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롬 Sep 21. 2021

마음속키를 잡고 항해하라

<괴물의 아이>(2015)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후 내친김에 <괴물의 아이>도 봤다. 2007년 작품에서 2015년 작품을 보니 확연한 작화 퀄리티나 선명한 화질 차이를 보여줬다. 그리고 쿠마테츠와 렌이 사제지간으로 투닥거리는 모습이 귀여웠고, 후반에 등장하는 렌과 이치로 히코 간의 결투 씬은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나오질 않을 특별한 장면이라고 느꼈다. <괴물의 아이> 이후로 <늑대 아이>(2012)도 한번 더 볼까 생각 중이다. 본다면 바로 다음 글은 <늑대 아이> 일 것이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괴물의 아이> 네이버 스틸컷

백경

 <괴물의 아이>에서는 유독 백경(白鯨, Moby Dick)과 관련한 이스터에그를 뿌려준다. 책이나 달력 사진, 그림에서 다양한 고래 사진이 스쳐 지나가고, 렌이 17살이 되어 우연히 인간세상으로 다시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집은 책은 아예 <백경>이었으며, 도서관에서 만난 카에데와 백경에 대해 공부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괴물의 아이>에서 왜 이렇게 백경에 대한 이스터에그가 많을까. 그 원인은 카에데와 렌과의 대화 장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카에데는 백경에 대해 단순히 선장과 백경간의 외부적인 싸움이 아니라 선장 자기 자신만의 싸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백경은 선장이 쫓고 있는 목표이자 이상향이라면 선장은 그 이상향을 쫓기 위해 자신을 혹사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힘든 아픔을 겪고 있을 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쩌면 이치로 히코가 어둠을 품고, 고래로 변신한 계기도 <백경> 속 선장과 이치로 히코가 비슷한 처지라서 그럴 수 있다. 이치로 히코가 바라보는 이상향은 양아버지 이오젠이다. 아버지처럼 뛰어난 검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나 점차 자신은 왜 이오젠처럼 송곳니와 털이 안 나는가와 같이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아버지가 쿠마테츠와의 수장 경기에서 지면서 자신의 이상향이 꺾이는 걸 목격하며 분노와 절망감이 폭주한다. 이치로 히코가 백경으로 변신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카에데가 떨군 <백경>을 보고 나서부터지만, 이러한 간접적인 연관성이 있기에 그가 백경으로 변신하여 폭주한 게 아닐까.         



 초반부에 쿠마테츠가 어색한 설명으로 렌을 가르치면서 "가슴속의 검이 중요하다고! 여기 가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괴물의 아이> 초반에 가슴속 검이라는 존재는 검사가 가지고 있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도(道)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쿠마테츠와 렌은 사제지간을 넘어 서로의 가족과도 같은 신뢰와 정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이치로 히코와 렌이 결투를 치르기 직전에 렌의 눈앞에 정령 신이 되어 검으로 변한 쿠마테츠가 나타난다. 그는 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폭주하는 이치로 히코를 잠재우는 데 성공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쿠마테츠가 설명한 가슴속 검은 도(道)보다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자 정(情)으로 의미가 변화한다. 그리고 그 검은 생명력이 넘쳐나고, 따뜻하며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검으로 자리 잡는다. 렌과 이치로 히코 둘 다 괴물의 아이로서 성장해 왔지만 둘 만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둠의 힘을 억제해줄 가슴속 검의 유무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론 지치고 힘들 때, 누군가 내 곁은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존재들 덕분에 삶에 위로와 힘을 얻고, 자신감 있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여담이지만, 만약 쿠마테츠가 검사가 아니고 어부나 어류 관련 장사꾼이었다면 마음속에 키나 그물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백경으로 변신한 이치로 히코를 잡기 위해 그물이나 작살로 변신하여 이치로 히코를 잠재우지 않았을까.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작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와 약 8년 뒤 만들어진 영화다 보니 엄청나게 성장한 애니메이션 촬영 설정과 화질을 확연히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 풍경 작화 같은 경우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작화 퀄리티를 보여줌으로써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엄청난 작품이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 외에도 눈에 띈 건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입체적인 디자인이 눈에 띄고, 이치로 히코와 렌의 결투 장면에서 고래가 등장하는 장면은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의 소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