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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Apr 04. 2023

애벌레와 다를 것이 없다

알 수가 없어서 괜찮은 것일지도



정말로 꽃길만 걸어서 도착한 숲 속. 나는 벤치에 누워 꽃비를 맞았다. 돌아가는 길, 무릎 위에 붙어있는 연두색 애벌레 한 마리를 발견. 아마도 꽃비가 떨어질 때 내 몸 어딘가에 붙어서 온 모양이다.

     

호들갑을 떨기엔 꽤 귀엽게 생겨서 풀숲에 내려다 줄 요양으로 신용카드로 옮겨주었다. 녀석은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신용카드의 1mm도 안 되는 단면을 기어가려고 애쓴다. 막다른 길에선 대가리를 치켜들고 좌우로 살피며 허공을 향해 짧은 다리들을 허둥거리다 떨어진다. 다행히 어디에서 내뿜는지 알 수 없는 실을 목숨줄 삼아 신용카드에 안착하기를 무한 반복.


아무래도 애벌레는 좁은 면을 기어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듯싶었지만, 풀숲에 내려줄 때까지 나는 그냥 애가 신용카드 위에 얌전히 있어 주면 좋겠다.      


드디어 그 애를 조팝나무 꽃 위에 올려주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늘 애벌레는 이렇게 커다란 괴생명체 위로 떨어져서 조팝나무 위에 올려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과연 그곳에서 잘 살 수 있을지는 저도, 나도 알 수가 없다.      


벚꽃길을 찾겠다고 산속을 헤매다 인적이 드문 체육공원에서 모르는 할머니와 나란히 그네를 탈 줄 몰랐듯이. 덕분에 나는 허기가 져서 생각지도 못한 밀면과 만두를 사 먹었다. 대각선에 마주 앉은 여자아이는 내가 부담스러운지 아빠와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갑자기 떼를 쓴다. 아줌마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서 그런 거니? 알 수가 없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머리 긴 사람은 양 갈래로 머리를 땋는 게 교칙이었는데 그게 너무 싫어서 하나로 묶고 다니다 단발령을 받았던 내가, 지금은 양 갈래를 하고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게 제일 편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알 수가 없다.   

   

문득,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나는 애벌레처럼 가던 길만 가려고 고집하는 건 아닐까. 이 길을 벗어나면 생각지도 못한 넓고 평탄한 길이 있는데 가느다란 실에 모든 걸 맡기고서 위태위태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아니, 어쩌면 넓고 평탄한 길을 찾았대도 그것이 내게 평안함을 줄지는 역시 알 수 없는 일이고 하루아침에 조팝나무로 던져지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내 의지가 아닌 일로 삶이 흔들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알 수가 없다.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 괴로워도 그곳에 생각하지도 못한 행복이 숨어 있어 있을 수도 있다. 행복이 없다 한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알 수가 없다는 것은 불안한 것이 아니라 의외로 괜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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