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는 2017년에 가장 잘나간 수필중의 하나다. 아마 실제로도 가장 많이 팔렸을 것이다. 재미난 것은 주변 지인 중에서 (나를 포함해서) 책을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언어의 온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꽤 싫어하는 친구도 있었다. 서점에서 꽤 오랜 기간동안 제일 좋은 가판대의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명당 진열대에 놓인 보라색 표지를 보고 호기심에 펼쳐 본다. 생각보다 너무 심플하고 소소한 내용들을 읽으며, 뭐야 별 거 아닌거 같은데 왜 베스트셀러씩이나 된거지? 하는 식으로 실망한다. 거창하거나 심오한 내용은 아니다. 문장력도 평이하다. 평이하다고 하면 과소평가일 수도 있지만,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들이 굉장히 많은데 왜 유독 이 책이 ‘베스트셀러’여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드는 것이다. 책 좀 읽는다는 친구들은 대체로 그런 반응이었다.
한 편으로는, 작가분이 수려한 외모를 가진 훤칠한 키의 남자라는 점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지금 우리는 ‘셀럽’의 시대를 살고 있다. 유명세라는 것은 능력의 총합이 아니라, 능력과 스타일의 총합이다. 그래서 능력만 있고 PR이 부족한 인물보다는, 능력을 적절히 포장할 수 있는 인물이 유명해질 기회가 훨씬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 포장이라는 부분에 외모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어쨌든 나 또한 이런 저런 이유로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우연히 읽게 된 기사를 통해, 내가 꽤 큰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기주 작가에 대한 소개였는데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쓰고 출판해서 홍보하기까지의 내용이었다. 자신의 책을 알리는 상당한 과정을 스스로 부딪히며 진행했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책을 박스채로 가져다니며 지방에 있는 서점들을 방문하며 책 홍보를 했다는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곱상한 외모 덕만 보는 운 좋은 작가라고 넘겨짚은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기주 작가는 직접 발로 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은 대부분의 성공이 그러하다. 번뜩이는 기지나 빛나는 재능이 아니라, 내 손을 더럽히고 발로 뛰며 몸으로 구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성실함이 성공을 가져다준다.
다시 언어의 온도로 돌아와서, 이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한 부분은 사람마다의 개성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사람의 품성과 성향의 차이가, 기온이 표시되듯 언어에도 드러난다. 어떤 이의 언어는 차갑고, 어떤 이의 온도는 따뜻할 수 있다. 어떤 이의 온도는 뜨겁고, 어떤 이의 온도는 시원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게 내가 읽은 인터뷰 기사의 내용이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는 아직도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이제는 17년의 광풍도 사그러든 상황이라, 지금 와서 굳이 찾아서 읽어보려니 귀찮아졌다. 게으름은 어쩔 수 없다.
책은 읽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 인터뷰와 소개글만 보고 책 내용을 상상하다 보면 그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일단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 때문에, 그리고 사람의 개성이 온도처럼 글에 드러난다고 하니, “그럼 언어의 습도는 없나”하는 막연한 트위스트가 고개를 든다. 언어의 온도가 있다면 물론 언어의 습도도 있을 것이다. 무미건조한 글이 있고 질척질척한 글이 있다. 같은 내용도 성향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다. 가령 어떤 남자가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갖고 있습니다”
AI를 돌려서 문장을 뽑은 것 같은 건조한 문체로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시리우스 행성에서 길어온 듯 반짝이는 너의 눈동자와 양귀비꽃처럼 선명한 붉은색의 입술은, 나로 하여금 태초부터 존재했던 뜨거운 감각을 일깨우며 지진처럼 심장을 뛰게 해 주는...”
수식어 대잔치처럼 과도하고 질척거리는 문체 또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옳고 그름은 없다. 나만의 온도와 습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