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한심할 건지
좁은 길에서 ‘나는 우측보행 같은 건 전혀 몰라요’의 눈깔로 걷는 사람을 보자 화가 났다. 친구들과 함께 묵을 숙소를 알아보는 것도 힘들고 버거워서 숨이 막혔다. 내 마음은 몹시 얄팍해져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와장창 깨져버릴 정도로 옹졸해지고 있다. 산산 조각난 유리 조각들을 쓸어 모아 황망히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주웠다. 억지로 맞춰보려는 되지도 않은 짓을 한다.
내 기대만큼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화가 난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여전히 기대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몇 개월 동안 진심으로 바라고, 바라고, 바라며 노력했던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 결국 그것 하나였다. 내가 1cm 정도는 움직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여전히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는 밤이 오기를 고대한다. 얼른 잠들기만을 소망하며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맞을 때처럼 온 얼굴의 근육을 느슨하게 풀고서 시체 자세를 취한다. 가슴 언저리가 뻐근하다. 언제부터 이랬더라. 언제부터 나는 이 통증이 당연하게 되었나.
다시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서서히 혀와 입과 턱에 힘이 들어간다. 생각이 나대기 시작한다. 멈춰달라고 사정사정해 보지만 들은 척도 안 한다.
인연은 끊어졌지만 한때 절친이었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녀는 경력단절을 뒤로하고 재취업에 성공했으며 하지만 역시나 인간관계에 지치게 되었고 그래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했다(우리는 아직 블로그 서로 이웃 관계임으로). 이런 문체로 쓰는 사람이었구나. 잊고 있었던 특유의 야무진 성격이 글에 보인다. 장하다. 맘속으로 그녀를 응원했다.
‘한심하다’ 요즘의 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형용사다. 아마도 나는 내가 너무도 한심해서, 기억의 찌꺼기같이 남아 있는 한심하지 않았던 나를 언제나 칭찬해 준 그녀를 재빠르게 소환했을 것이다.
그만 한심해하고 자자고 다독였지만 역시나, 기어코, 마침내, 쓰레기차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얕게 잠든다. 꿈이라도 안 꿨으면 좋으련만! 새벽에 꾸는 꿈은 깨어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요란하기 그지없다. 새벽 4시부터 30분 간격으로 계속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깰 때마다 이렇게 소름 끼치게 외로울 수가 있다는 것에 놀란다.
이렇게까지 외롭다고? 필요 이상으로 외로울 때는 진짜 이 감정이 내 것이 맞는지 스스로를 의심해 본다. 아무래도 밤에 마셨던 맥주의 영향인 것 같다. 술은 마시지 말자는 헛된 다짐을 또 한다.
아침이, 또다시 아침이 오고야 말았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주식이 잘 된다면 아침이 즐거우려나. 근데, 하루쯤은 안 와도 되잖아. 하루쯤은 그냥 계속 시체같이 뻗어있게 24시간 밤이면 좋잖아.
역시, 한심하다. 나는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한심할 건지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