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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May 31. 2023

경찰서에 가다.

왜 이렇게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

석가탄신일에 엄마와 함께 절 3곳을 방문하는 것은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약속이 되었다. 올해도 나는 엄마와 절을 가기 위해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누군가가 운전석 쪽의 범퍼를 때려 박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부모님 집에 갈 때만 한 달에 1~2번 차를 모는데, 그래서 차는 대부분 지하주차장에 있을 뿐인데도 사고가 났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여겼지만 이런 일에도 쉽게 무너지는 심약한 마음을 마주 보며 절망감을 느낀다.     


절을 향해 걷는 내내,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왜 이렇게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라고 내뱉어진다. 엄마는 계속 그런 말을 하면 못쓴다고 정색했지만, 그 말이 가슴에 박히지 않는다. 정말이지 왜 이런 일들만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나보고 살지 말고 죽으라는 뜻인가.  이까짓 일로 끝내 죽음까지 들먹이게 된다.    

  

내 차량의 블랙박스는 운행 중에만 녹화가 되고, 5월 8일에서 5월 27일 사이의 주차장 CCTV 영상이 남아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가해 차량을 찾아내는 일련의 과정은 생각만으로도 지쳤다. 지치게 하는 일은 이미 충분하므로 그냥 이 일을 덮고만 싶다.      


그래도 관리실에 가보란 부모님의 성화에 (휴일이 낀 탓에 그로부터 3일 뒤) 관리실을 방문했다. 20일 동안의 녹화영상을 다 확인하기 힘들다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직원에게 의욕이 없었던 나라는 사람은 속에 있던 말들을 쏟아낸다.     


‘... 왜 CCTV를 설치한 거죠? 이런 일 때문에 설치한 거 아닌가요? 우선, 제 차량이 CCTV 촬영범위 내에 들어왔는지부터 확인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기간이 길어서 영상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게 안되면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시거나, 아니면 제가 대신해서 CCTV를 확인하는 방법도 가능하면 고려해 주세요. 안된다고만 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관리실을 나선다. 말을 그렇게 해도 차량 가해자를 꼭 찾아내겠다거나, 찾으리란 기대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애쓰지 말자고. 여기까지 했으면 됐다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니라 명백한 포기의 마음이다.   

  

몇 시간 후, 예상과 달리 관리실에서 CCTV에 가해 차량이라 추정되는 정황이 찍혔으니 경찰서에 신고하면 녹화영상을 제출해 주겠다고 한다. 나에게 차량 정보를 주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라고. 그래, 나는 경찰서까지 가야 한다.     


대충 모자만 눌러쓰고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에서는 영상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정황 증거만으로는 가해 차량으로 확정 지을 수 없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빼박 증거일 경우만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가해 차량이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뺑소니 처분도 면할 수 있다고. 내가 뺑소니 처분까지 바라고 간 것도 아니고, 전의 상실의 상태라 알겠다고 말하며 급히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또다시 ‘왜 내게는 안 좋은 일만 일어날까.’를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를 생각해서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곧 내가 가진 게 많았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뒤따른다. 그동안 너무나 좋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당연하게 살아왔나. 그것이 행운인지도 모른 채 영원하리란 착각 속에서 오만하게. 그래서 지금이라도 알아차리라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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