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Jan 12. 2023

지난 오늘의 나

그렇게 나는 다른 시절을 맞이할 것이다.

 2017년의 오늘의 나는 밤 11시까지 회사 시무식에 참석했고 상무의 지시에 따라 전 사원이 회장을 향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사랑한다고 외쳤었다. ‘결국, 내가 이런 꼴까지 보게 되는구나’라고 적어놓았네.     


2019년의 오늘의 나는 단톡방이 무려 20개나 되었고 상사의 지시사항을 읽씹 하는 나머지 팀원들을 보며 먼저 답하는 내가 혹시 착해진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2022년의 오늘의 나는 다정한 한마디, 긍정의 뉘앙스로 말하면 다정한 한마디, 긍정의 뉘앙스가 되돌아와서 가슴이 따뜻하고 왈랑해진다고 했다. 억지로라도 남편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양배추 전, 짜파게티에 직접 만든 팥앙금으로 만든 라테와 사과를 먹였네. 내가.     


오래전부터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는데 매일 블로그에 적어놓은 지난 오늘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일기를 읽으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2017년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 너 2021년에 퇴사해. 괜한 자존심에 혼자 가만히 있지 말고 그냥 하트 하나쯤 날려줘. 옜다 먹고 떨어져라. 그렇게.     


2017년과 2019년과 2022년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 그때가 더 불행했었나. 아니, 그 또한 아니었다.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함께 뒤엉켜서 뭐가 행복이고 불행인지도 모르는 형태로 매년 그 모습만 바꾸었다.      


무레 요코의 ‘그렇게 중년이 된다’라는 책(온통 갱년기 증상에 대한 내용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을 읽다가 ‘직장을 다니던 시절’이라는 문구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시절이 영원할 수는 없다. 나의 직장 시절이 끝난 것처럼 나의 백수 시절도 어느 순간 끝날 것이다. 이혼을 한다고 선언했지만 안 할 수 있으며 졸혼을 하거나 별거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시절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버티고 살 수 있었다. 변화는 얼마나 나를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했던가. 나는 변화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했고 내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아서 불행했다. 그 모든 것을 불행이라는 단어로 싸잡아 묶어버리고 어디다 내던지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저 내 생각이었다.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2024년의 오늘의 나, 2030년의 오늘의 내가 궁금하다. 그때의 나는 또 무엇을 행복이라 여기고 무엇을 불행이라 여기며 살고 있을지. 꽉 쳐 물려버린 주식들은 탈출을 했을지.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히 안다. 미래의 오늘의 나는 그 사실을 지금보다는 평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