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어반자카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오래전의 일이다. 눈물 흘리는 네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았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헤어짐을 고백했던 나에게 눈물을 펑펑 흘리던 그 애가 따귀를 날렸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맞아본 귀싸대기였다.
그때 나는 화가 나기보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질 빌미가 생긴 내 마음은 홀가분했고, 제발 나를 놓아주었으면 했다. 얼얼한 볼을 감싸며 건널목 앞에 서 있는 내게 술 취한 아저씨가 이년이 뭘 쳐다보냐고(안 쳐다봤는데?!)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나는 이것마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몇 년 후 나는 그 애처럼 누군가의 따귀를 때리게 된다. 이렇게 애증의 귀싸대기는 돌고 돈다.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는 불륜을 저지르고 당당하게 소리친다. ‘사랑한 게 죄는 아니잖아!’ 우리는 헤어짐의 갈림길에서 전혀 다르지만 그와 비슷한 말을 듣기도 한다. ‘사랑하지 않는 게 죄는 아니잖아!’.
그의 말처럼 사랑은 죄가 없지만, 그의 태도는 죄가 된다. 내가 그 사람의 따귀를 때리면서 너는 맞을만하다고 생각한 것처럼,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감정을 앞세워 태도를 정당화하고 언제나 그 과정에서 엄청난 상처를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처가 아무는 데는 상대방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된다. 사랑하면 전부이듯,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그게 전부인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은 그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로 종결된다.
새삼스레 ‘사랑’이 뭔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다 외딴곳에 피어난 모란꽃을 보고 혼자 두지 않으려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라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을 한다.
벚꽃 피는 계절인데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혼자서 밥은 잘 챙겨 먹을지 걱정되는 마음, 곁에 있어 주지 못하지만 항상 곁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외롭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왜 힘들 때마다 옆에 있어 주지 않고 밖을 나가는지, 그렇게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외로움이 무엇인지 사무치도록 아는 사람이 왜 나의 외로움을 들여다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나 이해된다. 그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받아들이면, 그 어떤 행동도 더 이상 나를 상처 입히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