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될 때까지 한다.
롱풀 머신을 당기는 순간에 하늘 높이 기류를 타고 원을 그리며 나는 새를 보았다. 기류를 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당장에 저 기류에 몸을 던지고 싶을 만큼 새는 무한히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새를 주시한 채 당기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를 악물고 운동하는 것밖에 없었으므로.
‘그 책에서 말하는 사람...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은 너 아냐? 내가 알기론 넌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결국 다 해내는 독한 년이야.’
‘우리는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어.’
‘프랙탈 기억하지? 누가 뭐래도 너랑 나는 성실하게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어. 그러면 된 거야.’
위로를 갈구하는 한 주를 보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힘이 되는 말이 내게 돌아왔다. 그것들이 곳간에 든든하게 쌓였는데도 계속해서 위로 거리를 찾아 헤매는 짓을 하다가 마침내 멈추었다. 현재를 살자. 무엇이 되었든 지금 하는 이 일에만 집중하자.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아침으로 두유, 사과와 땅콩버터, 삶은 달걀, 떡을 먹었다. 사과와 땅콩버터의 환상적인 맛을 며칠 전부터 경험하고 있다. 주말 아침에는 매일 아침에 먹을 오트밀빵을 굽고, 빨래를 돌린다. 빨래를 돌리는 동안에 집안을 환기하고 곳곳에 쌓은 먼지를 훑어 내고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질을 한다. 곧이어 화장실 청소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빨래를 넌다.
오후에 먹을 양식을 준비한다. 무, 마늘, 들기름이 잔뜩 들어간 황탯국을 끓이고 며칠 전에 부모님과 함께 한 김장김치를 꺼내 가지런히 썰어 반찬통에 담아둔다. 잊기 전에 엄마가 지인에게서 받은 무농약 고추를 가위로 잘라서 비닐 팩에 넣었다. 무려 3 봉지가 나온다. 1년 치 땡초가 생겼다.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설거지를 하고 저녁에 구워 먹을 새우 5마리를 꺼내놓았다.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다가 쓰레기 더미를 챙겨서 운동하러 간다. 매일 운동하러 오는 이들은 역시 일요일도 거르지 않는다. 그들 틈에서 열심히 운동했다. 두 눈이 동그래진 선생님이 자세가 진짜 좋아졌다고 다음 주에 새로운 운동 몇 가지를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운동이 더욱더 잘되었다.
동백꽃이 피었다.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동백꽃. 봉오리가 모두 활짝 필 때 즈음엔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고 잠깐 미래로 갔다가 다시 떨어져서 나뒹구는 낙엽을 보며 현재로 돌아왔다. 봄이 오는 것이 두려워서 좋았던 겨울은 지나갔고 지금은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공기가 좋아서 좋은 겨울이다.
뜨거운 물로 삶는 듯이 샤워를 하고 운동일지와 쓰던 글을 마저 쓴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근 손실은 당할 수 없지. 새우, 고구마, 두유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다시 쓴다. 지금 쓰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인지를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쓸 수 있어서 쓰는 순간이 좋아서 쓴다.
밤이 되면 애쓰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진다. 이 순간을 위해 하루를 버티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턱 끝까지 이불을 감싸 올리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치유받는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이불 안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아침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침은 온다. 여전히 왜 아침이 희망의 상징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 또다시 확신도 없고 소용도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될 때까지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현재를 사는 것 말고는 이 일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고 애쓰면서.
매번 의식하지 않고 생각 없이 지금이 살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좀비가 되고 싶다.(고 또 생각한다) 좀비가 창궐하면 망설이지 않고 첫 번째로 물려줄 것이다. 좀비라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도 생기고(백수는 소속감이 고프다) 목표는 오로지 사람을 물어뜯어 먹는 것 말고는 없는 심플 명료한 삶이라니. 현재를 살자고 했는데 좀비로 끝나는 나란 인간. 아무튼, 될 때까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