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Jul 21. 2018

내가 둘째를 낳을 수 없는 이유  

외동 맘의 입장에서 말하는 둘째 고민  

 


아이가 48개월(다섯 살)이 된 지금, 여전히, 그리고 끝없이 둘째를 낳으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확고합니다. 하나로 끝내겠다는 것이죠. 저라고 둘째 예쁜 줄을 모르진 않습니다. 어찌 안 예쁘겠습니까. 키우기 힘들어도 낳으면 잘 낳았다 하겠지요. 저도 이왕이면 하나보다는 그래도 둘, 뭐 능력 되면 셋이 있다면 좋을 거라 생각하고 둘, 셋 키울 수 있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단 좋아 보이는데, 나는 못한다, 하기 싫다는 거죠.  


@pixabay




1. 아이 키우기가 이럴 줄 몰랐다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 싶었는데,  인격의 바닥, 체력의 바닥, 능력의 바닥을 겪었습니다. 처음은 '정말 몰라' 낳았는데 알고서도 다시 겪을 수 없겠더라고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다음 조건이 충족될 때만 둘째를 낳겠다고요.  


1) 남편이 주 3일은 7시 반까지 퇴근할 수 있다. 
2) 남편이 육아휴직을 1년 낼 수 있다.
3) 양가 부모님이 1시간 이내 거리에 사신다. 
4) 내 나이가 지금보다 4살 어리거나, 신체 체력이 30대 초반이다. 

네. 모두 불가능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하지요. '낳면 다 키워.' ' 남들 다 키우고 산다.' 


네, 몇 년 눈 딱 감고 나 죽었소, 하고 키우면 키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싫다는 거예요. 다시는 24시간 풀 육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한 번 했으면 됐지, 두 번 하고 싶지 않습니다. 



@pixabay



2. 외동 vs 둘째, 선택의 기준을 어디에 둘까



1) 외동의 외로움와 심심함을 해결하기 위해, 첫째를 위해 둘째를 낳아야 할까? 


부모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아이가 외로울까봐' 입니다. 


저도 동성으로 낳고, 또 둘이 잘 논다는 보장만 생긴다면야 20년 같은 2년을 꾹 참고 견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둘째가 동성이라거나 잘 지내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점에서 망설여집니다. 남매로 살아온 제 경험상 남매끼리 노는 건 길어도 아쉽게도 초등 저학년까지였거든요


부모가 죽은 후 혼자 남을 자식을 생각하면 걱정된다고도 하지요. 그러나 부모가 모두 떠난 후는 자식들도 가족을 꾸리거나 중년 이후이고 형제, 자매끼리 의지하며 지내는 집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안 키우면 된다고 하겠지만, 자식은 부모 맘대로 크지 않습니다.

남는 건 가족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가족이 모든 걸 해결해줄 듯 생각하지만 가족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친구와의 우정으로 꽤 많은 부분 채울 수도 있습니다. 남편, 부모, 형제에게만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가족 이외의 다양한 관계가 보완되는 삶이 어쩌면 더 풍부한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둘째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들을 잘 들어보면 '공포'와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자식 키우기가 행복하고 좋아서가 아니라요. 자식은 보험이 아닌데 말입니다. 




@pixabay



2)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를 대기보다, 부부/엄마의 성향에 충실하자.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보다, 엄마와 부부 자신의 욕망이나 성향에 충실하는 편이 더 정직하고 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가 동성이건 혹은 바라는 성별이 아니어도 괜찮은가. 
-둘이 잘 지내지 못해도 괜찮은가. 
-내가 일을 더 이상 못해도 괜찮은가. 
-남편이나 주변 가족 도움이 없어도 둘째를 낳고 싶은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 키우기를 한 번 더 하고 싶다면 낳는 겁니다. 주변을 봐도 아이로 인한 어떤 이득보다 그저 아이가 좋아 선택합니다. 

저는 남편의 육아 참여, 다른 가족의 도움, 제 일에 대한 보장이 없기에 둘째를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 남편은 두 돌 무렵까진 '둘째 낳자'는 주의였습니다. 당시 육아 참여 비율이 하루 10분도 안 되었을 때고요. 그러다가 육아 참여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둘째 이야기 쏙 들어갔습니다. 겪어보니 알겠는 거죠. 육아 휴직 낼 자신도 없고요.  


3) 어떤 선택이든 잃는 것이 있다 

외동아이를 키우려 해도 어느 정도 포기와 체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일, 체력, 시간도 잃기 싫고 아이들이 주는 든든함과 충만함도 잃고 싶지 않다?  아직까지 사회는 엄마에게... 모든 걸 다 가지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외동을 고수하겠다면 이걸 생각해봐야겠죠. 


-아이가 겪어갈 심심함, 혹은 외로움을 엄마인 내가 덤덤히 지켜볼 수 있을까. 

-아이와 중학생 때까지 '놀아줘야 해도' 괜찮을까. 
-줄곧 이어질 경험의 부족과 전전긍긍을 겪어도 될까. 
- '하나 더 낳을 걸.... 하는 후회'가 생겨도 괜찮을까. 

외동은 뭐가 나쁘다, 다둥은 뭐가 나쁘다,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선택이나 처지를 애써 깎아내리는 것, 내 선택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은 소용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이러이러한 점이 후회되고 안 좋을 수 있는데도 나는 감수할 수 있는가'를 따져 봄이 낫습니다. 











3. 외동에 마음이 60% 쏠리지만, 주변의 권유로 둘째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1)  육아를 즐기는 편인가요? 전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떼쓰는 소리, 우는소리가 아직도 듣기 힘듭니다. 듣는 순간 짜증과 화가 올라옵니다. 확 기운 빠지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아이 하나 가지고도 이런데 어찌 둘을 키울까 싶습니다. 

남편이 일찍 와서 저녁 6-10시 사이의 죽음의 시간을 함께 해준다거나, 휴직을 한다거나, 부모님이 근처 살아서 비상시에 아이를 봐줄 수 있다면, 한 번쯤 둘째, 생각은 해보겠는데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2-3년 죽을 만큼 고생하고 나면 보람찰 거 압니다. 


하지만 경력, 체력, 건강, 인간관계, 아이 하나까진 간신히 회복 가능한데 주변 도움이 적은 상황에서 둘째 낳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부분들이 큽니다. 아닌 분들이 계신다면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아이가 다섯 살인 지금,  어린이집 간 시간 동안 짬짬이 제 일을 하고 있고 주말이면 아빠 혼자서도 아이 케어가 가능해서 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인간 생활' 합니다.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합니다. 




2)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는 엄마 능력 하나로 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아이 키우기를 (힘들지만) 즐겨하고 어떤 악조건도 극복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 노련함의 소유자라면 다행이지만 아닌 경우도 많지요. 결국 엄마에게 달렸다고 하는데 전 좀 생각이 다릅니다. 


엄마가 체력이 안 좋아도, 육아가 본인 기질에 안 맞아도, 주변에서 양육의 짐을 나눠 가져주면, 엄마가 극심한 우울증 걸릴 확률은 줍니다. 또 경험상 남편이 엄마만큼 적극적으로 육아 참여를 하느냐 아니냐는 '천지차이'였습니다.




3) 주변 여건이 호의적이지도 않고, 그런데 주변에서 낳으라고 해서 고민되시는 분들은 중심을 잘 잡으셔야 합니다. 

내 마음은 1도 없는데 (도와주지도 않으시는) 시 부모님이 낳으라고 한다고, (가사, 육아에 1도 안 하는) 남편이 낳자고 우긴다면요?  

잘 생각해보세요. 결국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할 일,,  왜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왜 타인이 좌지우지하도록 두시나요? 남들이 하라는 대로 내 인생 사실 건가요? 왜 스스로 조선 시대 여인이 되려 하나요.  우리는 가족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개인'입니다. 

다른 가족들의 말을 '거절'하고 '거부'한다고 해서 '잘못'하는 게 아닙니다.  강요하는 그들이 잘못입니다. 남들이 낳아라 어쩌라 '강요'하는 소리가 아니라 나를 보아야 합니다. 




4)  힘들어도 둘째에 아쉬움이 생긴다면 두 돌은 지나고 보세요.  

돌 전에 아이가 '순하다'거나 육아 체질이라고 방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제가 그랬지요) 돌 이후 역변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일단 두 돌은 넘겨야 아이나 나의 스펙(?)을 알 수 있더군요.  


30개월-36개월 만 넘어가도 '극한으로 힘든' 육아는 지나가고 조금씩 숨통 트이고 아이가 너무 예쁘면서도 아기적 시절이 조금씩 그리워지더라고요. 이때 제가 겪고 주변에서 듣고 본 경험 상 두 가지로 나뉘어요. 

A. 지금이 딱 좋다.  
B. 다시 한번 겪어보고 싶다.


저는 A로 확정했죠. 그러나 아이가 미치도록 예쁘기 때문에 다시 한번 더! 를 외치는 분들도 꽤 계십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아기들은 사람을 홀리니까요. 


둘째 고민, 너무 일찍부터 머리 아프게 하지 마시고,
두 돌은 지나보고 해보세요. 


@pixabay




5) 경제적 사정 ; 내가 어떤 소비에 가치를 두는지 살펴보기 

육아기에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 겪어보니 줄일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커서도 더 좋은 시설,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쓰는 거지 하기 나름에 따라 줄일 수가 있으니까요.  모든 아이들에게 최선의 소비를 해주겠다고 하면 더없이 빠듯하겠지만 아이가 하나라도 해서 물질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아이 키우는데 가령 10이 든다면, 아이가 둘, 셋이면 20, 30이 아니라 5 또는 3으로 나눠서 돈을 쓰게 되고 어쨌든 소비엔 '차선책'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경제적 상황이 정말 빠듯하다면 아이가 늘면 부담은 더 커집니다. 돈 뿐만 아니라 마음이 쪼들립니다. 


경제적 부분은 내가 한정된 수입 안에서 어떤 소비를 지향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 할 문제 같아요. 



6) 피임을 정신 차리고 잘 하세요

둘째 생각 단연코 없다가 임신한 케이스 주변에서 수두룩 봅니다. 노력해도 안 생기는 경우도 많지만 하룻밤의 실수와 방심으로도 아이는 생깁니다.  갑작스럽게 둘째가 생기는 사고를 방지하고 싶다면 만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남편과 제대로 된 피임을 상의해서 지켜가야 합니다.



@pixabay



참 구구절절 썼습니다만, 고민하지 말고 낳으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어떻게 고민을 안 할 수가 있을까요. 고민 없이  남들 다 하는 대로 결혼하고, 애 낳고 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성들은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합니다. 여성도 생각할 줄 압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렇게라도 설명해서 나의 선택을 이해받고 싶은 상황이 조금은 서글픕니다.  더 이상 이런 문제로 오지랖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길 바랍니다.  




 중요한 건, 나의 능력, 체력, 조건, 마음입니다. 섣부른 약속이나 기대, 타인의 강요에 휘말리지 마시고 내 상태를 보자는 겁니다. 
당신은 무엇을 우선으로 하시나요? 또 무엇을 포기할 수 있나요?




*책엔 좀 더 수정된 내용으로 실려 있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1117639


매거진의 이전글 가부장제 부적응자, 열린 결말을 꿈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