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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결혼

멜로드라마 결혼 엔딩, 그 이후

by 매실 Mar 24. 2025


나의 ‘완벽한’ 결혼

멜로드라마 결혼 엔딩, 그 이후


-서리




그가 없는 아침, 냉장고를 열었다. 먹을 게 없군. 아침으로는 조미김에 밥, 점심에는 라면, 저녁은 배달 떡볶이를 먹었다. 다음 날, 그가 돌아왔다. 그는 내게 끼니는 어떻게 챙겨 먹었는지 물었다. 나는 취조당하는 사람처럼 마지못해 어제 먹은 메뉴들을 낮게 웅얼거렸다. 말하면 할수록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목록이다. 그는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두 팔을 걷어붙인다. 냉장고 문을 열고 몇 가지 재료들을 쓱쓱 꺼낸다.


“뭘 하려고요?”

“기다려 봐요.”


그는 인덕션의 전원을 켜고, 프라이팬을 얹어 기름을 넉넉히 두른다. 찬장에서 샐러드볼을 꺼내 따뜻한 물을 붓고 냉동실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하얀 덩어리를 담근다. 그사이에 도마 위에 양배추를 올려놓는다. 오래되어 갈색으로 변한 겉 부분은 제거하고, 싱싱한 안쪽만 남겨 얇게 채를 썬다. 아까 그 덩어리의 정체는 냉동 오징어로 밝혀졌다. 샐러드볼에 담가두었던 오징어만 남기고 물을 따라낸 뒤, 채를 썬 양배추를 담는다. 계란과 물, 부침가루를 넣고 섞어 반죽을 만든다. 약불로 달궈진 팬에 반죽을 붓고 전을 부친다. 바닥 면이 어느 정도 익으면, 이쯤에서 손목의 탄력으로 팬의 각도를 조절하여 뒤집는다. 반대쪽 면까지 골고루 익힌 뒤 넓은 접시에 옮긴다. 데리야키 소스와 마요네즈 소스를 얇게 여러 번 교차해 전 위에 뿌린다. 


주목! 여기서 냉동실의 복병이 등장한다. 바로 가쓰오부시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지도 몰랐던 재료들(냉동 오징어와 가쓰오부시)이 등장하고, 냉장고에 있는 줄은 알았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던 재료(양배추)가 먹음직스러운 일품요리로 변신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넋을 잃는다.




@unsplash@unsplash



아, 바로 이거였지.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요리뿐만이 아니다. 보일러가 갑자기 돌아가지 않을 때, 어디선가 미세하게 물 새는 소리가 날 때, 에어컨 필터 경고등이 떴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이도 그다. 그의 관심은 단지 자기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내 일정을 휴대폰에 속속들이 메모해 두었고, 내가 일정을 깜빡하거나 지각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나를 챙긴다. “당신, 이제 슬슬 나갈 준비 해야 하지 않아?” “여기서부터는 내가 할 테니, 여보는 나갈 준비 해요.” “밖에 꽤 춥다더라. 오늘은 패딩 입고 가요.” 내 저녁 모임이 몇 시부터인지, 장소는 어디인지 미리 확인하고 내가 저녁밥을 빨리 먹고 나갈 수 있도록 평소보다 더 서둘러 밥을 차린다.


대학 졸업 후 시작한 몇 년의 자취생활 내내 끼니를 해결하고 집안을 돌보는 일은 귀찮은 골칫거리였다. 그에 비해 혼자 살면서도 요리며 집안 살림을 척척 해내는 그는 내 삶에 결핍된 조각을 꼭 맞춤한 듯이 가진 사람이었다. 지나간 남자들은 어느 모로 보나 그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남자들은 대체로 내가 가진 자원(젊음, 외모, 학벌, 직업 등)을 보고 내게 이끌렸다가 점차 내가 갖지 못한 자원(주부 및 비서 역할 수행 능력)을 문제 삼으며 떨어져 나가곤 했다. 바로 이 사람이야말로 결혼이라는 골치 아픈 과업에서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안겨줄, 내 인생의 유일무이한 ‘구원자’였다.


그와 결혼을 결심하고서 그를 소개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 사람 또 없다”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남편’을 만난 나에게 연신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야?” “너한테 잘해줘?” 같은 질문을 받으면, 적당한 대답을 머릿속으로 굴렸다. 대놓고 자랑하는 듯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비범함을 알아챌만한 단서들을 은근히 흘렸다. “주말에 데이트했어?”라고 묻는 지인의 말에, “예전에 갔던 이자카야에서 오코노미야키가 맛있었다고 했더니, 주말에 오코노미야키를 뚝딱 만들어주더라고. 그거 먹으면서 집에서 둘이 게임하고 놀았어.”라고 답하는 식으로.


주변에 이미 결혼한 여자들이 내 남편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는 길에 부러움에 속을 끓일지도 모른다고 은밀히 상상하면, 천하를 손에 움켜쥔 듯 가슴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빳빳해졌다. 나를 향한 부러움과 질투와 선망의 얼굴들은 내 인생이 아주 잘 되어가고 있다고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남편’과, 그 옆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나를 상상하니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온 세상이 내 또래 여자들에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힘주어 외쳐대던 명령(“더 늦기 전에 부족한 조각을 채워줄 너만의 반쪽을 찾아 결혼하라!”)에 더는 초조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내 미래는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승리를 예감했다.






만일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각자에게 ‘부족한 조각 채우기’라면, 그에게 부족한 조각, 그가 나와의 결혼으로 채우고자 했던 조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가 프러포즈하고 난 후에 우리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왜 나와 결혼하고 싶은지 묻자, 그가 대답했다.


“하얗고 예뻐서.”

그 모호하게 로맨틱한 대답에 담긴 진심의 함량을 헤아리고 싶었다. 


“그게 뭐야,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응?”

“당신은 하얗고 예뻐. 말티즈 같아.”


나는 더 이상 그를 채근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그에게 결혼이 ‘하얗고 예쁜 강아지 한 마리를 자기 삶에 들이는 일’이라는 말에 내심 안도했다. 그가 내게서 발견한 조각이 ‘하얗고 예쁜 강아지’라는 말은 내가 “예뻐서 좋다”는 뜻으로 들렸고, 그 단순한 말에서는 어떠한 의무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예뻐서 좋다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남편’이 말이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그게 무슨 대수일까. 좋은 게 좋은 거지.



@unsplash@unsplash






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다 큰 성인이자 그의 아내였다. ‘아내’라는 말에 전통이 부과한 의무와 역할이 부록처럼 딸려 오는 것을 애써 무시하더라도, 내가 그와 동등한 성인이자 공간과 생활을 공유하는 동거인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내가 그에게 안락한 생활을 위한 노동을 제공받는 만큼, 나도 그가 만족해할 만한 무언가를 제공해야 했다.


내가 제공해야 할 것은, 한마디로 말해 그에게 ‘긍정적인 반응하기’였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어이없는 ‘아재 개그’에도 진심인 척 웃기, 노고에 감사하기, 결과물에 감탄하기, 조언을 경청하기, 제안에 순응하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기대와 어긋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조금씩 지우고,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것들은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감추기만 하면 되었다.


오히려 기대에 어긋난 반응을 드러냈을 때 그가 불쾌해하는 반응을 견디기가 더 어려웠다. 이를테면 그의 요리에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하기가 어려워서 “이번 요리는 조금 입맛에 안 맞네요.”라는 말을 건네자, 그가 말했다.


“정말 너무하네. 입에 안 맞아도 요리한 사람 정성을 생각해서 먹을 때는 맛있게 먹고, 그런 부정적인 얘기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해도 되잖아?”


수십 번을 고민하다 도저히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 연기는 못할 것 같아서 꺼낸 말이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서운할 뿐이었다. 내게는 그 말이 요리를 해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도 없는 무심한 사람이라는 비난으로 들려 억울했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나도 여보가 요리하느라 신경 많이 쓰는 거 알고, 늘 맛있게 먹고 고마워했잖아요. 그런데 이번 요리는 좀… 정말 맛있게 먹을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말 꺼냈다고요.”

“그래도 먹을 때는 그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하더라도 나중에 해주면 좋겠어.”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할게요.”


대화는 거의 늘 이런 식으로 끝난다. 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반응을 하면 그는 서운해하고, 나는 그를 서운하게 한 데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패턴. 나는 어떻게 말했어야 했나? 아니, 그의 말대로 애초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나? 어떻게 해야 미묘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표현을 ‘잘’ 할 수 있는지는 배운 적이 없었다. 반면에 그런 말을 하는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드세다고 미움받는다는 명제만은 마음속 어딘가에 분명히 새겨져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했다는 비난에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꾸할 말이 없으니 내가 잘못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졌다는 느낌은 굴욕적이었다. 이런 대화가 반복될 때마다 굴욕감은 내 안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점점 커졌다. 진심을 드러내기보다는 연기를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의 요리가 맛이 없어도,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어도, 언제나 그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긍정적인 반응하기’라는 미션을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일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연기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때도 많았다.


“진짜 맛있는 거 맞아요? 먹는 모습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연기가 탄로 날까 봐 온갖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늘어놓았다.


“아니야, 진짜 맛있어! 지금 배가 불러서 그래. 점심을 평소보다 많이 먹었거든.”

어쨌든 내가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기만 하면, 그가 해주는 요리를 계속 먹을 수 있었다.


요리뿐만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불편이나 고민을 이야기할 때 그는 언제나 나를 위해 조언을 해 주었다. 그의 말은 잔소리 같은 직설적인 비난조가 아니었다. 은근하고 부드러운 제안의 형식을 갖춘 말이었다. “이렇게 해 보면 어때요?” “나 같으면 이렇게 할 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런 말은 잔소리보다 훨씬 더 올바르게 들렸다. 그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내 고집대로 했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대로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아쉽네요.” 그의 조언은 대체로 합리적이었고 그가 틀리는 법은 없었다. 임기응변인 나와 달리, 그의 의견엔 명확한 근거와 논리의 언어가 있었다. 나를 위한 좋은 의도로 조언해 주는 그에게 고작 이런 일로 날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일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보다 더 잘 결정하는 사람이 있고, 그가 기꺼이 대신 선택해 주겠다는데, 그에게 맡기면 편할 일을 뭐 하러 스스로 한단 말인가? 나는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더 삶에서 선택해야 할 많은 결정들을 그에게 위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한쪽 발목을 다쳐 깁스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그에게 일과 중 불편했던 일을 토로했다.


“의사가 최대한 걷지 말라고 해서 되도록 앉아서 수업하고 있는데, 급식 먹으러 갈 때는 어쩔 수가 없네. 아직도 발목이 찌릿찌릿 아파.”


그가 말했다.

“뭐 하러 직접 가? 애들 시키면 되지. 애들한테 식판 받아서 자리로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잖아.”


의아했다. ‘정말로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내 한 몸 편하자고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곧 그 의심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수년간 이런저런 결정을 그에게 맡겨왔기에, 거의 습관처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되나 보구나. 내가 몰랐네.’ 의혹은 금세 확신으로 뒤집혔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나는 그에게 들은 조언을 실행했다. 처음으로 교실 책상에 앉아 학생이 가져다준 식판에 밥을 먹었다. 다 먹은 식판도 학생들이 서로 대신 갖다주겠다고 나서는 통에 학생들이 대신 가져가 줬다. 교실이 아니라 호텔 같았다. 교실에서 ‘룸서비스’를 받는 상황이 어색하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이들이 나서서 하지 않았는가. 절뚝거리는 발목 통증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역시 그의 말을 믿고 따르길 잘했다고 안도했다. 


며칠 후, 보건실에 갔다가 보건교사가 나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혹시… 선생님 식판 애들한테 시켜서 교실까지 갖다 달라고 해요?” 

“어, 어, 네, 그런데요… 왜요?”

“그 식판 들고 계단 오르락내리락하고 복도 지나다니는 거, 다른 학생들도 보고 선생님들도 다 보시는데… 보기가 좀 그런가 봐. 뜨거운 국물을 바닥에 흘릴 수도 있고, 애들이 혹시 부딪혀서 화상 입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좀 말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

“아!”


나는 두 손으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벌인 일을 타인의 눈과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듣게 되자 가슴이 철렁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얼굴이 화끈거려 귓구멍까지 빨개진 채로 보건실을 나왔다.


퇴근 후 보건교사에게 들은 말을 전했더니, 그가 말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교실까지 식판을 갖다 달라는 뜻이 아니라, 급식실 자리에 앉아서 식판에 배식받는 것만 아이들한테 도움을 받으라는 뜻이었어요.”

“......”

“아이고… 그걸 교실까지 가져오라고 시켰으니, 안 좋은 얘기가 나올 만했네.”


내가 그의 말을 오해한 거였다. 그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올랐던 의혹이 다시 소환되었다. 왜 그때 그 의혹을 그토록 빨리 거두어들였던가? 왜 그에게 의문을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가? 왜 그토록 그의 말을 의심 없이 따랐던가? 아니, 그도 내 말을 오해했다. 애초에 내가 토로했던 불만은 급식실에서 배식을 받는 상황이 아니라, 교실에서 급식실까지 이동하는 상황이 불편하다는 데 있었다. 그가 내 말을 오해했을 가능성, 그로 인해 엉뚱한 해결책을 제시했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충격을 받은 사실은 따로 있다. 급식실에서 학생을 시켜 배식을 받는다는 그의 조언은 이미 나도 잘 알고 있었거니와 나나 다른 교사들 역시 이미 숱하게 실행해 본 적 있는 흔하고 무난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직종에서 일하고 그보다 경력도 더 많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그렇게 자명한 해결책마저 모르고 있어 그 고생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unsplash@unsplash



아직 한낮인데도 사방이 어둡고, 안락하고 평온했던 거실은 으스스하게 조용하다. 나는 그에게 정말로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그에게 기대어 보살핌을 받는 행복한 아내? 그의 말에 잘 웃어주고, 늘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랑스러운 여자? 아니, 아니다. 그에게 의존하는 것 말고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자신을 잃어버린 가엾고 나약한 어른-아이. 이것이 그의 눈에 비친 나의 진짜 초상이었다.


무언가 확실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삶에서 자잘한 돌봄이며 결정을 그에게 의탁해 온 결과 내가 치러온 대가는 소스라치게 놀라웠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남편’과 ‘완벽한’ 결혼을 했다는 믿음, 그 결혼이 확실한 행복을 보장하리라는 믿음으로 쌓은 탑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결혼 생활은 결코 불안을 말끔히 제거해 주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와의 관계 속에서 내 자아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그 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그에게 의존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서리 / 퇴고로 완성하는 글쓰기 캠프, 2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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