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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출신입니다만

전업주부

by 윤슬지령

그림책 관련된 줌강의를 들었다. 1인출판사인 <글로연> 대표이자 편집장이신 오승현 대표님의 강의였다. 그분은 본인이 출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첫 말문을 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해 본 '아줌마 출신'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의문을 많이 품고 시작했어요."

'아줌마 출신??재미있는 표현이네~스카이출신은 들어봤어도 아줌마 출신은 처음 들어보네~'

큭! 하고 가벼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펜을 들어 '아줌마 출신'이라고 메모장에 적었다.


오승현 대표님의 강의는 '아줌마 출신'의 성공신화였다. 이 강의로 나는 '아줌마'라는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집에서 늘 아이와 함께 하면서 내 아이가 부족한 부분이 보였어요.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잖아요. 제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1인 출판사였기에 처음에 책을 만들 때 동네 이웃 등 아는 지인이 모두 동원됐어요. 앞집 아이친구엄마, 동기들, 남편... 지인찬스와 인적자원을 모두 활용했죠~"

그렇게 10년 동안 20권의 그림책을 출판하며 본인의 아이로 출발했던 출판사는 현재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책을 펴내는 명실상부한 출판사가 되었다. ‘아줌마 출신’이었던 오승현 대표님의 성장 스토리에 내가슴은 두근두근했다. 내가 성장한 것처럼 기쁘고 감사했다.


그 후로 나는 ‘아줌마 출신’으로 시작해 멋진 성장을 이룬 여자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업주부로서 일하고 글과 예술의 성취를 이뤄낸 작가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결혼해서 평온한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글을 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가, 40대가 되어서야 등단한 '박완서' 작가는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대가였다. 소설 [프랑켄 슈타인]의 저자 '메리셸리'는 [프랑켄 슈타인]을 쓸 당시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이 작품을 써냈다. '메리셸리'는 (결과물들은 많은 산책과 드라이브, 많은 대화에서 나왔다)고 말했고, 항상 아침에 글을 쓰고 오후에 집안일을 하고, 저녁에 책을 읽는 일상을 엄격하게 지켰다고 한다. (예술하는 습관/메이슨커리/걷는나무)


보려하는 자에게만 비로소 보이는 것인가. 알면 보이는건지, 그동안 보려하지 않았던건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내 주위에 ' 전업주부의 역할을 하면서 성장(경제적으로 연결 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다)하는 '아줌마 출신' 의 전문가들이 가까이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대표적으로 우리 엄마!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하루 세 끼를 차렸다. 동이 트기도 전, 하늘도 잠에서 덜깨어 시퍼런 그시각, 엄마는 아침 해보다도 먼저 일어났다. 외식이 흔한가, 밀키트가 잘 되어있나~엄마가 밥을 해야 7식구가 밥을 먹었으니 그게 보통의 책임감으로 될 일인가? 하루도 빼먹지 않던 우리 삼남매의 6개의 도시락은 어떻고? 기깔나고 맛깔나게 만드는 반찬은 어떻게 그렇게 뚝딱뚝딱 만드는건지. 나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장인의 솜씨였다.

멋지게 손뜨개로 옷을 만드는 K주부, 정리 수준이 전문가 못지않아 집이 언제나 단정한 J주부, 훌륭한 식재료로 요리를 잘해 근사한 플레이팅을 잘하는 C주부, 아이와 교감하며 아이들과 놀며 엄마표로 교육하는 B주부등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적인 실력을 갖춘 ‘아줌마 출신’들의 전문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TV 프로그램인 '알쓸인잡'에서 ‘invisible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대화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평소에 일이 잘 돌아갈 때는 인식하지 못하다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공항 도로 표지판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든지, 도로 교통 신호 체계 관리자, 도로 위생 관리사들이 이 부류에 속했다. 우리 사회의 간극을 보이지 않게 메우고 있는 사람들. 우리의 일상을 지켜내는 작은 영웅들.

‘아줌마 출신’의 전업주부일도 그와 같지않을까? "집안일 아무리 해봐야 티도 안난다. 그래도 안하면 또 티 나는게 집안일인거라~" 엄마가 만날 집안일 하면서 내뱉었던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딱!! invisible한 일이었네. 오늘 깨끗한집은 어제 그대로의 집이 아니었음을. 치우고 닦은 오늘의 결과물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도 나의 아줌마 경력과 성과를 적어볼까?

1. 주부경력 13년 차.

2. 만10살 남자아이 양육.

3. 평일에 육아, 가사 전반적인 일(청소, 요리, 분리수거 및 쓰레기정리)전담.

4. 평일에는 배달음식을 안시켜먹겠다는 원칙으로 저녁준비.(특수한경우, 내가 아프거나, 특별한 날 제외)

5. 아이와 함께하는 리추얼.(봄에는 화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는 빙수를 먹는것. 겨울에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만드는것.)

6.밤마다 여전히 아이와 잠자리 독서를 함께해서 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책을 통한 기쁨을 알게 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

7. 아이와 정서교감놀이를 만드는 노하우를 알고 있음. 리듬을 붙인 말.

(보름이는 사랑둥이~귀염둥이~엄마 아들! you are my sun! you are my sunshine~)

8. 아이의 성장에 따라 부모 자식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음.

9. 기분 좋은 하루의 기본은 아침에서 시작.(아침에는 기분좋게 깨워준다. 발가락을 간지럽힌다던지, 볼뽀뽀를 한다던지)


내가 청소를 하고, 장을 봐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는동안 남편은 회사 일에 집중 할 수 있고, 남편이 버는 돈으로 우리는 생활한다.

"아빠. 엄마를 이해해봐. 엄마를 몰라?" 아이는 나와 남편이 싸우기라도 하면 무턱대고 내편을 들 정도로 무조건적인 내편이다. 아이는 학교생활이 매일 즐겁다고한다. 담임 선생님도 인정한 웃상. 우리 웃상은 오늘도 웃는얼굴로 재잘재잘, 하교후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 내가 보낸 하루로 우리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이 지켜졌다. 구름한점 없는 파란 하늘 같았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마차가 굴러가게 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를 무상으로 재생산해주는 ‘주부’이다." (작가미상)

나는 이 글귀에 감응하며 내가 안 보이게 사회적 간극을 메우고 있는 '아줌마 출신' 전업주부라는 것에 자긍심을 갖기로 했다. 이 글을 보는 그대도 전업주부인가? 그럼 그대도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브라보! My Life. 브라보! Your Life!


* 엄마의 그림책

굉장히 유쾌한 그림책이에요.^^

어느 날 꿀꿀한 기분에 '후루룩 짭짭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간 아줌마.

매일 같은 머리만 하던 아줌마는 자신의 라면머리를 보고 충격이기보다 신선함으로 다가와 새로운 에너지를 받아요. 라면머리 아줌마에게 신비한 능력이 생긴 거냐고요? No, No~~ 라면아줌마는 호호아줌마처럼 커졌다, 작아졌다하면서 모험을 하는 아줌마는 아니에요. 우리 주변의 아줌마 모습,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백수가 된 남편을 대신해 가장이 되기도 하고, 도넛가게 알바생, 라면요리사도 되는데요. 그 모습이 억척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발랄하고, 긍정적이면서, 행복한 아줌마의 모습이에요.

특별한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우리 가정을, 일상을 지키려는 우리 아줌마들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 저 또한 뭉클하면서도 새로운 힘을 얻은 그림책이지요.^^

진정한 마술의 힘은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힘이 아닐까요? 그런 아줌마의 힘을 보여주는 유쾌,발랄한 그림책입니다.

근데 단점이라면요...이 책을 보고 있으면, 라면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독자님도 자신도 모르게 라면물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니까요.^^


글밥이 제법 많은 그림책이에요. 제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우리 이웃의 아줌마 모습이 스며있거든요.

제각각 다른 능력의 소유자들말이죠.

제목처럼 세 아줌마의 특성이 이야기 속에 드러나있어요.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이웃 아줌마들이죠. 참외를 서리해갈까 봐 매서운 눈초리의 초록아줌마, 생강과자를 열심히 구워 나눠주는 인심 좋은 갈색아줌마, 수를 놓아 옷을 짓는 보라아줌마는 우리 주변에 있는 아줌마 같다니까요.

이 책의 작가 (엘사 베스코브)는 (1874~1953년) 의 시대를 살았어요. 그림은 요즘 화풍과는 사뭇 달라요. 그래서 더욱 그 시대의 의상과 시대등 세밀한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으니, 아이와 그림도 즐겁게 감상해 보세요.^^


제가 애정하는 저의 인생 그림책입니다.

주인공 '올가'는 자기만 간신히 들어갈만한 좁고 작은 가게'키오스크'에 살아요. '올가'는 한번도 키오스크 밖을 나온 적이 없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저에게 질문을 던졌지요. (나에게 키오스 크란?) 벗을 수 없는 그무엇. 저는 "제 가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 절대 무엇이 올가미가 아니라 그냥 저의 세계인 거죠.

'올가의 키오스크'처럼 말이죠.

그런 '올가'에게 우연한 계기로 키오스크가 뒤집어지면서 강으로 떨어지는 사건이생겨요.

'올가'는 키오스크를 벗어나지 못한채, 뭘 어떻게 해보려 하지도 않고, 그대로 강물에 몸을 맡깁니다.

편안히 흐르고 흘러 새로운 곳에 오게 돼요. 올가는 새로운 사건의 계기로 키오스크가 들려진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전업주부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육아, 살림을 하면서 새롭게 보이는 눈이 생기게 돼죠. 그것이 요리든, 뜨개질이든, 저처럼 아이와 함께 보다가 눈 뜨게 된 그림책이든 말이죠.

독자님의 키오스크는 무엇인가요? '올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단골손님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었고 다정했으니까요. 그 다정함으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는 능력! 그게 올가의 능력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 그림책을 보며 항상 (마지막 면지 그림이 다했다!)고 말하곤 해요. 키오스크가 뒤집혀 떠밀려온 그곳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답거든요. ^^

우리가 흘러 흘러 있는 우리의 지금 자리에서도 꼭 그와 같은 풍경을 바라볼수 있음 좋겠습니다.

"키오스크" 꼭 한번 감상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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