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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Apr 12. 2023

민들레가 꽃으로 사는 방법

" 엄마 저 자리에 분명 민들레 꽃이 피어날 거야.”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다 길가의 강아지 똥을 가리키며 아이는 말했다. 나는 아이와의 대화 이후 민들레를 그냥 지나 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민들레를 마음에 들이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5살 무렵 ‘강아지 똥’이라는 그림책을 함께 보고 나서부터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슬퍼하는 강아지 똥이 땅에 스며 거름이 되어 민들레 꽃을 피워 냈다는 이야기. 아이는 그 그림책을 보고 난 후, 민들레 꽃이 보이면 한참을 앉아서 보았다. 민들레 꽃을 보면 “엄마, 저기 분명 강아지 똥이 있었을 거야. “ 하고 말하고, 강아지 똥을 보면 “엄마 저 자리에 분명 민들레 꽃이 피어날 거야”라고 말했다. 5살이던 아이는 ‘민들레=강아지 똥’ 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은 듯했다. 장미꽃이나 튤립처럼 잎이 크지 않고, 수많은 작고 긴 잎으로 이루어진 민들레 꽃을 앉아서 한참을 본 아이는 햇살이 퍼지는 모양 같다고 말했었는데, 노란색이기도 하고, 많은 잎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진짜 햇살이 퍼지는 것 같아서 “해님 꽃”이라는 별칭도 붙여 주었었다.

 

최근에 내가 참여하는 그림책 북클럽의 지인으로부터 <도시비행>이라는 그림책을 선물 받았다. “이 책을 본 후 윤슬지령님이 떠올라 꼭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라는 말과 함께 전해진 감사한 선물. 그 그림책은 민들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민들레는 내 머릿속 서랍에 보관하는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의 사물이 된 지 오래지만 그림책 선물을 받고 나서는 민들레가 내 삶에서 더 커다래졌다. ‘누군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박현민 작가의 말처럼 그 후로 나는 민들레가 되어 세상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바라보며 상상하고 있었다. 민들레의 시선으로 이런저런 몽상을 즐기고 있노라니 세상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민들레는 꽃이지만 어느 누구도 꽃다발로 만들지는 않는다. 관상용, 감사용, 축하용, 위로용으로도 쓰이지 않아, 어쩐지 민들레는 꽃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정성스레 키워지는 꽃도 아니건만 그렇다 해도, 나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민들레를 보면 5살의 내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쭈그리고 앉아 민들레에게 말을 걸고 싶어 진다. 자기 몫의 꽃을 피우며 꽃의 이름으로 꿈을 품고는 세상과의 연결을 꿈꾸는 민들레가 한없이 반가워서… ‘앉은뱅이 꽃’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길가에 피어나는 키 작은 꽃. 키 작은 꽃이기에  호기심 가득한 아가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끄는 꽃.  민들레는 아가들의 친구 같은 꽃이다. 신기하게도 아가들의 친구 같은 꽃인 민들레는 아가들의 정다운 자연 장난감이 되어 준다. 색종이로 접어 부는 바람개비처럼 민들레 홀씨를 부는 것은 아이들의 봄철 나들이에 빠질 수 없는 재미다. 가장 낮게 피어 아이들의 시선에 머물며,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주는 꽃. 세상의 이치가  잘 맞아떨어져 감탄이 나오는 순간. 민들레는 그렇게 자기 몫의 꽃을 피우며 세상과의 연결을 꿈꾸고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민들레의 자존감이 굉장하구나 싶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듯이.

 

최근에 덕수궁 돌담길을 남편과 아이와 함께 걸었다.  거기서 꿈이 있어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았다. 근사한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가 꿈인 사람, 바이올린 활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꿈을 꾸듯 몰입하여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꼭 멋진 예술무대가 아니더라도 덕수궁 돌담 밑자락을 무대 삼아 자신의 꿈에 예를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민들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도블록 틈새에, 담벼락 틈에, 하물며 하수구 틈 사이에도 피어나는 민들레. 장소를 가리지않고 피어나는 통에,  밟히고, 짓눌려도 이듬해 보면 민들레는 여기저기 다시 피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꺾이지 않는 마음. 나는 그런 민들레 같은 그들의 꿈을 언제까지나 응원하고 싶었다. 나에게도 민들레 같은 모습이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도 헛 짓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속에서도 계속 글을 써 나가는 것. 그저 계속 쓰는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믿는 것.

 

따사로운 햇살 아래, 올봄에도 누군가 흩뿌린 듯 민들레는 피었다. 앉은뱅이 민들레 꽃에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민들레는 그렇게 아가들의 친구로, 나비의 휴식처로 세상과 연결하며 자신의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만족할 것이다. 올해도 아이는 민들레 홀씨를 입김에 불어 날리겠지. 나도 올해는 아이 옆에서 민들레 홀씨를 불어야겠다. 내년 봄에도 어김없이, 더 많이 꽃 피우라고. 너의 꿈을, 굳건함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 멀리멀리.




*엄마의 그림책

아이와 보고 또 보고 했던 책이라 에게는 더욱 특별한 책이예요.  아이는 이 책을 보고 주변의 사물을 자세히 보고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교감을 했던 책이라   저 또한  이 책 덕분에 그림책이 좋아지기 시작하였어요.  애니메이션도 있어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날 수 있답니다. 강아지똥이 스스로 쓸모없다고 슬퍼하지만

민들레를 만나고  거름이 되면서 스스로가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돼요.

단, 아이들은 이 책을 보고  길거리 강아지똥도 앉아서 구경한다 할 수 있으니 주의 하셔요.

민들레의 시선과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멋진 일이 벌어집니다. 민들레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이렇겠지? 하는 상상을 하게 하는 책. 똑바로 보고, 이겨내고 결국 날아 오르는 멋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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