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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Dec 07. 2023

30년 우정도 싱겁게 끝난다.

떡볶이

12살의 M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대단한 기말사항이라도 되는 듯이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있잖아. 사실, 우리 엄마는 떡볶이랑 우동만 잘 만들고 다른 요리는 겁나 못해.’ 나는 적잖이 놀라웠는데, M의 엄마가 잘 만든다던 떡볶이와 우동 역시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M의 엄마는 어엿한 분식집 사장님이었다. 나는 M을 몹시 좋아했으므로 그 비밀을 엄마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M이 내뱉는 말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이 재밌고 웃겼다. 일주일이 넘도록 머리를 감지 않으면 두피의 묵은 각질이 껍데기처럼 벗겨진다는 사실도 그녀에게서 습득했다. M은 대체로 도라이 같았지만, 나같이 난도 높은 인간의 마음도 활짝 열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밝고 맑은 사람이었다.   

   

보통의 여자애들이 했던 아기자기한 행동을 일절 하지 않던 나는 M과는 고등학교 3년 내도록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마도 내 고교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것은 유희열의 음악도시, X파일과 함께 M의 편지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학생 M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M은 점차 나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그를 만나러 갔고 그가 자신을 힘들게 할 때마다 울고 불며 나를 찾았다. 그녀의 연애는 언제나 비슷한 패턴으로 흘렀다. 전에 없던 그녀의 모습에 사랑은 사람을 저렇게 만드나 보다 싶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M을 인정하게 된 건 나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며 미친 짓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내가 한 회사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M은 이것저것 시도하며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갔다. 어딜 가도 인정받았던 M은 회사 임원의 추천으로 파격적인 자리로 스카웃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M은 그 자리를 박차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그건 그녀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M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 우리는 가끔 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관계가 예전만 못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서로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M이 여전히 나의 절친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나의 결혼식이 끝나고 한 참 뒤에 엄마가 M이 결혼 축의금으로 3만 원을 낸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엄마는 황당해했지만 나는 서운함보다는 M의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었다. 축의금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6년 뒤 남편과 내가 ktx를 타고 M의 결혼식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자리는 커다란 기둥 뒤의 구석진 자리로 지정되어 있었다. M은 어렸을 때 엄마의 요리실력을 폭로했듯이 귓속말로 이런 자리인 줄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직접 자리 배정을 맡은 그녀가 그걸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결혼식의 메인 자리는 그녀가 유학 시절에 만난, 그래서 그녀가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다는 내용이 담긴 축사를 읊어 줄 M의 새로운 친구들이 차지했다.      


내가 M에게 ktx 왕복 차비와 편지를 챙겨주었듯이 그녀도 그럴 줄 알았지만, M은 웨딩장식으로 쓰인 수국을 챙겨가라고 말했다. 나도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그녀가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까지도 관계는 뜨문뜨문 이어졌지만 만나기로 한 추석 연휴에 연락하겠다던 M의 전화는 오지 않았고 나도 연락을 하지 않는 것으로 30년 우정은 싱겁게 끝이 났다.  

   

때때로 나는 우정을 강요당하는 기분에 휩싸이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 2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에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은 진정한 친구가 없다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내가 믿었던 진정한 친구란 무엇이었나. 나는 M을 원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몇 십년지기 부랄친구를 원했던 걸까.      


진정한 친구였던 M은 지금 내 곁에 없다는 이유로 진정한 친구가 아니게 된 걸까?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저 만나면 즐거운 지인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닌 걸까? 친구가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나? 아니, 인생에 친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세상은 이제 싱글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친구가 없는 삶은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M을 떠나보내고 알았다. 진정함에도 친구에도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걸.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이 남는다고 하지만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이 내 곁에 남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으므로 한때 곁에 머무른 사람도, 지금 곁에 남은 사람도 모두 어렵게 만난 소중한 인연이라고 퉁칠 수 있지 않을까.      


가끔은 나를 기둥 뒤에 앉히고 축의금 3만 원을 냈던 M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동네 분식집에 파는 떡볶이를 볼 때마다 눈을 희번덕거렸던 M이 생각나 피식 웃기도 한다. 지금도 M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지만, 나는 우리의 인연이 끝났다는 걸 알고 있다. M이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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