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은
찬바람을 맞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침을 두려워하는 것이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 감정이 거짓은 아니었으나 어떤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계속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아 피곤하다) 나는 그것이 지긋했으므로 내일은 예상치 못한 즐거운 일도 벌어질지 수 있다고 으쌰으쌰 하면서 미래가 깜깜한 것과는 별개로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보낸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일상을 버티고 있었다.
12월 3일 이후로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서서히 예열되다 오랫동안 열기를 품고 갑자기 식어버리는 사람이라 아마도 이 예민함은 한동안 지속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12월 3일은 썩 유쾌하지 않은 날인데, (전남편의 생일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비교적 평온한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현관문을 부서질 듯 닫는 이웃들의 무신경함에 화가 났다. 반려견을 풀어놓은 채 산책하는 사람들이 싫었고 노상 방뇨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바지 지퍼를 올리는 사람은 발로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의 잔잔했던 분노가 솟구쳐 오르는 분노로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체육관 여자 탈의실의 출입문 잠금장치가 고장 난 채로 방치된 것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문을 고쳐달라는 요청에 문 안쪽에 커튼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문을 굳이 고쳐줘야 하냐는 반응이다. 자신에겐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일이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상식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화를 어떻게 해소할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한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이 운동을 끝내고 찬바람을 맞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몸은 시렸고 속에서는 열불이 났다. 그때 커피 뚜껑에 손으로 직접 적은 ‘항상 행복하세요!’라는 글귀를 보았다.
2,500원짜리 커피 한 잔에 ‘항상 행복하세요’를 적었던 그 마음을 생각했다. 어떻게든 잘 살고 싶어서 먹고살기 위해서 그 한잔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담았을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모든 이들의 일상이 뒤흔들렸다.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손가락 하나로 간단하게 밀어버린 것 같은 충격과 공포, 분노, 무력함을 느낀다.
아무리 적게 벌어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부리고 있는 욕심이자 사치이다. 이것을 사치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벼랑 끝에 서 있다. 벼랑 끝에서 구해주길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밀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백수에게도 나름의 일정이 있는데 취소하고 언니의 부름에 밖으로 나갔다. 오물이 넘치는 차가운 도로 한가운데에 앉아 있으니 그동안 포근했던 겨울이 그저 집 안에 있어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올해 길바닥에 앉아 있는 경험을 참으로 많이 했는데 윤석열 때문에 또 길바닥에 앉게 될 줄이야. 거미줄같이 뻗어진 거리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끝까지 함께 있지는 못했고 그 날밤 나는 앓아누웠다.
그간 조그맣고 끈질겼던 농도 진한 불안과 무력함, 분노는 그간의 수고가 무색할 만큼 덩치가 커져서 무슨 짓을 해서 다시 이것들을 진정시켜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우선 언제나 그랬듯이 좋아하는 것들을 들여다보며 눈과 귀와 마음을 정화시키고 최대한 맛있는 것을 먹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시작해 본다.
다들 될 때까지 지치지 말고 힘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