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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Nov 23. 2023

처음 가난을 알게 한 맛

컵라면

학교는 집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큰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에 개똥이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주택가 골목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통과해서 등하교했다. 어린이 혼자 걷기엔 꽤 무서운 길이었지만, 부모동행 없이 혼자 등하교하는 게 일반적이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산길을 향해 걸었다. 애들이 미끄럼틀 타듯 놀아대서 대머리처럼 벗겨진 봉분을 지날 때마다 결단코 당신 위에서 논 적이 없다고 맘속으로 무덤 주인에게 어필했었다. 그리고는 이 사달을 내놓고도 죄의식 없이 원숭이처럼 꺅꺅대는 애들을 떠올리며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라고 쯧쯧 혀를 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미술수업 준비물로 컵라면 빈 용기가 필요하다는 정보부터 알렸다. 엄마는 집 앞 슈퍼에서 육개장 사발면 하나를 사 들고 왔고 우리는 언니가 오기 전에 몰래 컵라면을 나눠 먹었다.   

   

우리는 왜 라면을 그릇에 옮겨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무리 씻어도 컵라면 용기에 스며든 시뻘건 기름때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 흉측스러운 것을 절대 학교에 들고 갈 수 없다고 징징거렸고 그때 엄마의 얼굴에 스친 당혹감을 보았다.      


엄마가 나와 자신의 몫으로 컵라면 두 개를 사 올 거라 믿었는데 손에 들린 컵라면이 하나인 걸 봤을 때부터 어렴풋이 알았다. 나는 우리 집이 컵라면을 두 개 사기에는 부담될 정도로 가난하다는 걸 끝까지 모른 척할 심산이었다. 결국, 시뻘건 라면 용기를 들고 갈 용기가 없는 탓에 실패했지만 말이다.    

  

10살 때의 일이다. 그때  우리 집이, 나의 부모가,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알아버렸다.      


징징거리면서도 차마 새로 사달라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새 컵라면을 사 와서 새하얀 컵라면 용기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때 엄마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마냥 좋았고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아버린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다. 그 슬픔이 죄책감이란 건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가난을 알아버렸다고 해서 그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배고픔 없이 컵라면 1개의 부족함을 느낄 정도로만 생활하고 성장했다.      


언니와 나는 컵라면 같은 가공식품 대신에 버섯, 당근, 시금치, 두부 같은 것들을 맛있게 먹어치웠고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 어딜 가도 뭘 먹고 그렇게 컸냐는 질문 공세를 받게 되었다. 그때마다 정말로 콩나물 먹고 이렇게 컸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 가족은 가난했음에도 맛있는 걸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컵라면의 부재가 나를 좌절시키지는 못했다.     

 

온 가족이 단칸방에 사는 가난은 떠안은 36살의 나였다면 아마도 매 순간 지긋지긋한 가난에 대한 절망감을 내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10살이 되도록 가난하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건 오롯이 엄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아볼수록 알겠다. 엄마와 같은 어른이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 아님을 내가 얼마나 큰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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