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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은 4평 남짓의 원룸

서울생활의 시작

by 윤비

이곳은 4평 남짓의 원룸. 4인 원목 테이블 대신 붙박이장에 달린 조그만 아일랜드 식탁에 노트북을 놔두고 5,990원짜리 간이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은 현재 밤 9시 35분. 오늘은 환승 지하철을 반대로 타버리는 대참사를 저질렀다.


단언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단언컨대, 서울의 음식은 맛이 없다. 지름 2cm 정도의 두툼한 쌀떡에 새빨간 고추장의 농후한 맛이 스며든 맵고 달콤한 떡볶이를 선호하는데(모든 부산사람이 이런 건 아니다) 첫날 k와 먹었던 동네 분식집 떡볶이는 서울답게 밀가루 떡으로 만든 심심한 주황빛의 국물 떡볶이였다. 그러나 국물 떡볶이의 매력도 모르지 않는 바. 기대를 버리지 않고 한입 베어 문 밀가루 떡은 앞니가 3mm 정도 떡에 꽂혔을 때부터 맛없음을 직감했다. 그것은 겉면은 국물에 퉁퉁 불어서 버석거리고 속은 딱딱해서 심지가 느껴지는 전형적으로 오래된 밀가루 떡이었다.

당신 지금 떡볶이 하나로 서울 음식을 타박하기엔 너무 경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지금껏 먹은 냉면, 만두, 빈대떡, 육회비빔밥, 비빔국수, 팽 오 쇼콜라, 크루아상 등이 모두 맛이 없었다면? 함께 먹은 이들은 맛있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맛이 없었고 그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끝내 맛있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느낌을 공유할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고 지금 거의 모든 일이 낯설고 외로운 상태다.

이 낯섦과 외로움은 당연하고도 어쩔 수 없다. 언제나 마음을 조금도 내어주지 않거나 마음을 홀라당 줘 버려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 어쩔 수 없는 마음에 모든 걸 내어주지는 말자고 틈만 나면 자신을 어르고 있다.


하루 중 잘 때가 가장 행복하고 매일 잘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야생 정원을 방불케 하는 조경을 구경하며 걸을 때가 그나마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며 퇴근길이 마냥 신나지는 않아서 꽃과 나무를 살피며 최대한 천천히 걸어서 잠자는 곳으로 돌아간다. 조만간 근처 광활한 공원을 산책할 예정인데 과연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맛없는 떡볶이를 분별하는 것 말고는 없다.

옷을 좋아해야 버틸 수 있다는 말이 두둥실 머릿속을 떠다닌다. 그는 내가 옷을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 맛없는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너 지금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인가? 그런데도 왜 따지고 있단 말인가? 진짜 옷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을 버텨내지 못할까 봐 겁이 나서 그렇다. 혼자서 인터넷 공유기가 고장 난 아무것도 없는 4평짜리 원룸에 누워 윙윙거리는 냉장고 소음을 듣고 있으면 긍정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법이다.


우선 이곳에서 3개월을 보내야 한다. 월 60만 원짜리보다 좋고 월 100만 원짜리에 크게 뒤지지 않는 이곳의 월세는 75만 원이다. 시야가 트였고 신축이라 컨디션이 좋으며 살림살이도 없는데 몹시 답답하다. 왜 이렇게까지 답답한 걸까.

그건 바람이 불지 않아서였다. 바닷바람에 익숙한(모든 제주도민이 귤나무를 기르지 않듯 모든 부산사람 집 근처에 바다가 있는 건 아니다.) 곳에 살다가 맞바람이 치지 않는, 칠 수 없는 곳에 살다 보니 그런 거였다.

집을 구할 때 일조량은 체크했지만, 바람의 유무는 신경 쓴 적이 없다. 바람은 공기와도 같아서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다. 바람은 소중한 것이었구나. 식물은 물, 햇빛, 바람 중 하나만 빠져도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다음 집은 맞바람이 들이칠 수 있는 창문을 가진 집을 구하자. 그래, 그러면 된다. 우선 3개월을 잘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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