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동, 영주하늘눈전망대
매일 걷던 산책길이 한없이 지루하고 갑갑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산의 구도심을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금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반드시 구도심에서 야경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수직으로 내려오는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선영이와 매일 뛰어놀았던 골목길이 보인다. 그땐 그 애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 남포동에서 해운대까지 걸어오면서 둘러보았던 어느 산동네의 낡은 주택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동네를 감싸고 있던 야트막한 산은 중턱까지 붉은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구도심으로 향하는 동안에 이 같은 풍경을 몇 번이나 마주쳤다. 기억 속의 익숙한 동네들은 고개를 끝까지 쳐들어 올려보아야만 끝이 보이는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선 낯선 동네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오래전의 일이 어제 있었던 일 같고 어제의 일은 마치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아득하다. 요즘은 기억을 그렇게 느낀다.
영주동 정류장에 내렸다. 발 한걸음에 지도 한 번을 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문득 어떤 시선이 느껴진다. 오래된 동네슈퍼에 묶여있는 개 한 마리가 차분히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개는 낯선 이의 방문이 신기하긴 하지만 흥분하지 않을 정도의 연륜이 있어 보였다. 눈빛에 적대감이 아닌 호감의 빛이 보여서 적어도 나를 향해 짖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사람의 마음보다 개의 마음을 더 잘 아는 것 같다. 사람이 개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인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전망대의 위치를 묻는 동안 개는 점잖은 태도로 나의 냄새를 샅샅이 맡았다. 이제는 만져달라고 달려드는 개 말고는 남의 개를 만지지 않으므로 나는 그 늙고 귀여운 개를 쓰다듬지 않았고 사람에 대한 짐작은 역시나 빗나갔다. 그녀는 전망대를 알지 못했다.
지도 보기를 포기하고 눈앞에 펼쳐져 있는 가파른 계단을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가 먹고사느라 전망대에 오를 여유가 없었을 거라 생각했고 이번엔 나의 짐작이 틀렸기를 바랐다.
때로는 지도보다 눈을 믿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단숨에 전망대를 찾았다. 온 적 없는 곳이라 생각했던 전망대는 언젠가 그와 함께 왔던 곳이었다. 근처의 거주자보다 빈집이 많아 보이는 낡은 아파트를 보며 여기서 영화 찍어도 되겠다고 호들갑 떨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그는 언제나 처음이 아니었고 나는 언제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최근 20년 동안의 거의 모든 경험에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득하지도 어제 일 같지도 않았다.
빈틈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왜 이곳의 야경을 봐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살고 싶었다. 밤의 무서움을 견디며 살고 싶게 하는 풍경을 눈 안에 빼곡하게 담았다. 마침 고부라진 길 위로 지나가는 버스가 보였다. 나는 종착역도 모르는 그 버스에 올라탔다.
86번 버스는 남포동, 자갈치 시장을 거쳐 불 향을 잔뜩 품은 술 취한 노인들을 싣고서 다시 영주동을 지나 수정동, 초량을 거쳐 가는 코스로 내달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았던 야경들이 주택 사이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추기를 반복한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무시하고 정면을 주시하는 노인의 푸른 문신을 본다. 이제 영주동엔 나만의 기억이 생겼다.
영주동은 오래되고 낡고 빛이 바랬지만 빛나는 것들이 모여있다. 노인의 팔뚝에 새겨진 흐릿해진 문신처럼 결코 변하지 않지만, 서서히 변해온 것들. 세월을 이겨내고, 아니 그저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무심한 것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