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Jan 04. 2023

내향인의 외출

이불 밖은 위험해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다. 이불 밖은 위험하기 때문에 원래도 집 밖을 안 나가는 나는 더욱더 집에 박혀있다. 내게도 약속이라는 것이 생겨서 일주일에 4번 외출을 했더니 코피가 터졌다.


하지만 책을 빌리러 나왔다. 1~2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는데 나갈 때마다 쓰레기를 버리고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포장하고 마트까지 들리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스타벅스에는 가끔 추위와 더위를 피하려는 노숙자가 앉아 있곤 한다. 주로 구석진 자리에 앉는 내 주변에 그들이 있다. 보통은 한번 힐끔거리고 시선을 거두지만 이마의 핏기가 가시지 않은 상처에 계속 시선이 간다.     


핑크 마스크를 쓴 어린아이는 민망할 정도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 아이는 갑자기 코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나도 뚫어지게 쳐다봤다. 기껏해야 6살 인생의 어린이의 눈에도 나의 코피와 노숙자의 상처는 일상적이지 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인가 보다.      


이마에 상처를 가진 그는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그녀의 테이블 위에 있는 쓰지 않은 냅킨을 옆 테이블의 여자가 들고 가서 테이블을 닦는다. 이 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는 융통성 없는 편이다. 누구나 무단횡단을 하는 건널목에서도 신호를 지켜야 하고 걸을 때는 언제나 우측통행을 하고 공공장소에서 핸드폰은 진동 모드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상상할 수 없고 지하철은 아무리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도 반드시 내릴 사람들이 다 내려야 오른다.      


길에서 만난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내게 ‘강아지 키워요?’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단칼에 대답하고 쌩 지나간다. 속으로는 그 아이가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이미 아이를 지나쳐 다음 말을 걸지 못하게 한다. 썩 다정하다고 할 수 없다.   

   

그녀의 이마 상처에 눈길이 갔던 것도 걱정의 눈길이 아닌 호기심의 눈길이다. 술 먹다 넘어져서 생긴 상처일까, 아니면 누구한테 맞았나. 어쩌다 싸웠을까. 표정을 보니 진 것 같은데. 뭐, 이딴 생각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저런 노숙자의 삶을 살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나처럼 우스운 우월감을 느끼면서. 그의 근처에 앉을 수는 있어도 바로 옆자리에는 절대 앉을 수 없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때때로 아니, 자주 가식적인 행동을 한다. 노숙자를 한번 힐끔거리고는 두 번은 보지 않으려는 태도 말이다. 길을 걷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비만인을 보지 않는 척하고 특이한 옷차림의 인간을 발견하면 저런 자신감 부럽지만 사실은 미쳤다고 생각한다.     

 

별것 없는 세상도 내겐 자극적이다. 세상은 무단횡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우측통행을 무시하고 공공장소에서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벨소리를 울려대는 사람들로 넘실거린다. 이런 것들이 내게 큰 타격을 주진 않는다. 집 안에서보다 더 가식적으로 돌변하는 나도 견딜만하다.


하지만 역시 외출은 피곤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귀여운 것도 많이 발견하기 때문에 –예를 들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실눈을 뜨고 있는 길고양이 라던지- 그럭저럭 견딜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