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지, 돌덩이를 들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어. 가방이 비싸기만 하고 왜 이렇게 무거워~”
동생이 요즘 집에 묵혀 있던 명품가방이 아까워 다시 들었다고 한다. 퇴근하며 나에게 전화를 자주 하는 동생이 오늘 외부미팅이 있어서 명품가방을 들었다가, 가방의 내용물에, 가방 무게가 더해져 온몸이 더 무거운 하루였다며 일과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에코백이 최고야~”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너는팀장님이나 돼서 에코백이 뭐냐~ 에코백이~ 팀장님 체면이 있지~”그랬더니 동생이 하는 말. “체면이 뭐가 중요하냐? 돌덩이 같은데. 나 편하면 그만이지~”
“그럼 너는 가방이 아니라 비싼 돌덩이를 산거네?” 가방을 소재로 대화하며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명품백을 못 살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명품백에 대한 욕구가 흐려졌다. 살 수도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적지 않은 돈을 가방에 쓰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있어서 동생의 (나 편하면 그만이지) 란 말이 왠지 모를 위안이 되었다.
명품가방의 가성비를 따지고 보면 명품가방은 그 가격만큼의 기능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나는 물건을 살 때 꼼꼼하게 비교하며 사지도 않고,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은 아닌데, 이상하게 가방을 사려고 하면 가전제품과 비교가 되면서 가전제품의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명품가방을 쉽게 살 수가 없다. 세탁기, 밥솥등의 가전은 가사노동으로 부터 여성을 해방시켜, 여자의 사회진출을 하게 했다는 혁신적인 편리성을 가지고 있다. 냉장고도 식품의변질을 막아 어느 정도 식품보관 기간의 여유를 주었다.
가전제품의혁신적인 편리성에 비하면 명품가방은 가성비가 안 나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명품가방을 살까? 내 기준에서의 답은 그 브랜드가 고가인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아니까… 보여주기식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작용한다.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때 명품가방을 든다. 꼭 명품가방이 나의 품격을 보여주는것만 같다. 나도 명품가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고가인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명품가방을 몇 개 가지고 있다. 미혼 때, 신혼 초에 샀던 것들이다.
결혼하기 전 명품가방을 들고 다닐 때의 일이다. 비가 갑자기 내려 우산이 없었는데 에코백 같으면 가방을 우산 삼아 머리에 얹어 뛰었을 텐데 그때는 명품가방을 들었으니 품에 안고 냅다 뛴 적이 있다. 사람보다 귀한 가방이라니…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 되었다. 누군가 봤음 웃겼을 내 모습에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며칠 전 <아무튼, 메모>,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의 저자인 정혜윤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정혜윤작가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를 세 가지로 말했다. 1. 공포(펜더믹시대의 불안) 2. 혐오(분리, 고립), 3. 쇼핑(자본주의).
내가 주목한 단어는 <쇼핑>이었다. 정혜윤 작가는 그 단어들 속에는 나의 정체성과 나의 긍정적 가능성을 보게 하는 단어는 없다고 말했다. 드릴로 뚫듯 작가의 말이 내 마음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쇼핑 속 소비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자주 본질이 흐려진다. 무엇이 진짜 품격일까?
파도에 떠밀려 오는 미역처럼,나를 잡아주는 뿌리가 없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다른 시선을 따라휩쓸리듯소비한다.난무하는 비교 속에 나는 없고, 나를 대중화하고, 일반화한다.
가방은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물건에 불과한데 명품을 드는 순간, 내가 조금 더 특별한 사람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자본주의 속성, 돈이 주는 혼란이다.
나이를 먹으면 남의 시선이 크게 신경이 안 쓰이는 건지 나는 요즘 에코백이 제일 좋다. 우선 가볍다. 잃어 벼려도 크게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가방이 어쩌다 비를 맞아도, 뭐가 묻어도 “빨면 되지 뭐” 하고 툭툭 털어버린다. 사물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나니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시선을 내 안으로 들여올 때 한층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내 삶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의 긍정적 가능성이 보인다.
명품을 들든, 에코백을 들든 중요한 것은 나다. 나를 만드는 것은 결코 가방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며 내 안을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나는 명품을 들지 않아도 그대로의 내 모습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시선에 비친 내 겉모습을 상상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하게 한 것은 결코 명품가방을 든 내 모습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 채워졌을 때였다. 나는 오늘도 에코백을 들고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에코백이 터질 듯이 책을 담았다. 명품가방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 속에서 내에코백의 품위가 빛을 발했다.
가방은 가방 주인의 삶을 닮은 작은 집과 같아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알 수 있거든요.
<가방에 뭐 있어?>중에서.
가방이 <주인의 삶을 닮은 작은 집>이라는 말이 정말 멋져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가방 속에는 아기 물건이, 형 가방에는 색연필 일러스트, 교과서 <국어>의 글자를 "<복어> 낚시"로 바꿔놓고 그림을 그려놨네요. (학창 시절 한 번쯤은 해 보셨죠? ^^) 형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구나 유추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의 가방 안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디테일한 유머까지 귀여운 그림책 <가방에 뭐 있어?> 실물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