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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an 02. 2024

아무튼, 무엇이든 도전

일출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지구는 365.2564 태양일을 기준으로 공전하고 있다. 새삼 생소한 이 사실을 연말마다 인지하게 된다. 도대체 한 바퀴 돌아오는 게 뭐라고 인간들의 마음을 이다지도 일렁이게 만드는 걸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꽤 오래전부터 새해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의미를 찾으려 되짚어보면 내년에도 계속되어야 할 무의미의 시간을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기계처럼 살아내고 싶었다. 그것이 일어나고 씻고 나가서 돈 벌고 들어와서 씻고 잠드는 시간을 견디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다.     


엔진의 파워는 미적지근해도 잔고장이 없어서 출력량이 일정한 가성비 좋은 기계. 나는 나쁘지 않은 기계였다. 기계로 살아온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무언가를 생산하지 못하면 불안해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것을 몹시 좋아하고 루틴을 벗어나는 일을 몹시 어려워한다.      


초기에 입력된 데이터만 수행하는 나는 2024년 1월 1일, 평생 처음으로 일출을 보러 가리라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불안해서 제대로 잠들지 못했는데 놀라운 점은 멀쩡히 깨어있음에도 일출을 보러 가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주어진 복 외에 더 많은 새해 복을 받을 마음도 없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 생각도 없지만, 굳이 일출을 보겠다고 한 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지금껏 해보지 않은 일을 도전하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는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퍼포먼스 실패.      


결국,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닌 새해 첫날을 보냈다. 그러나 바야흐로 나의 마음에도 무언가 도전해 보겠다는 벅참이 당도한 것이다. 처절하게 혼자임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사이비 종교 선전 문구에도 복받치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데 나를 벅참으로 이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문구였다.      


몇 년 사이 큰 변화들을 겪으면서 나는 1월 1일의 하루처럼 변하지 않았고 많이 변했다. ‘또 시작이네.’ 같은 말을 수시로 듣던 본인은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 그것은 자기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치명적인 단점은 오류에 빠지면 손쓸 수 없을 지경이 된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손쓸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나서야 그동안 규정해 온 모든 것들이 실제가 아니라 그저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큰 해방감을 안겨 주었는지 모른다. 나는 마치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라도 된 듯이 해방감의 감각을 익히려고 무던히 애쓰고, 애쓰고 있고 앞으로도 애쓰며 살아가리라 다짐하느라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감각은 놓치고 있었다.      


나는 수시로 얼굴을 붉히지만, 신이 나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도 맨 정신에 춤을 출 수 있다. 사람을 마주하는 게 싫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지만 백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태연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고 악마같이 잔인했다가 보살 같은 너른 마음을 품기도 한다. 나라고 생각한 이 모든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불과할 뿐 내가 아니었다. 진짜의 나는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고 벗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뭐든지 될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도 패악질을 부리고 살아도 무방하다는 뜻도 아니다. ‘어떤 옷이든 간에 그 순간 당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어도 괜찮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난 잘 안 될 거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고 한다. 2024년 1월 1일의 이 벅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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