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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ul 16. 2024

내가 또 이 짓을 하다니

리모델링의 서막

어쩌다 보니 구축에서만 살게 되어서 이번이 3번째 리모델링이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리모델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돈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므로 정확한 예산을 책정하고 시공할 공간과 디자인, 자재를 정해야 하는데, 당연하고도 쉬운 일 같지만, 막상 시작해 보면 포기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정하는 건 꽤 어렵다.   

   

돈이 많아서 리모델링에 돈을 아끼지 않겠다면 축하하고. 나와 비슷한 처지라면 두 눈 딱 감고 포기할 것부터 먼저 정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단호함’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업자들에게 이리저리 끝도 없이 휘둘리게 된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전체 컨셉을 빈티지로 잡았다. 기존에 깔린 체리체리한 마룻바닥을 빈티지스럽다고 자신을 설득하며 바닥 시공을 포기했고 기존의 목문과 문틀은 직접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다. 빈티지 컨셉에 시트지가 발린 ABS도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기며. 흑.     


현관 중문도 설치하지 않고 현관 바닥 타일도 뭔가 종교단체 심볼 같지만 그대로 쓰기로. 심지어 누렇게 변한 20년 넘은 인터폰도 우와 이게 진짜 빈티지라며 그대로 쓰겠다고 했을 땐 동네 인테리어 실장님도 ‘이건 아니야, 인터폰은 좀 바꿔요!’라고 소리쳤다.      


구축아파트라 거의 모든 것을 교체해야 해서 미치고 팔짝 뛸 정도가 아니라면 그대로 놔두거나 자잘한 것들은 직접 작업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문 손잡이, 경첩, 도어클로저, 안전고리 같은 부속 교체, 도어록 설치, 조명, 스위치, 콘센트, 교체, 베란다 방수 페인트, 타일 줄눈 보수 같은 것들 말이다.      


요즘 굉장히 특이한 고객들이 자기네들 가게로 온다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사장님의 눈빛. 도대체 무슨 일을 하냐고 묻던 실장님.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그 예산으론 힘들 거라고 했지만, 여하튼 예산 안에 들어오는 계약을 하긴 했다.      


현장에는 내가 먼저 투입되었다. 우선 던에드워드에 벽지 샘플을 들고 가서 그와 유사한 컬러를 골랐다. 직원이 컬러 칩 몇 개를 뽑아서 제안하지만,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한다. 벽지 컬러는 노란끼가 도는 따뜻한 느낌의 화이트여서 그레이나, 블루가 들어간 차가운 화이트 컬러는 바로 배제시켰다. 이럴 때 디자이너를 했던 경험이 아주 쓸모가 있다.      


페인트칠은 전 작업이 더 고되다. 사포로 표면의 거친 부분을 정리하고 움푹 파였거나 들뜬 부위를 뜯어내고 퍼티 작업을 해준다. 퍼티 부위가 마르면 다시 사포질로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어주고 표면에 붙은 먼지들을 깨끗하게 제거해야 프라이머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모서리나 좁은 곳은 붓을 사용하고 넓은 부위는 롤러를 쓰는데 욕심부리지 말고 최대한 얇게 발라주어야 눈물 자국이나 뭉침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프라이머가 다 마르면 페인트도 마찬가지로 얇게 최소 2번은 칠해줘야 균일한 컬러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얇은 붓으로 보수할 부분을 찾아 칠해주면 작업은 끝이다.      


아침에 야무지게 밥을 챙겨 먹고 현장으로 출근해서 작업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자는 생활을 5일 동안 하자 페인트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오랜만에 어딘가로 출근하고 쉴 새 없이 몸을 놀렸더니 정말 말도 못 하게 즐거웠다. 하지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흑.   

  

그리고 덕분에 집이 조금 익숙해졌다. 집은 온종일 햇빛이 잘 들어서 환했다. 앞, 뒤 창문을 활짝 열고 작업했더니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싸늘하다고 느껴질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공놀이하는 아이들이 잠시도 입을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는 것도.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가 여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햇빛과 바람이 머물고 이런 소리가 나는 곳에서 살아가게 되겠구나. 좋았다.     


침실 창밖으로 매일 산책했던 공원을 바라보면 가슴 한구석이 콕콕댔지만 마냥 아픈 것만은 아니었다. 잘 있구나? 여전히 아름답고. 난 이제 여기에 정을 줄 거야. 알지? 내가 한 번 정 주기 시작하면 끝장나는 거. 잘 살 거야. 리모델링도 결국엔 잘 해낼 거라는 거 난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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