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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Oct 07. 2019

혼밥이 모두의 것이 되어버린 이후

 일기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뭔가 애매한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글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쓴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도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은 SNS에 공개적으로 쓰던 글들이고, 의외의 결과이지만 한 줌의 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딱히 내가 글을 써야 하는 목적도 없었고 의무감도 없었다. 약간의 성찰은 있었겠지만..


 그런데 그렇게 쓰던 글들이 지금 봐도 의외의 재미가 있다. 내 글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남들보다는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있었다. 많이 썼으니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얼마간의 재능이 실제로 있는 것일 수도 있다(측정할 길은 없지만).


 아마도 그 당시의 나는 외로웠기 때문에 글을 썼던 게 아닐까 싶다. 외로웠던 이유는, 인생이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30대 초반 까지만 해도 나름의 문제는 안고 있지만, 인생이 힘들다는 것은 미처 깨닫기 전이었다. 가장 큰 고민은 여자친구가 없다 정도였으니까. 그러니까 아마 특별한 목적이 없이 잡다한 글을 쓰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외로움이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의 나는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정말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대화도 없이 우물우물 음식을 씹어 넘기다 보면 굉장히 많은 생각들을 하였다. 그런 생각들이 소재가 되어 그날 저녁에 쓰는 글이 되곤 했다. 때로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들의 대화가 소재가 되는 일도 있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외로웠냐고 하면 외로웠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들으면 혼밥으로는 꽤나 큰 도전처럼 들릴 메뉴도 있었다. 이를테면 스테이크 같은 것이다. 11만 원짜리 T본 스테이크를 혼자서 아주 맛있게 먹어 치운 적이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 월급을 탄 금요일 저녁이었다. 광화문에 있던 청계천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 스테이크 레스토랑이었다. 혼자 해치우고 있는 스테이크 그릇 위로 흘긋거리는 웨이터의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 입장에선 나름대로 즐거웠다. 즐기지 않고는 그렇게 거창한 혼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양재동에 있는 고깃집에 혼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은 적도 있다.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가 딱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나는 정말 즐거웠을 뿐인데. 


 당시에는 혼자 밥을 먹는 게 매우 드문 일이었다. '혼밥'이라는 단어 따위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게 유행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혼자 밥을 먹는 행위를 아이코닉하게 정의한 단어가 나왔다는 것부터가 달라졌다. 그 무렵엔 이미 결혼을 했고 어지간한 기회가 아니면 혼자서 밥을 먹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유행의 일부분은 되지 못하였다. 사실은 혼밥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서부터 밥을 혼자 먹는 게 불편해졌다. 아무런 정의도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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