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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May 15. 2023

공개수업은 사랑을 싣고

함께 성장

2023.04.17.

코로나가 점점 무감각해진다. 받아들인 건지, 무시하는 건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아이의 학교도 올해는 마스크를 벗고  다양한 활동들을 예고했다.


오늘은 아이의 공개수업이 있는 날. 공개수업은 3교시인 10시 40분에 시작된다. 나는 2교시가 끝난 후 쉬는 시간인 10시 30분에 맞춰 갈 것을 생각하고 딱! 시간을 계산해 놓고 준비했다.  

평소에 화장을  잘 안 하고 그저 편하게 다닌다. 약속이 있는 외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에 나올 때는 단지 안에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을  마주치기도 하기에 모자를 쓰는 편이다. 화장을 잘 안 하니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조금이라도 보호할 목적이기도 하지만  잡티와 칙칙한 낯빛이 이젠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에는 자신이 없다. 모자를 쓰지 않은 맨 얼굴엔 왠지 모르게   벌거벗은 기분이 드는데 모자를 쓰면 적어도 비키니를 입어 중요 부위는 가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은 좀 더 정성을 들여 화장을 했다. 화장을 하니 모자에 기대지 않은 얼굴로 오늘은 다닐 수 있다. 모자로 가리든 화장으로 가리든, 어쨌든  얼마만큼 덮어야 당당해질 수 있으니 나는 얼마큼의 마음의 내공을 쌓아야 온전한 나를 내보일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스카프와 귀걸이를 하고 나니 학교 모임이 아니면 이렇게 꾸미고 나갈 일이 없는데 오랜만의 꾸밈이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나를 상기시켜 주었다. 역할이 아닌 타고난 존재로서의  본능을 감각했다.


2교시가 끝난 후의  쉬는 시간에 맞춰 갔더니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복도에 나와 있었다.

보름도 복도에 나와 있어서 나를 보자마자

뛰어왔다.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은 보름이의 발길을 자꾸 밖으로 나가게 했나 보다. 밖에 머무는 발걸음. 복도에 나와 있는 아이들의 집단 마중 앞에서 기다림이란 발을 먼저 나가게 하는  마음임을  보았다. 나는 무릎을 치며 번뜩 한 단어가 생각났다. "버선발".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에게만 있는 발인줄 알았는데 아이들에게도 버선발이 있었구먼.


집에서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새로운 장소에서의 만남에는 설렘과 사랑이 그득하다. 공개 수업은  단지 수업을 보러 감이 아니라 나는 내 아이에 대한 애정을, 아이도 부모를 기다리는 설렘과 애정을, 말로는  표현하지는 않지만 서로 확인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 수업이 시작되었다. 공개 수업 과목은 도덕.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에 대한 활동들을 영상으로, 연극 활동한 것으로, 발표로 보여 주었다. 보고 있으니 아이들에, 학부모에 사람이 많아 교실 안이 더웠다. 그러고 보니 보름이는 외투를 안 벗고 있었다. 아침에 고른 체크무늬 연한 노랑의 봄재킷인데 보름이는 이 옷을 멋진 옷이라 생각한다. 반에서 거의 혼자 외투를 입고 있었다.

하교 한 보름이에게 오늘 교실 덥더라. 외투 안 벗고 있던데, 안 더웠어? 물으니 더웠는데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참았어.

나는 참고 있었다는 아이의 말에 그의  마음을 보았다. 그 옷이 봄 외투이긴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큰 일교차 때문에 입는 거라 두터운데, 그걸 참고 있었다니, 보름이의 마음은 얼마나 잘 해내고 싶었던 걸까.

더운 것도 참아낼 줄 알고, 잘 해내고 싶고, 엄마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고, 학급 회장이니 인사도 할 것이고,  친구들의 엄마들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아이마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모든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아이고 싶고, 잘 해내고 싶어 한다.

그러니 그저  내 아이의 선한 마음과 긍정의 가능성을 믿자고 다짐해 본다.


아이들이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공개 수업은 끝났다. 공개수업을  바라보며 이 작은 나무들은 각자 어떤 나무로 자랄까? 나는 아이들을 나무로 상상했다. 모두가 다른 매력으로  멋질 것 같았다. 자라나고 있는 시간이기에, 각자  자신만이 가진 씨앗으로, 모두에게 다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어 모두가 찬란해 보였다. 아이들은 작년보다 길어진 팔다리뿐 아니라 마음도 한  만큼 자라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 마흔세 살의 나도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는 거겠지. 아이와 나는 성장하고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역할에 따라, 다르게 또 함께.




* 엄마의 그림책

 제 개인적으로 이 책은 아이를 기르고 있는 모든 양육자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그림책이에요.^^

두더지를 보고 있음 엄마 미소 절로 나거든요. "두더지라고 다 땅파기를 잘하는 건 아니야." 오호~두더지도 땅파기가 그냥 잘되는 게 아니었군요. 땅파기가 잘 안 돼서 시무룩해진 두더지가 숲 속에서 만난 거북이와 바다를 보러 가는 이야기. 좌충우돌 경험과 실수를 통해 두더지는 바다를 볼 수 있었을까요?

아이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잠재력은 언제 발휘될까요? 이 그림책은 그 해답을 가르쳐줍니다.  두더지의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이 사랑스러워 보고 나면  내 아이의 잠재된 가능성을 그저 믿어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재능보다도 부모의 믿음으로 자라는 게 아닐까요?^^

*<두더지의 여름>과 함께 김상근 작가의 3종세트 그림책 <두더지의 소원>, <두더지의 고민>도 함께 읽어보세요~^^

이 그림책 맨 뒤에 제가 아이에게 쓴 메모를 덧붙였어요. 아이가 언제든 이책을 펼쳤을때 엄마의 마음도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에, 하야시 아키코 그림이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아름다움에 그만 멍을 때리며 한참을 봤어요. "똑바로, 똑바로". 아이는 할머니집에 오라는 전화를 받고, 스스로 깨닫고 경험하고 결국은 할머니집을 찾아갑니다. 아이의 성장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은 아이만의 내재된 용기와 호기심이었는데요. 뭐든지 스스로 깨닫고 느끼지 않음 어떤 배움도 진정한 것은 아니겠지요.

너무 많은 배움과 학습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가르쳐야 할 진정한 성장은 무엇일까요? 향수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그림에 반해 책을 품에 안고, 그림책 속 아이의 귀여운 성장에 아이를 꼭 안아주고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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