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Nov 30. 2023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바비큐 치킨

바비큐 치킨만 생각하면 개처럼 입에 침이 고였다. 아마 실제로 개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도 개처럼 조그만 일에도 좋아서 미쳐 날뛰고 까불거리던 몇 년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항상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거나 괴이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고 옆에는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나 박장대소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함께 찍혀있다. 그런 개 같은 성격으로 쭉 자라났다면 세상 살기가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내가 개 같던 시기에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엔 바비큐 치킨을 먹었다. 그 궁극의 맛집은 동네 주유소 옆의 작은 3층짜리 건물 1층에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소한 닭기름 냄새와 숯불 향이 그윽한 소스 냄새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메뉴판엔 당당하게 오리지널 바비큐 치킨이라 쓰여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새빨간 소스가 발려진 한국식 숯불 치킨에 가까웠다. 하지만 미국식 바비큐를 먹어 볼 리 만무했던 나에게 이것이 오리지널 바비큐 치킨이 아닐 이유는 없었다. 실제로 소스에서는 엄마의 음식에서는 맛보지 못한 이국적인 맛과 향이 느껴졌다.      


소스는 고추장을 베이스로 썼지만 텁텁함은 전혀 없고 매콤한 풍미만은 그득했다. 요즘 모든 소스가 작당 모의라도 한 듯 이가 시릴 정도로 달아빠진 것에 비하면 이 소스는 홍시 맛이 나서 홍시가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감칠맛 나는 단맛이 있었다. 야박하다 싶을 만큼 소스를 살짝만 바르고 구웠는데도 소스의 진한 풍미가 느껴졌고 물론 그 맛은 고소한 치킨의 맛을 헤치지 않았다.      


아아. 숯불에 오랫동안 구워낸 치킨의 맛은 어떠했나. 큰 닭을 통째로 숯불에 구워내는 일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구워낸 닭은 닭가슴살마저 야들야들 촉촉했다. 손가락에 묻은 소스와 흐르는 육즙까지 쪽쪽 빨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 모두가 이렇게까지 맛있게 먹었던 외식 메뉴는 이 바비큐 치킨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 매콤하고 야들야들하고 숯불 향 그득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비큐 치킨 가게에 불행이 들이닥쳤다. 누군가는 사장 아저씨가 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손님들끼리 칼부림이 나서 그들 중 한 명이 죽었다고 했다. 아직도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한동안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살인 사건이 그곳에서 일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가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게 되었고 바비큐 치킨집의 폐업과 동시에 나의 까불이 시절 또한 끝이 났다.     

 

성인이 된 후에 나는 줄곧 그 맛을 찾아 헤매 다녔다. 숯불 치킨이라는 말을 믿고 들어간 가게의 치킨은 대부분 오븐에서 굽거나, 팬 위에서 불 향을 입힌 치킨이었다. 요즘은 닭 특수 부위를 숯불 위에 구워주기도 하지만 사장 아저씨가 오랜 시간 숯불 앞에 서서 구워주던 치킨 맛과 비견될 리 만무했다. 이제는 어디서도 그 맛을 찾지 못할 거란 걸 안다.     


올해 여름, 내가 살았던 동네를 지나치다가 바비큐 치킨 옆에 있던 주유소가 없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목격했다. 근처의 가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뀔 때도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유소였다. 순간 유형 문화재가 불타 버린 것과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 궁극의 맛집이 없어진 지도 30년이 넘었다.      


나는 뒤로 달아나는 그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 창가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다시는 맛볼 수 없기에 그 바비큐 치킨을 실제보다 더 맛있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상실감은 하찮게 여겼던 것도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둔갑시키고 기억이란 언제나 변형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조그만 일에도 좋아서 미쳐 날뛰던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우리 가족이 치킨 하나로 순수하게 행복했을 때를 다시 맛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시커먼 먼지가 쌓인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에 자연스레 이 세상에 바비큐 치킨을 기억할 사람이 나 홀로이게 될 날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는 이곳 광경을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나는 내가 바비큐 치킨을 떠올리며 다시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이전 01화 처음 가난을 알게 한 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