 그릇이 없을 정도로 설거지가 쌓였거나 도저히 바닥에 발 디딜 수 조차 없이 장난감이 어질러져 있을 때에만 아이가 돌아오기 30분 전부터 치웠는데 다급함에 몸이 로봇처럼 척척 움직였다. 또 저녁을 미리 해두지 않아서 아이 보는 틈틈이 해야 한다면 딱 그만큼의 저녁만 하면 됐다. 남는 음식물은 물론 설거지까지 줄어드니 일석이조. 


식구들이 있을 때는 카톡 알람을 꺼두거나 스마트폰을 치우고 일사불란하게 차리고 치웠다. 메시지 응답하는데 쓰는 10분이면 바닥을 밀대로 밀 수 있다.         


집안일이라는 건 정리정돈이 반이다. 정리정돈이 체질화되면 집안일 자체가 확 주는 걸 느낄 수 있다. 식구들이 아무 데나 던져둔 물건을 치우는 걸 주부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틀렸다. 정리정돈은 '개인의 습관'이고 타인의 노동과 시간을 침해하지 않는 '예의'다. 그러므로 전업주부라고 하더라도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정리정돈은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주부는 식구들을 돌보는 사람이지 서비스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호텔처럼 말끔하게 치운 집을 보여줘야 한다는 환상이나 기대는 버렸으면 한다. 그건 아이들이 다 커서 집에서 잠만 잘 때나 가능하다. 그때까지 배우자 혼자 가족 부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시간은 내가 지켜가야 한다.  


  

집안일을 우선순위에서 미루라는 말이 한 때는 나의 주부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 불쾌했다. 그래서 꼭 챙겨하려 했다. 그런데 알겠더라. 


집안일 팽개치고 더럽게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가족 없는 자리에서 집안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는 거다. 가족이 있는 시간 안에 집안일 시간을 녹이자는 것이다. 


주부의 일은 남겨지지도 않고 보상도 없다. 직장인은 일한 시간에 대한 급여라도 받지만, 주부는 혼자 집안일을 많이 할수록 식구들의 당연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므로 눈에 띄게라도 일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알차게 보내는 거다. 엄마나 주부 역할만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면 식구들이 없을 때라도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재충전이 되었든 새로운 일을 찾아가는 준비가 되었든.   


아무도 나에게 등 떠밀면서 시간을 주지 않는다. 내 시간은 내가 지켜갈 수밖에 없다.     







*전업주부를 혐오하거나 타인을 비방,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댓글은 삭제합니다. 


*악플을 달고 싶은 사람은 먼저 이 글을 읽고 오십시오. 저는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지 않은 댓글에는 대응하지 않습니다. 주부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하기 전에 본인이 누구이고 얼마나 타인을 돌보며 무엇을 하는지 밝히세요.  그러지 않은 댓글은 모두 무시합니다. 

https://brunch.co.kr/@shinnarious/125






엄마로 주부로 살아간 시간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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