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주 차
월요일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눈 떴더니 금요일이 된 것 같은 날들이다. 18년 동안 출근했어도 아침 기상은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고통스럽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아침 기상보다 더 힘든 일이 많은 모양이다.
출퇴근 시간은 50분 정도 걸린다. 최적의 동선을 파악하려고 8호선에서 9호선으로 환승하거나 버스에서 9호선으로 환승하는 코스를 테스트해 보았는데 8호선에서 문짝에 붙어간 후로는 버스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는 노선으로 정착했다. 느긋하게 직접 만든 오트밀빵을 먹는 호사는 누리지 못하고 두유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며 여유 있게 나오는데도 바쁘게 걷거나 뛰는 사람들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지는지 어느새 그들과 함께 뛰고 있다.
회사에서는 매 순간 고난과 역경과 잡도리가 번갈아 찾아와서 과연 이것이 현실이 맞는지 의심하고 있다. 나, 혹시 지금 꿈속일까? 서울에서 20년은 버텨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20년은 무슨 지금으로서는 3개월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름 산전수전 겪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앞으로 또 어떤 산전수전이 있을지 몹시 기대된다.
퇴근하자마자 엄마에게 퇴근 보고 문자를 보낸다. 생각보다 늦은 퇴근 시간에 엄마는 매번 걱정이다. 그럼 일찍 퇴근한 척하면 되는데, 왜 그럴듯한 거짓말도 꾸며내지 못하고 꼬박꼬박 진실을 말할까.
오늘의 엄마는 나의 퇴근 보고에 ‘매번 퇴근 때마다 문자 보내줘서 고마워’라고 답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못돼 처먹은 짓을 많이 했길래 ‘퇴근했어’라고 짤막하게 보내는 이딴 문자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일까. 미안해서 울컥했다.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걸까. 엄마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만큼 나는 엄마를 사랑해주지 못하는데도.
아빠는 어떻게든 버텨서 서울에 정착하라고 했지만, 엄마는 서울에 가지 않길 바랐고, 언니는 버티기 힘들면 미련 없이 내려오라고 했다. 나는 아빠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언니의 마음도 모두 이해한다. 나의 마음도 그들과 같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버틸 때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난주에는 다행히 집 안에 웅크려 있지 않고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 중에도 무의식적으로 부산을 떠올리며 서울과의 차이점을 찾아냈다. 서울은 부산보다 도시 조경이 일찍 정비된 탓인지 어딜 가도 나무들이 훨씬 거대하고 풍성해서 마치 숲 속에 있는 듯한 우거짐이 있다. 반면, 한강의 매력은 아직 잘 모르겠다. K가 러닝 할 때마다 찍어서 보내준 한강의 전경에 감탄하곤 했는데 그녀의 말대로(K 또한 부산사람이다.) 탁 트인 푸른 부산 바다에 비견할 바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굳이 한강까지 걸어간 건 물가 가까이에 가면 마음이 평온해지리라는 바람 때문이었는데 바람결에 스치는 비릿한 강물의 냄새가 바다의 비릿함과 달리 역해서 반감만 샀다.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도 어쩜 이렇게 부산과 다를까(너무 무섭게 생겼다.) 싶어서 성질이 난다.
어디를 가도 부산과 같은 곳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럴듯한 대체품이 아니라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는 것도. 그나마 희망적인 건 내가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몹시 귀여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미, 부산에서는 보지 못했던 싸움질하는 물까치와 예쁜 빨간 점박이 곤충을 발견하고 헤벌쭉했으니 내일은 더 끝내주는 애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의 서울 버티기 전략이다.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