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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Dec 26. 2023

올해도 완벽하게 어른을 실패했다.

새로운 세계

길 위에서 푸바오처럼 연속으로 앞 구르기를 4번 하는 고양이를 본 적 있는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영하의 저녁에 산책한다면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고양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자신은 앞 구르기를 한 적이 없다는 듯 태연스레 딴짓을 하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며칠째 공원에는 아무도 없다. 덕분에 고양이들과 나는 흥분상태다. 나는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BUNGEE JUMPING’에 맞춰 발재간을 부리며 공원을 지그재그로 뛰어다니고 춤을 췄다.      


바닷바람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무들은 자비 없는 바람에도 편안히 흔들린다. 바닥에 떨어진 소나무 잎을 밟는 발바닥의 촉감이 따뜻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숲 속도 하늘도 바다도 까맣고, 까맣고, 까맣다. 파도치는 소리가 빈틈 사이로 들어왔다가 치고 빠진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혼자 누리며 청명하게 걸었다. 작년 이맘때 나는 두 손, 두 발을 묶어놓고 꼼짝없이 방 안에 갇혀 지냈다.     


2023년의 키워드는 어리광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실컷 어리광을 피웠다. ‘외롭다. 괴롭다. 살기 싫다.’가 나의 표제라도 되는 듯이 감춰두지 못하고 ‘외롭지 않고, 괴롭지 않고, 죽기 싫어서’ 했던 모든 언행이 지금은 어리광처럼 느껴진다. 현재 상황은 더 나빠졌으나 시간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아니 언제나 그렇듯이 그 모든 것을 어리광으로 치부할 수 있는 마음을 주었다.      


감정을 담아두지 못하고 무자비할 정도로 쏟아낸 것을 조금 후회한다. 신나는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 달아오르는 고뇌를 느끼는 중이다. 술자리에서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말 한마디라도 더 해서 상대방을 웃기게 하고 싶은 타입이다. 물론, 친한 이들조차 나의 개그 욕정을 알지 못한다. 나는 줄곧 가까운 이들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데면데면한 이들을 웃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이들을 어른으로 섬기고 있었다. 허기진 상태에서 누군가가 밥상을 엎질렀을 때 화가 나지만 억지로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웃어버리는 사람. 내게 어른이란 본인 감정을 세련되게 숨길 줄 알며 상대방을 가뿐히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올해도 완벽하게 어른을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캄캄한 공원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을 느꼈다. 긴 시간 웃는 법을 잊어서 웃을 때마다 볼 언저리가 얼얼했고 그 느낌을 놓고 싶지 않았다. 웃으면서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 자신에게도 가뿐히 웃어버리는 사람이 되길 얼얼하게 웃고 또 웃으며 걸었다.     


내년에도 어른에 도전한다. 올해는 ‘외롭다. 괴롭다. 살기 싫다.’고 나대는 애들을 구슬리느라 진이 빠졌고 해가 바뀌어도 그 애들은 좀처럼 나를 떠나지 않을 테지만, ‘충만하다. 괜찮다. 웃겨 죽겠다.’가 더 활개 치도록 잘 구슬려서 볼 언저리를 얼얼하게 잇몸을 건조하게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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