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롬 Jul 22. 2020

좀비를 안 잡고, 신파를 잡았다.

<반도> ⭐⭐

<부산행>으로부터 4년 뒤 사회를 배경으로 만든 <반도>는 좀비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비라는 메인 요소를 플롯이 지나갈수록 사이드 요소로 밀려나간다. 좀비라는 무서움이 액션에 묻히며 후반에 갈수록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좀비 영화라는 대목이 사라져 버린 작품. 한 번 죽은 좀비를 또 죽이고, 액션과 신파를 살렸다.


<반도> 中 한정석(강동원)


하이스트+좀비=반도?

<반도>는 <부산행> 이후 4년 뒤 사회로 한반도 전체가 좀비가 되어버린 엉망진창 상태가 되어버렸다. 살아남은 자들은 주변국으로 피신하고, 대피하지 못한 이들은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으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한정석'(강동원)도 대피하던 도중 배에서 가족을 잃고, 남은 삼촌과 홍콩에서 피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한국에 남아있던 금괴나 돈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트레져헌터 같은 직업이 유행을 타면서 이 둘도 돈을 얻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다시 한국으로 들어간다. 초반 이 설정은 좋다. 한국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명분 소재가 좋고, 좀비로 인해 변해버린 디스토피아적 사회를 잘 보이는 모습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으로 들어오고서부터이다. 돈다발이 들어있는 트럭을 구한 이후 내용은 좀비 영화가 아닌 하이스트 영화가 되어버린다. 좀비는 돈다발을 구하기 위한 방해 요소가 되고, 좀비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도리어 돈다발을 사수하고, 신파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보는 꼴이 된다. 


좀비보다 신파를 죽여야 한다.

대한민국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제시대부터 영화가 여러 문화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시 유행이었던 신파적인 감성이 현대까지도 이어져 온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신파적인 감성을 터무니없는 좀비 영화에 넣어서는 왜 항상 마무리는 감동적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적자생존'이 필요한 절박한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포장할 수 있지만 마치 <클레멘타인> 딸이 외치는 아빠와 같은 호명으로 죽으려던 엄마를 일으켜 세우는 장면은 도대체 왜 이게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야 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신파 조금만 빼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건 다 넣었다. 

촬영이나 효과는 확실히 블록버스터라고 칭할 만하다. 정말 좋은 건 다 넣었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나 <백두산>을 볼 때 느꼈던 촬영 각도나 방식, CG의 구현이 이번 <반도>에도 잘 표현했다. 그리고 조금은 특별하게 영화는 자동차를 달리는 장면에서 슬로 모션을 넣어 액션의 퀄리티를 높였는데 <안시성>을 제작했던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월드'가 슬로 모션을 좋아하는 거 같다고 느낀 장면이었다.  또한, 워낙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좀비 때문인지 길거리에서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것이 아닌 자동차 액션을 취하며 좀비를 학살에 가까운 방법으로 대하는데 통쾌함은 있어도 좀비만의 공포는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상이 현실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